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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평산 신씨]] | |
| 2 | 1 | ||<-2><table align=right><table width=450><table bgcolor=#fff,#191919><table bordercolor=#551D40><colbgcolor=#551D40><colcolor=#fff> '''{{{+1 신사임당}}}[br]申師任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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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파일:신사임당.jpg|width=100%]] | |
| 2 | ||<-2><nopad> [[파일:신사임당.jpg|width=100%]] || | |
| 5 | 3 | ||<-2> {{{-2 신사임당 추정 초상화}}} || |
| 6 | 4 | ||<width=80> '''본명''' ||불명 || |
| 7 | 5 | || '''당호''' ||사임당(師任堂), 인임당(姻姙堂), 임사재(姙師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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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18 | == 개요 == |
| 21 | 19 | 사임당 신씨는 [[조선|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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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1 | == 상세 == |
| 23 | 22 |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 신씨|평산(平山)]]이다. 본명은 신인선(申仁善)이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
| 24 | 23 |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기묘사화로 관직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한 아버지 신명화로부터 성리학을 교육받았으며, 아버지가 아들없이 죽자 경기도 파주의 시댁과 강원도 강릉의 친정집을 오가며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일찍 병사하였지만 아들 이이는 대학자이자 정치인으로, 딸 이매창과 아들 이우 등은 문인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동시대의 여성인 문정왕후, 정난정, 황진이 등과 비교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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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5 | 그림, 서예, 시 재주가 탁월하였고, 성리학적 소양도 있었으며,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도 능했다. 성리학적 지식과 도학, 문장, 고전, 역사 지식 등에 해박하였다. 태교에서부터 정성을 기울여 아들 주나라 주 문왕을 얻은 현숙한 부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사임(師任)으로 아호를 정하였다. 후대에서 여성임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별채를 의미하는 당(堂)을 붙여 부르기 시작하였다. 별호는 인임당(姻姙堂) 또는 임사제(姙師齊)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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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27 | 2007년 한국 여성계의 반대와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해 50000원 지폐의 주인공으로 전격 도안되었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그의 9촌 조카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는 14대 방손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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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 생애 == |
| 30 | 30 | 강원도 강릉부 죽헌리 북평촌(北坪村) 태생으로 외가이자 그의 생가 오죽헌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사임당의 형제에는 아들은 하나도 없고 딸만 다섯이었는데, 사임당은 그 중에서 둘째 딸이었다.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라는 이름의 선비였고, 어머니는 용인 이씨 집안의 선비인 이사온의 딸이었다. 스스로 사임당(師任堂)이라는 호를 지었는데, 주나라의 기틀을 닦은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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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64 | 죽음을 예감한 신사임당은 자신이 죽더라도 새장가를 가지 말라고 남편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반발심 때문인지 이원수는 공자, 증자, 주자도 새장가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임당이 하나 하나 논리적인 근거를 대면서 반박하자 이원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남편 이원수는 한성과 파주 율곡리와 강릉을 오가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을 채워 줄 자신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여인을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마침 나타난 여자가 바로 권씨였다. 그러나 권씨는 신사임당과는 정반대로 제멋대로 사는 탕녀였다. 첩인 주모 권씨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는 다시 이원수에게 첩인 권씨를 집에 들이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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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66 | 이원수나 사임당은 자녀들 중 특히 이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데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이이는 평생 화목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 딸 매창은 시·서·화에 능했는데, 신사임당은 딸의 재능을 알아채고 글과 그림을 직접 가르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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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68 | == 사망 == |
| 68 | 69 | 이이는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15세 때에 어머니 신사임당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외할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홀로 들어가 매일 1시간 동안 기도를 올릴 정도로 어머니를 아끼는 마음이 컸다. 행방불명이 된 이이를 찾던 가족들은 외조부 신명화의 사당에 엎드려 어머니를 낫게 해달라는 어린 아이의 정성어린 기도에 탄복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이 형제의 병구완에도 차도가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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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83 | 신사임당은 여성이면서도 성리학적 지식이 해박했다는 점과 아들 이이, 이우, 딸 이매창을 대학자와 화가, 작가로 길러냈다는 점 역시 사후 그가 찬탄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문정왕후와 정난정은 탐욕의 상징으로, 황진이 등을 음란의 상징으로 비난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신사임당을 부덕(婦德)과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칭송하였다. 또한 그녀의 아들 이이가 서인의 당수이자 노론의 학문적 시조가 되면서 우암 송시열, 명재 윤증 등이 의해 국가적인 위인으로 격상하였다. |
| 83 | 84 | |
