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3 vs r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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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은 노무현에게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갈 것을 제의하였고, 노무현이 이를 받아들여 방북 당시 노무현은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갔다. 군사분계선에서는 별도의 철책선이 없었으므로, 도로에 노란색 페인트로 임시 선을 그렸다. 문재인은 당시 노무현과 함께 남북출입사무소까지 동행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남북정상회담의 진행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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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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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참여정부가 끝난 뒤 경남 양산시로 내려가 칩거하였고, 동년 9월부터 자신이 세운 법무법인 부산으로 5년만에 복귀하여 대표 변호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듬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자, 담당 변호사를 맡았으며 노무현의 검찰 출석 당시에도 직접 변호인단으로 조사에 입회하였다. 1달 뒤인 5월 23일 노무현은 결국 서거하였고, 그는 국민장 위원회에서 상주를 맡아 장례절차 전체를 총괄하였다. 서거 이듬 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후 2011년 8월 신동아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 초 출마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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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참여정부가 끝난 뒤 경남 양산시로 내려가 칩거하였고, 동년 9월부터 자신이 세운 법무법인 부산으로 5년 만에 복귀하여 대표 변호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듬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자, 담당 변호사를 맡았으며 노무현의 검찰 출석 당시에도 직접 변호인단으로 조사에 입회하였다. 1달 뒤인 5월 23일 노무현은 결국 서거하였고, 그는 국민장 위원회에서 상주를 맡아 장례절차 전체를 총괄하였다. 서거 이듬 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후 2011년 8월 신동아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 초 출마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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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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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 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36]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대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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