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0 vs r11 | ||
---|---|---|
... | ... | |
38 | 38 | ||<bgcolor=#FFF> {{{#000 1}}} ||<bgcolor=#C0DAFA> {{{#0E0E0E 아침은 빛나라 이 江山[br]銀金에 資源도 가득한[br]三千里 아름다운 내 祖國[br]半萬年 오랜 歷史에[br][br]燦爛한 文化로 자라난[br]슬기론 人民의 이 榮光[br]몸과 맘 다 바쳐 이 朝鮮[br]길이 받드세}}} ||<bgcolor=#FFB5B9> {{{#0E0E0E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br]은금에 자원도 가득한[br]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br]반만년 오랜 력사에[br][br]찬란한 문화로 자라난[br]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br]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br]길이 받드세}}} || |
39 | 39 | ||<bgcolor=#FFF> {{{#000 2}}} ||<bgcolor=#C0DAFA> {{{#0E0E0E 白頭山 氣像을 다 안고[br]勤勞의 精神은 깃들어[br]眞理로 뭉쳐진 억센 뜻[br]온 世界 앞서 나가리[br][br]솟는 힘 怒濤도 내밀어[br]人民의 뜻으로 선 나라[br]限없이 富强하는 이 朝鮮[br]길이 빛내세}}} ||<bgcolor=#FFB5B9> {{{#0E0E0E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br]근로의 정신은 깃들어[br]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br]온 세계 앞서 나가리[br][br]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br]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br]한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br]길이 빛내세}}} ||}}} |
40 | 40 | |
41 | 남한의 | |
41 | 남한의 애국가와 '강산' '삼천리' '백두산'과 같은 단어가 겹친다. 북한을 대표하는 노래치고는 특이하게도 '''[[김일성]], [[김정일]] 등 김씨 일가 찬양이 전혀 없다.''' 이는 거의 소련군 진주 직후에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이다. | |
42 | 42 | |
43 | 당시 애국가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 부분의 | |
43 | 당시 애국가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 부분의 좌파 문인들이 기존 애국가(현재의 남한 애국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고 결국 1947년 북한의 애국가가 만들어졌다. 북한이 김씨 일가의 독재 체제가 된 건 1956년, 8월 종파사건 등으로 견제 세력을 모두 제거한 이후의 일이다. | |
44 | 44 | |
45 | 같은 공산권 중 일부 국가의 경우 국부급 지도자에 대한 찬양이 국가에 등장하기도 했다. 소련은 | |
45 | 같은 공산권 중 일부 국가의 경우 국부급 지도자에 대한 찬양이 국가에 등장하기도 했다. 소련은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을 넣었던 적이 있던 소련 찬가엔 블라디미르 레닌|레닌도 가사에 들어갔는데, 레닌 부분은 1977년 국가 개정 당시에도 없어지지 않고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남았다. 사상적 면에서나 실질적 면에서나 국부에 가깝고, 호불호가 갈릴 정도의 큰 오점도 남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 |
46 | 46 | |
47 | 또한 사후 신격화를 하지 말고 고향에 잘 묻어 달라고 한 | |
47 | 또한 사후 신격화를 하지 말고 고향에 잘 묻어 달라고 한 레닌의 유언과는 달리 레닌을 미라|영구 보존처리해서 소련의 국가적 당위성과 자신의 권력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스탈린이 레닌의 내용을 넣었는데, 스탈린 사후에도 국가적 정당성의 가치는 보존해야 했던 당시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은 문혁 시기 의용군 진행곡에 마오쩌둥을 넣었던 적이 있다. | |
48 | 48 | |
49 | 49 | [youtube(B1ShOXCycZw)] |
50 | 50 | 이와 달리 북한 애국가는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거치고도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사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애국가와 별도로 김일성 찬양곡인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1946년에 만들어졌다.] 북한 애국가의 가사에서 지향하는 방향과 달리 북한은 사실상 왕조 국가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실로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