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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0 | 1984년 1월 27일 마이클은 펩시콜라의 CF 광고를 촬영하는 도중 사고로 인하여 2도 이상의 화상을 입어 수술을 했다. 마이클은 화상사고 책임 주체인 펩시에게 150만 달러를 받아 합의를 했다. 마이클은 화상 치료센터에 합의금 150만 달러를 기부했다. 2월 28일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높으며 음악계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에서 12개 부문 후보로 올라 8개의 상을 휩쓸어 최다 부문 후보, 최다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잭슨이 흑인을 다시 음악의 주류로 올려놨다고 평가했다. 아프리카까지도 마이클의 유명세가 떨쳤으며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에서도 마이클 따라 하기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61] 이 해 낸시 레이건 영부인의 반마약 운동인 "Just say no" 캠페인에 자신의 자작 히트곡인 'Beat it'의 음을 빌려준 대가로 5월 14일에는 백악관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초청을 받아 공개적으로 감사 인사와 상을 받았다. 한편 'Thriller'를 내걸고 공식 솔로 투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해 발매한 더 잭슨스의 'Victory'앨범의 제목을 빌려 그의 형제들과 'Victory Tour'를 개최했다. 그러나 형제들이 상당히 사행성적인 방법으로 티켓을 판매하자 마이클 잭슨에게 비판의 화살이 돌아갔고 마이클은 기자회견을 열어 티켓 판매 방식을 바꿀 것임과 약 3백-5백만 달러의 자신의 공연 수익 몫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마이클 잭슨은 더 이상 형제들과의 공연을 원하지 않았고 마지막 공연 당시 "이번 공연이 그의 형제들과 마지막입니다"라고 공연 끝 말미에 관중들에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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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42 | 1985년 'We Are The World'라는 아프리카 기아들을 도와주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라이오넬 리치와 공동으로 작사/작곡하였으며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한 이 곡은 싱글로 발매돼 14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으며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해 8월 10일에는 비틀즈의 레논-매카트니 카탈로그와 유명 가수들의 저작권을 포함하여 4000여 곡을 소유하고 있는 ATV 출판사에 대한 잭슨의 구매가 완료됐다. 마이클 잭슨은 1980년대 초 폴 매카트니와 음악적으로 교류를 했는데 매카트니는 당시까지만 해도 저작권의 중요성이 크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마이클에게 음악 사업이 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은 이 말에 호기심을 갖고 자신의 매니저 존 브랑카를 시켜 몇몇 유명 곡들의 카탈로그와 저작권을 구매했는데 1984년 ATV 출판사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부유한 호주의 투자자가 시장에 판매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매카트니는 요노 요코와 각각 1000만 달러를 내고 2000만 달러에 ATV를 구매하길 원했지만 요노 요코는 거절했고 마이클 잭슨은 여러 부동산 부유층들과의 경쟁 끝에 4750만 달러의 ATV를 사들였다. |
| 43 | == Bad, 언론들의 거짓 보도, King of Pop == | |
| 44 | 1986년 타블로이드 언론들은 잭슨이 노화를 늦추기 위하여 고압 산소 체임버에 자고 있다며 산소 체임버에 누워 있는 마이클을 찍은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미국 주요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 보도는 마이클의 자작극이었다. 화상 사고 이후 들린 화상 치료자 전문 센터에서 한 산소 체임버를 본 마이클은 동행한 의사에게 지금은 이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후에는 가능할 것이라며 여기서 자면 노화도 늦출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흥미를 느낀 마이클은 체임버 안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고 그동안 사이가 안 좋았던 언론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지와 자기 자신을 현실과 분리시켜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잭슨이 노화를 늦추기 위해 산소 체임버 안에서 자고 있다며 매니저 딜레오를 시켜 거짓 정보를 언론에게 흘렸다. 이후에도 마이클은 수차례 같은 행동을 하였는데 타블로이드 언론에선 마이클이 이상하다며 'Wacko Jacko'라는 별명을 붙인다. 이는 '미친, 기괴한, 괴짜 잭슨'이라는 뜻으로 타블로이드 언론들은 잭슨을 'Jackson'으로 칭하지 않고 'Jacko'로 칭하기 시작했다. 잭슨은 'Wacko Jacko'라는 별명을 무척이나 싫어했으며 그러한 말을 쓰지 말고 'Jackson'이라 불러달라고 말했다. 또 그가 침팬지를 애완용 동물로 키우려는 것도 일반인들에게는 이상한 행위로 보였으며 점점 현실과 분리된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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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타블로이드 언론들은 70년대 <마이클 잭슨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남자 가수랑 결혼을 하려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큰 이미지 타격을 입힌 적이 있다. 이뿐이 아니다, 마이클이 <Off the Wall>,<Thriller>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 후에는 타블로이드 언론은 이전보다 더 근거 없는 기사로 마이클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이에 마이클 잭슨 측은 1984년 9월 공개적으로 언론들의 루머에 대해 반박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허황된 내용의 기사들을 보도했다. 