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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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본관은 나주, 아명은 귀농, 자는 미용, 호는 다산·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철마산인·문암일인, 당호는 여유당이며, 시호는 문도이다. |
| 28 | 28 | == [[정약용/생애|생애]] == |
| 29 | 2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정약용/생애)] |
| 30 | == 사망 == | |
| 31 | 1818년(순조 18) 음력 5월에 귀양이 풀려 승지에 올랐으나 음력 8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혼인 60주년 회혼일 아침인 1836년 마현리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다산이 남긴 마지막 시는 회혼시였다.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들에게 신신당부로 이른 말은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텨라"는 것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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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1910년(융희 4) 7월 18일에 정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되고 시호 '문도(文度)'가 내려졌다. | |
| 30 | 34 | == 본 문서 정보 == |
| 31 | 3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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