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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한편 통제사의 직무 교대는 통제영의 원문에서 이루어졌는데, 통영시 시내와 북쪽 외곽을 구분하는 고개의 이름인 '원문고개'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신임 통제사와 전임 통제사 모두 안장 얹은 타고 교대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가마를 탄 일로 심문을 받거나 유배형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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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통제사가 중앙 5군영의 대장과 동등하게 된 것은 고종 2년(1865년)에 이르러서였다. |
| 37 | == 임명 == | |
| 38 | 삼도수군통제사는 무관 출신 가운데 종2품 가선대부가 부임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가선대부보다 높은 고위직에서 행직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초대 이순신이 정2품 정헌대부로 통제사직을 수행한 이래 행직자로 확인된 경우는 54명에 이르고, 1대부터 30대까지로 한정하더라도 17명이 행직으로써 통제사직을 수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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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통제사들의 전임직을 살펴보면 훈련도감이나 어영청 등 중앙 군영의 2인자급 막료나 육군의 병마절도사로 있다가 영전되어 온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경상도와 전라도의 수군절도사로 근무하다 승진하여 부임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또한 조선 후기 군부의 실권을 쥐고 있던 중앙 5군영의 대장들 상당수가 이전에 통제사를 역임한 인물임이 지적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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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통제사의 직무 교대는 통제영의 영문인 원문에서 이루어졌다. 통제영이 소재했던 경남 통영시 시내와 북쪽 외곽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인 '원문고개'의 지명은 과거 이곳에 통제영의 원문이 위치하고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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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통제사가 부임할 때는 최소 25명의 수행원과 다수의 마필을 거느리고 위엄을 과시하였다. | |
| 37 | 45 | == 본 문서 정보 == |
| 38 | 46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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