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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국왕 정종 | 定宗 | |||
정종 영정 | |||
신상정보 | |||
출생 | 1357년 7월 26일 | ||
사망 | 1419년 9월 26일(62세) | ||
조선 한성부 인덕궁 (現 서울특별시) | |||
사인 | 노환 | ||
능호 | 후릉 (現 북한 개성시 판문구역) | ||
묘호 | 정종 | ||
휘 | 이방과 → 이경 | ||
국적 | |||
가족 | |||
군사 경력 | 복무기간 | ||
1376년 ~ 1398년 | |||
최종계급 | |||
중군 절제사(中軍 節制使) | |||
지휘 | |||
조선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 태조 친위부대) 조선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 중군(中軍, 친위부대, 경기좌우도 및 동북면 관할) | |||
참전 | |||
전라도 지리산(1377, 21세) 황해도 해주(1389년) 양광도 영주 도고산(1390년) 황해도 문화현(1393년) 평안도 영녕현(1393년) | |||
제2대 조선 국왕 | |||
재위 | 1398년 9월 5일~ 1400년 11월 13일 | ||
즉위식 | 경복궁 근정전 | ||
전임 | |||
후임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성은 이(李), 초명은 방과(芳果), 휘는 경(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원(光遠)이다. 선양(선위)한 뒤에는 아우 태종이 인문공예 상왕(仁文恭睿 上王)으로 존호(尊號)를 올렸고, 사후 조선 중후기까지 시호인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 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이다.
3. 생애[편집]
정종(조선)/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4. 사후[편집]
사망한 뒤 국상을 치를 때에도 왕의 국상은 후대왕이 상주가 되어야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왕위계승자인 정안군(→태종)이 아닌 장자(長子)인 의평군 이원생(義平君 李元生)이 섭상주(攝喪主:대리상주)가 되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바로 온인 공용 순효 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라는 시호를 올렸고 순효대왕이라고 불렀다가 명나라에서 공정이라는 시호를 올려 가져오자 공(恭)자가 두번 들어간다고 시호에서 공용(恭勇) 두 글자를 빼버렸다. 이때부터는 묘효 없이 공정 온인 순효 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 짧게 공정대왕(恭靖大王)이라 불렸다.
정종(定宗)이라는 묘호는 사후 250여년 후인 1681년(숙종 7년), 제6대 단종과 함께 정해졌다. 정종(定宗)의 의미는 '태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정국을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크게 염려하였다'는 뜻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바로 온인 공용 순효 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라는 시호를 올렸고 순효대왕이라고 불렀다가 명나라에서 공정이라는 시호를 올려 가져오자 공(恭)자가 두번 들어간다고 시호에서 공용(恭勇) 두 글자를 빼버렸다. 이때부터는 묘효 없이 공정 온인 순효 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 짧게 공정대왕(恭靖大王)이라 불렸다.
정종(定宗)이라는 묘호는 사후 250여년 후인 1681년(숙종 7년), 제6대 단종과 함께 정해졌다. 정종(定宗)의 의미는 '태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정국을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크게 염려하였다'는 뜻이다.
5. 능묘[편집]
능은 황해도 개풍군 흥교리(興敎里)에 있는 후릉(厚陵)이다. 강화도 북쪽의 예성강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후대 왕릉과는 달리 후릉(厚陵, 정종과 정안왕후), 제릉(齊陵, 신의왕후), 후궁 성빈 지씨의 능은 북한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