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논란 및 사건 사고(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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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10 | 1916년 결성된 대정실업친목회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내선융화를 내세웠던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된다. 안상호는 1916년 11월 선출된 간부진에서 21명의 평의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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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12 | 따라서 단순히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친일 논란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친일 성격의 사회단체에서 실제 간부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논란의 핵심이다. |
| 13 | == '내선일체' 홍보에 활용된 가족 == | |
| 14 |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1918년 12월 10일 『매일신보』 기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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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당시 안상호의 가족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동화가 이루어진 사례로 소개됐다. 기사에서 안상호는 자신의 가정생활에 대해 조선 옷을 입지 않고 일본식 생활을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며, 이를 일제가 '내선일체'의 모범적인 사례로 선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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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특히 당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안상호의 가정이 식민통치의 동화정책을 홍보하는 데 활용됐다는 점은 그의 친일 논란을 더욱 키우는 요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