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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30 | 귀족들의 지배를 받던 과거에는 귀족적인 모습도 갖추며 발전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민중적이 되었으며 귀족적 잔재가 많이 남은 유교는 일본에서 볼 수 있다. 한족들은 이 사상을 바탕으로 귀족들을 제거하려고 했고 그 결과 한족 귀족들은 한민족이나 야마토 민족의 귀족들과 달리 이른 시기에 전멸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귀족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교에 있어서도 귀족의 영향력이 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 시절은 물론 고려까지는 귀족 세력[11]이 만만치 않았으며 조선도 초기 혹은 사림 집권 전까지 귀족 출신[12]은 물론 제주 고씨처럼 전보다는 망했으나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도 그냥 음서 같은 특권을 얻거나 양반, 사대부 취급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순수 상민 출신과 양반 비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애매할 수 있으나 사림 세력의 팽창 이후 더욱 강해진 중국화에 따라 중인 취급(?)을 받는 옛 귀족들도 많아졌으며 이들은 다시 귀족 출신인 사실이 유리해진 일제강점기 때 재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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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32 | 동아시아의 전근대 이전 민본주의나 능력주의를 담당하여서 유교사상의 특징 또는 핵심 사상은 수기치인의 학, 즉 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학문이며 왕도 정치를 향한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버드 중국사에 의하면 유교는 내부 통합은 몰라도 외부의 위협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시각에 의하면 유학자들은 스스로 가진 힘으로 지배층이 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유교적 기질이 강했던 한송명 왕조는 적대자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수혜를 베풀었고 이는 정복을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귀족들은 유학자들보다 실리를 추구하여 중국에 더 나은 번영과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
| 33 | == 유교의 경전 == | |
| 34 | * 사서 : 논어, 맹자, 대학, 중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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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오경 :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 |
| 33 | 37 | == 본 문서 정보 == |
| 34 | 38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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