이로 인해 생긴 언론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마이클은 긴 기간 동안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은둔자적인 팝스타라고 묘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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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또한 이때 마이클의 피부색은 급격하기 바뀌기 시작한다. 이러한 피부색의 변화는 백반증이라는 질병에 의한 것이었으나 수많은 언론들은 그가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아닌 내용들을 보도하여 마이클을 더욱 괴롭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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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1987년 마이클 잭슨은 정규 앨범 《Bad》를 발매했다.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5개의 싱글이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하나의 앨범에서 가장 많은 빌보드 1위 곡이 나온 신기록이었다. 총 판매량은 3200만 장 이상으로 추정되며 역사상 10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전작 《Thriller》에는 미치지는 못했지만 다수의 평론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5점 만점 중 올 뮤직 가이드에서는 4.5점을 《큐 매거진》에서는 만점을 받았으며 롤링 스톤에서는 4점을 줬다. 뉴욕타임즈에서는 'favorable'로 평가받았다. USA투데이는 "Thriller 이후로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최고의 패키지", 워싱턴 포스트는 "그의 명성을 손상시키진 않을 것이다." 라고 평가했다. VH1과 MTV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는 43위에 선정됐다.[83] 'Bad'는 발매 5개월 만에 1100만 장이 팔려 1987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앨범의 대성공과는 별개로 다음 해 열린 그래미에선 한 개의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Bad'로 인해 마이클은 단 2개의 음반으로 80년대 가장 많은 음반을 팔았으며 80년대 가장 성공한 가수로서의 입지를 공고화했다. 전작들과는 달리 모든 노래의 프로듀서에 참여하였으며 11곡 중 9개의 곡을 혼자서 만들어 아티스트로의 면모도 확고히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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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마이클의 첫 솔로 투어인 Bad Tour가 일본을 처음으로 시작됐다. 총 123회 공연 440만 명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이뤘으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인 웸블리 구장에서 7회 연속 매진이라는 신기록을 세워 50만 4천 명의 관객들을 불러왔다.[85]공연 도중 관객들이 기절하고 부상당하는 사태가 보고되어 안전상의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암표가 논란이 됐다. 6,500엔의 좌석을 구매하여 11만 엔에 다시 팔며 총 150만 엔을 번 암표상이 체포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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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1988년 첫 자서전 'Moon Walk'를 출판했다. 이 책은 4년 동안 모두 200만 권 넘게 팔렸고 뉴욕 타임즈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같은 해 3월, 캘리포니아주 'Santa Ynez'에 17억을 들여, 약 330만 5340평에 달하는 자신의 집인 네버랜드를 건립했다. 네버랜드에는 놀이동산과 동물원 영화관이 설치됐다. 얼마 후 그는 소련의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한 최초의 서방 연예인이 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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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1989년 마이클의 친한 친구이자 영화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소울 트레인 시상식에서 마이클을 'King Of Pop Rock Soul'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대중화되어 마이클의 별명이 'King Of Pop (팝의 황제)' 이 된다. 미국의 대통령인 조지 H. W. 부시는 마이클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세기의 아티스트상을 수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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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1990년 당시 슈퍼스타들의 평균 로열티는 12%였는데 마이클은 41%의 로열티를 지급받았다. Sammy Davis Jr.'s의 60번째 생일 축하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에 참가하여 "You Were There"를 라이브로 불렀으며 'Man in the mirror'로 얻은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 |
| 43 | 59 | == 본 문서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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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61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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