| 84 | 85 | 경기도 파주군 율곡촌에 안장하였고, 후일 남편 이원수를 그녀의 묘소 곁에 안장하였다. 후에 이이가 종1품 숭정대부 의정부우찬성과 판의금부사까지 승진하여, 정경부인(정1품)에 추증하였다. 아들 율곡이 서인의 종주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대되면서 그는 부덕의 상징, 현모양처의 모범으로 추숭되었다. 또한 그녀의 친정 조카인 신립은 탄금대에서 전사하여 가문을 일으켰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의 선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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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 87 | == [[대한민국]] 50000원 지폐 도안 인물 == |
| 86 | 88 | [[파일:50000원 신사임당.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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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90 | '신사임당이 화폐 중심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 인물로 그 동안의 관례를 깨는 데 의미가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 인물이 신사임당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특히 여성계의 반대 의견은 강했다. 과연 신사임당이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인물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신사임당을 화폐 도안 인물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는 반발과 비판 여론이 존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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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92 | == 기타 == |
| 90 | 93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신익희는 친정아버지 신명화의 15대 방계 후손이 된다. 또한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사임당의 9촌 조카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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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99 | 이프는 또 초상 선정절차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단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화폐도안자문위원회 의장인 한국은행 이승일 부총재가 현재 화폐 초상 인물인 이순신, 율곡 이이와 같은 덕수 이씨 종친이며 율곡의 어머니로 덕수 이씨 집안의 족보에 기록되는 신사임당이 여성 화폐 인물로 선정된 것은 자문위원단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이승일 부총재의 본관은 덕수 이씨가 아닌 신평 이씨라고 해명하는 한편 고액권 도안 소재가 된 인물은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 97 | 100 | |
| 98 | 101 | 한 동화에서 사임당의 이름을 '인선'으로 작명한 이후 사임당의 본명이 '신인선'이라는 믿음이 존재하였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사임당의 본명이 적힌 문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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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103 | == 평가 == |
| 100 | 104 | === 긍정적 === |
| 101 | 105 | 신사임당은 봉건 시대의 제약을 받았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자기 개발에 매진했다. 시문과 그림, 글씨 등 조선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개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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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109 |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녀는 어머니와 부녀의 모범으로 양반 사대부가의 여식들에게 훈육되었다. 조선 후기 율곡의 학통을 이은 우암 송시열은 그녀의 시와 글, 서예작, 그림 등 찬사를 보내며 "그가 율곡을 낳으실 만하다"라고 격찬하면서 그녀에 대한 국가적인 존경, 숭배는 강화되었다. 송시열은 자신의 스승 이이를 추켜세우면서 율곡의 부모 역시 성자(聖者)로 현창하려 하였으나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통덕랑이라는 미관말직인데다가 무능력한 인물이라 결국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성자로 추앙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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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 111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1960년대 제3공화국 당시 한국의 위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추앙받았다. 그는 현재까지도 현모양처의 상징, 훌륭한 여성 작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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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113 | === 부정적 === |
| 109 | 114 | 신사임당은 지와 덕을 겸비한 총명하고 인자한 어머니였지만 자식들의 곁에 그리 오래 있지는 못하였다. 오늘날 신사임당이 대변하는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는 일본 식민통치의 잔재', '기존 남성중심 사회의 구미에 맞았던 인물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
| 110 | 115 | |
| 111 | 116 | 신사임당이 여성의 평가절하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여성들은 지난 사회 분위기에 따라 역사로부터 외면당하고 평가절하되어 왔다. 교과서에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던 신사임당은 어떠한가. 신사임당은 시, 글씨, 그림 등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예술가였지만 우리 역사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신사임당은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여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남편에게는 올바른 길을 가도록 내조하면서 7남매를 훌륭하게 키웠다.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잘 모신 효녀효부로 알려져 있다" 위의 문장은 신사임당에 대한 자료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신사임당의 개인의 능력이나 삶을 보여주기 보다는 누군가의 딸이면서 아내이면서 며느리이자 어머니였던 신사임당을 표현하고 있다.'고 사례를 들었다. 그에 의하면 '역사 속에서 여성은 이렇게 한정적인 역할만을 맡아 왔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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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118 | == 본 문서 정보 == |
| 113 | 119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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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 121 | * [[https://ko.m.wikipedia.org/wiki/%EC%8B%A0%EC%82%AC%EC%9E%84%EB%8B%B9|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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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 [[분류:평산 신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