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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예전에도 무링요보다는 무리뉴라고 표기한 기사가 많았네요."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무리뉴라고 표기된 초창기 기사들의 상당수는 José를 스페인어식으로 표기한 '호세 무리뉴'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 무링요라고 표기된 기사의 대부분은 '조세 무링요'라고 표기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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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45 |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
| 46 | == 감독이 되기 전== | |
| 46 | == 감독이 되기 전 == | |
| 47 | 47 | 본인이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이른 나이인 24세에 은퇴했다. 부모님도 이것을 알았는지 선수시절 아들에게 " 선수로서 기술을 익히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안목을 기르라 " 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두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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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49 |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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