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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신라대학교]] 모 학과에서 평가한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에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 등을 선정하여 기념패를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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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2500만원의 의정활동 잔여금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신문광고 수익금 3000만원을 장애 아동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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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퇴임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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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법무법인 지성에서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 오세훈 변호사는 중국경제 전문변호사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 이후 아파트 관리 프로그램 업체들의 발전을 위한 '한국 공동주택 관리협의회'에 고문변호사로 추대되었다. 2004년 장진, 이영재, 송일곤 감독의 영화 《1.3.6》 중 '뫼비우스의 띠'에 특별출연하기도 하였다. 2004년 설악국제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대회에 참가하여 3시간 25분 14초에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하였다. 이후 트라이애슬론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후 Tri-A라는 동호회를 창단하여 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2005년 통영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는 배우 송일국,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과 팀을 이루어 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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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 여성재단에서 창립한 '미래포럼'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과 함께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50] 또한 같은 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변호사에 위촉되어 활동하였다.[51] 그리고 대한사회복지회 요청으로 인한 '사랑의 사진전' 모델료로 받은 3000만원 전액을 장애아와 미혼모를 위해 써달라며 기탁하였다. 2005년 12월에는 '희망원정대' 2기 원정대원으로, 엄홍길 원정대장 및 가수 안치환 등과 함께 장애인의 멘토가 되어 함께 킬리만자로 등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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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저명인사 초청 발레공연에 초청되어 연습 후 실제 무대에 출연하였다. 현대무용가 최정자 교수와 공동으로 무용문화포럼을 창립하고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부산 대우 월드마크 분양 과정에서 법조타운이라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오세훈을 아파트 광고모델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시절 '오세훈법' 을 통과시키며 얻은 깨끗한 정치 이미지로 청호나이스 아이스콤보의 TV광고를 촬영하였고 '속 보이는 얼음처럼 세상도 투명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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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여론조사 결과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호 후보 1위로 조사되었다. 11월 2일 오세훈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한나라당에서는 맹형규, 홍준표, 박진 등의 인사가 계속 거론되었으나, 2006년 4월 5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강금실 전 장관이 여론조사 결과 1위로 나타나자,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적극적으로 오세훈의 영입을 주장했다. 결국 2006년 4월 9일 경선 참여를 선언하고, 4월 25일 여론조사에서 65.05%의 지지율을 얻으며 총 41%의 득표로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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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일 강금실이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공천된 직후 나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지지율에서 20%p이상 강금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연령층 지지율에서도 오세훈은 강금실을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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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후보는 세운상가와 동대문 운동장 철거, 강북 중심의 뉴타운 50곳 건설 등 강북 개발과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하고 오래된 화물차를 폐기 유도한다는 대기질 개선 공약을 내걸었다. 한편, 오세훈이 변호사 시절 찍었던 정수기 CF가 선거일 90일 전부터 본인이 등장하는 동영상, 사진 광고를 금지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되기도 했다. 5월 21일 오세훈 후보의 유세를 돕던 박근혜 대표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충호에게 문구용 칼로 습격당했다. 이후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지면서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오세훈은 2,409,760표(61.05%)를 득표하며 1,077,890표(27.31%)를 얻은 강금실을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