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5 vs r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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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비동맹 운동, ASEAN, BIMSTEC의 회원국이다. 보석류, 옥, 석유, 천연가스, 자연자원 등이 매우 풍부하며,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메콩 강 유역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의 태양열 발전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명목 GDP는 5,670만 달러이며, PPP는 2억 2,15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빈부 격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부를 군부와 관련된 인물들이 틀어쥐고 있다. 2020년 기준, 미얀마의 인간개발지수는 189개국 가운데에서 147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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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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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전에는 버마(버마어: ဗမာ)라는 국명이 사용되었다. 미얀마의 군사 정권은 '버마'라는 호칭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데다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을 아우르지 못한다면서 135개의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명칭인 미얀마(버마어: မြန်မာ)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영국 정부 등도 반체제 인사들의 예를 따라 버마라고 부르지만 미얀마 정부의 항의가 이어지자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비르마니아(Birmania)라고 불리며 미얀마의 정치적 상태를 잘 모르는 제3국들은 여전히 버마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문화어 표기법에 따라 먄마라고 부른다. 유엔은 '회원국이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 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 대한민국 내부의 여론으로 인하여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자동 맞춤법 전환에서 '버마' 입력시 자동으로 '미얀마'로 고쳐지는 명령 체계는 폐지되었다. 이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일부 사회 단체도 '버마' 단독 표기를 시작하였다. 2003년 아웅산수지는 방한 중 [[대한민국]] 취재진들에게 국명을 '버마'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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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전에는 버마(버마어: ဗမာ)라는 국명이 사용되었다. 미얀마의 군사 정권은 '버마'라는 호칭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데다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을 아우르지 못한다면서 135개의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명칭인 미얀마(버마어: မြန်မာ)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영국 정부 등도 반체제 인사들의 예를 따라 버마라고 부르지만 미얀마 정부의 항의가 이어지자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비르마니아(Birmania)라고 불리며 미얀마의 정치적 상태를 잘 모르는 제3국들은 여전히 버마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문화어 표기법에 따라 먄마라고 부른다. 유엔은 '회원국이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 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 대한민국 내부의 여론으로 인하여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자동 맞춤법 전환에서 '버마' 입력시 자동으로 '미얀마'로 고쳐지는 명령 체계는 폐지되었다. 이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일부 사회 단체도 '버마' 단독 표기를 시작하였다. 2003년 아웅산수지는 방한 중 [[대한민국 반달|대한민국]] 취재진들에게 국명을 '버마'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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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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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윈은 1988년까지 군사 독재체제를 유지했지만, 경제정책의 실패로부터 심각한 인플레를 부르는 등, 버마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 1988년에는 네윈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나 네윈 장군은 7월에 BSPP 의장을 물러난다(8888 항쟁). 같은 해 9월 18일에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총선거를 공약으로 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수백개의 정당이 결성되었다. 군부는 국민통일당을 결성해 체제 유지를 도모했다. 미얀마 연방 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은 1989년 6월 버마(Burma)에서 현재의 미얀마(Myanmar)로 명칭을 바꿨다.)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수찌 등은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했지만, 아웅산수찌는 선거 전의 1989년 7월 20일에 가택연금 되었다. 이후, 그녀는 장기 연금과 해방을 반복해 겪었다. 1990년 5월의 총선거에서는 NLD와 민족 정당이 압승했지만, 군정은 선거 결과에 근거하는 의회 소집을 거부해, 민주화 세력의 탄압을 강화했다. 일부의 총선거 당선자는 국외로 피해 망명 정권으로서 버마 연방 국민연합정부 (NCGUB)를 수립했다. 군사 정권은 1994년부터 2007년에 걸쳐 신헌법 제정을 향해서 기본 원칙을 심의하는 국민 회의를 단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10일 및 같은 달 24일에 신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 가결된 일로, 정권이 주장하는 개혁개방의 로드맵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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