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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8대 국왕 예종 | 睿宗 | ||
출생 | 1450년 1월 23일 | |
1470년 1월 9일 (향년 19세) (사망 556주기) | ||
전주 이씨 | ||
재임기간 | 조선 해양대군 | |
1455년 9월 29일 ~ 1458년 1월 9일 | ||
조선 왕세자 | ||
1458년 1월 9일 ~ 1468년 10월 1일 | ||
1468년 10월 1일 ~ 1470년 1월 9일 | ||
이름 | 황 | |
평보, 명조 | ||
전호 | 경안전 | |
봉호 | 해양대군 | |
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 | ||
예종 | ||
가족 |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3. 생애[편집]
1450년(세종 32년) 1월 1일, 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수양대군(세조)과 낙랑부대부인 윤씨(정희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해양대군에 봉해졌으며, 형인 의경세자가 1457년(세조 3년) 9월에 훙서하자 같은해 12월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60년(세조 6년) 한명회의 딸 한씨(장순왕후)를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세자빈 한씨는 1461년(세조 7년) 11월 30일,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며칠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3년상을 마친 후인 1463년(세조 9년) 새로이 세자빈을 맞이하지 않고 간택 후궁인 한백륜의 딸 소훈 한씨(안순왕후)가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468년(세조 14년) 9월 7일, 병환이 깊어진 세조의 선위로 수강궁중문에서 19세에 즉위하였다.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 세조는 다음날인 8일에 승하했다. 즉위는 했으나 어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는 조선왕조에서 행한 최초의 수렴청정이었다. 또한 선왕 세조가 만든 원상제도가 시행되어 실권은 없었고, 사실상에 정책을 결정한것은 세조때의 공신들인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파들 이었다.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468년에 남이의 옥 사건이 일어났다. 1469년에는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과의 개별 무역을 금지하였고, 그 외에도 병영에 딸려 있는 논과 밭을 일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매관매직을 통해 공신들이 전횡을 일삼자 분경을 금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1460년(세조 6년) 한명회의 딸 한씨(장순왕후)를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세자빈 한씨는 1461년(세조 7년) 11월 30일,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며칠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3년상을 마친 후인 1463년(세조 9년) 새로이 세자빈을 맞이하지 않고 간택 후궁인 한백륜의 딸 소훈 한씨(안순왕후)가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468년(세조 14년) 9월 7일, 병환이 깊어진 세조의 선위로 수강궁중문에서 19세에 즉위하였다.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 세조는 다음날인 8일에 승하했다. 즉위는 했으나 어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는 조선왕조에서 행한 최초의 수렴청정이었다. 또한 선왕 세조가 만든 원상제도가 시행되어 실권은 없었고, 사실상에 정책을 결정한것은 세조때의 공신들인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파들 이었다.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468년에 남이의 옥 사건이 일어났다. 1469년에는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과의 개별 무역을 금지하였고, 그 외에도 병영에 딸려 있는 논과 밭을 일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매관매직을 통해 공신들이 전횡을 일삼자 분경을 금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4. 사망[편집]
5.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