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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예종은 [[조선]]의 [[조선 국왕|제8대 국왕]]이다. |
| 30 | 30 | == 상세 == |
| 31 | 31 | 본명은 황, [[본관]]은 전주, [[자(이름)|자]]는 명조 또는 평남. [[묘호]]는 예종이며 [[시호]]는 양도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이다. [[세조(조선)|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이다. 1468년에 즉위했으나 1년 6개월만에 사망하였다. |
| 32 | == 생애 == | |
| 33 | 1450년(세종 32년) 1월 1일, [[세종(조선)|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수양대군]](세조)과 낙랑부대부인 윤씨(정희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해양대군에 봉해졌으며, 형인 의경세자가 1457년(세조 3년) 9월에 훙서하자 같은해 12월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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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1460년(세조 6년) 한명회의 딸 한씨(장순왕후)를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세자빈 한씨는 1461년(세조 7년) 11월 30일,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며칠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3년상을 마친 후인 1463년(세조 9년) 새로이 세자빈을 맞이하지 않고 간택 후궁인 한백륜의 딸 소훈 한씨(안순왕후)가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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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1468년(세조 14년) 9월 7일, 병환이 깊어진 세조의 선위로 수강궁중문에서 19세에 즉위하였다.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 세조는 다음날인 8일에 승하했다. 즉위는 했으나 어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는 조선왕조에서 행한 최초의 수렴청정이었다. 또한 선왕 세조가 만든 원상제도가 시행되어 실권은 없었고, 사실상에 정책을 결정한것은 세조때의 공신들인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파들 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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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468년에 남이의 옥 사건이 일어났다. 1469년에는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과의 개별 무역을 금지하였고, 그 외에도 병영에 딸려 있는 논과 밭을 일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매관매직을 통해 공신들이 전횡을 일삼자 분경을 금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 |
| 40 | == 사망 == | |
| 32 | 41 | == 본 문서 정보 == |
| 33 | 42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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