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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56 | == 역사 == |
| 57 | 57 | 1979년에는 팔라비 왕조의 반대세력들이 모여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1979년 2월에는 레자 팔라비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하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망명 생활에서 벗어나 테헤란으로 귀환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이란 최후의 왕조인 팔라비 왕조마저 무너지게 된다. 이후 1979년 4월에 국민투표를 거쳐서 이란은 일반국가에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하였으며, 1979년 12월에는 또 국민투표를 거쳐 신정헌법 제정에도 박차를 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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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이후 이란의 급격한 이슬람화에 반발하여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쿠르드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쿠제스탄 등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신생 이슬람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강경하게 진압하였고, 몇 십년 동안 극심한 탄압을 통하여 반대파들을 억누르기 시작하였다. 이슬람 정권은 이슬람권이 아닌 세력들을 모두 탄압하였으며, 심지어 무슬림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급진파가 아니면 배척하였다. 초기에는 레자 팔라비 국왕을 쫓아내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도 함께 이란 신생 정부 구성에 참여하였는데, 나중에는 호메이니의 명에 의하여 반국가주의자라고 누명이 씌워진 후에 대다수가 처형되거나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부패인사라고 몰려 해외로 | |
| 59 | 이후 이란의 급격한 이슬람화에 반발하여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쿠르드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쿠제스탄 등지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신생 이슬람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강경하게 진압하였고, 몇 십년 동안 극심한 탄압을 통하여 반대파들을 억누르기 시작하였다. 이슬람 정권은 이슬람권이 아닌 세력들을 모두 탄압하였으며, 심지어 무슬림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급진파가 아니면 배척하였다. 초기에는 레자 팔라비 국왕을 쫓아내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도 함께 이란 신생 정부 구성에 참여하였는데, 나중에는 호메이니의 명에 의하여 반국가주의자라고 누명이 씌워진 후에 대다수가 처형되거나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부패인사라고 몰려 해외로 쫓겨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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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 61 | 미국이 레자 팔라비 국왕이 송환된 직후 처형당할 것이 뻔했기에 국왕의 이란 송환을 거부한 직후인 1979년 11월 4일에 무슬림 학생들 일부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였으며, 52명의 외교관들과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미국에 협박문을 보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즉시 이란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동시에 구출 작전을 폈으나 작전은 실패하였고, 이로 인하여 지지도가 폭락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서 실패하면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한다. 이후 호메이니가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인질 협상에도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카터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에 모든 인질들이 국내로 귀환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이 사태도 끝난다. 한편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팔라비 국왕은 이후 미국을 떠나 이집트로 향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은 1980년 7월 27일에 암으로 이집트에서 그대로 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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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1980년 9월 22일에는 이라크 군대가 이란 서부 지역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초기에는 우세를 점하였으나, 1982년 중반에 이르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란군에 의하여 이라크군이 다시 이라크로 | |
| 63 | 1980년 9월 22일에는 이라크 군대가 이란 서부 지역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초기에는 우세를 점하였으나, 1982년 중반에 이르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란군에 의하여 이라크군이 다시 이라크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 1982년 7월에는 이라크가 수세로 들어갔고, 이란군이 오히려 공세 작전을 펴면서 바스라 등과 같은 이라크의 대도시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이라크가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이라크의 패배로 끝날 때인 198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란의 전쟁 사상자는 약 23만 명에 달한다고 전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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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65 |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전된 후인 1989년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총리가 취임하였으며, 친자본주의 정책을 피고 경제 복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정책들을 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슬람 정책에 위배되거나 급진 이슬람 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는 감히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1997년에 라프산자니 총리는 중도 개혁주의자인 모하마드 하타미 총리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하타미 총리는 이란을 조금 더 자유주의적, 민주적으로 만드려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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