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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zione Sportiva Roma S.p.A.
이름
주제 무리뉴
José Mourinho
본명
주제 마리우 두스산투스 모리뉴
José Mário dos Santos Mourinho
출생
1963년 1월 26일 (61세) /
포르투갈 제2공화국|포르투갈 세투발현 세투발[1]
국적
신체
키(신체)|키 176cm / 체중 82kg[2]
직업
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코치(스포츠)|축구감독
소속
선수
히우 아브 FC (1980~1982)
CF 우스 벨레넨스스 (1982~1983)
세심브라 (1983~1985)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1985~1987)
코치
스포르팅 CP (1992~1993 / 수석 코치)
FC 포르투 (1993~1996 / 수석 코치)
FC 바르셀로나 (1996~2000 / 수석 코치)
감독
SL 벤피카 (2000)
UD 레이리아 (2001~2002)
FC 포르투 (2002~2004)
첼시 FC (2004~200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첼시 FC (2013~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0~2013)
토트넘 홋스퍼 FC (2014~2017)
AS 로마 (2018~ )
국가대표
없음
1. 개요
1.1. 이름표기
2. 감독이 되기 전3. 선수단 육성
3.1. 공격수 유형 유망주 육성 능력 부족
4.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5. 어록

1. 개요[편집]

포르투갈의 축구 감독.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1년부터 AS 로마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감독 최초 유럽 4개국 4개 리그(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타이틀 획득, 트레블, 21세기 유일한 4대리그 제외 챔스 우승을 포함한 2회의 챔스 우승을 기록했다. 리그 성향도 모두 다르고 구단 특성도 제각각인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각 리그 내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모두 들어본 경험이 있다. 때문에 검증 면에서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다.

체육교사, 통역관 등을 거쳐 감독으로 부임한 후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했다. 프리메이라 리가 소속의 히우 아브에서 데뷔했고, 이후 활약 없이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1987년에 24세의 아주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선수 시절 개인 기록은 94경기 13골.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이 까닭인지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1.1. 이름표기[편집]

José Mourinho라는 이름을 유럽 포르투갈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가 된다. 이름 부분의 경우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이중모음 오우로 읽히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o계 장모음과 이중모음은 ㅗ로 표기하므로 모리뉴라고 해야 맞지만 한국에서는 '무리뉴'가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이름인 José는 /ʒuˈzɛ/로 발음되며, 화자에 따라 /ʒoˈzɛ/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포르투갈 사람들은 /ʒuˈzɛ/로 발음하는 편이다.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모우린호[6] 등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이는 유럽 포르투갈어에 대한 무지와 축구계에서의 브라질 포르투갈어의 위상 그리고 브라질 지역별 포르투갈어의 다양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표준 유럽/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는 어말의 o는 ㅜ로 약화되는데 일부 브라질 지방 사투리로는 그냥 ㅗ로 읽는다.

브라질 포르투갈어 대화어체에서는 종종 이뉴를 잉유로 뭉개서 읽는다.(호나우지뉴->호나우징유).

그러므로 브라질 포르투갈어로는 모링유, 혹은 모링요라고 읽을 수도 있다. 원래 해축팬들에겐 축구선수 호나우딩요 때문에 아무래도 모링요라고 읽는게 더 익숙하다. 다만 브라질 포르투갈어는 어말 외 모음이 약화되지 않으니 이름도 조제라고 읽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르투갈 또한 엄연히 세계 축구계의 강호일 뿐더러(호날두가 어느 나라 선수인가?) 모리뉴 본인이 유럽 포르투갈인이므로 유럽 포르투갈어로 모리뉴라고 읽어야 맞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무리뉴라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오다가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모리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원칙에 따른 표기법을 사용한 기사에는 '모리뉴가 뭐임?', '제발 모리뉴란 이름좀 쓰지 마세요' 하는 댓글이나 달리곤 한다. 초창기에 정확한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면의 동료는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버질 판 데이크, 히샤를리종, 티아고 실바,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라울 곤살레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수없이 많다.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참고로 그의 고향 세투발에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제 마리우(Ze Mario)'라고 부른다고. 무리뉴는 이 호칭이 자신을 자신답게 느껴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축구 뉴비와 고인물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링요라는 이름에 익숙한지 여부다. 위에 길게 서술된 '무리뉴 vs 모리뉴'도 고인물들에게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무리뉴가 2004년 포르투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첼시를 맡아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그의 이름은 언론에 무리뉴와 무링요가 혼재되어 나타났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2004년과 2005년 2년간 검색되는 모든 기사의 59%가 무리뉴, 41%가 무링요로 표기되어 있으며, 모리뉴라고 표시된 기사는 단 3건(0.3%)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중계에서 대부분의 해설자나 캐스터들이 무링요 감독이라고 불렀고 대부분의 언중들도 입에 착 감기는 발음인 무링요라고 불렀다. 무리뉴는 언론에만 등장하는 이름일 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리뉴라고 쓰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차차 표기의 대세가 무리뉴로 옮겨가면서 무링요라는 언론 표기는 거의 사라져갔고 무링요라 발음하던 중계진들도 대부분 무리뉴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리뉴의 진정한 이름은 무링요라고 생각하며 무링요를 그리워하는 올드비들이 많다.

2006 독일 월드컵 이전까지는 외국 축구선수들을 뭐라고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나 2006WC를 계기로 외국 축구선수들의 발음을 정확히 하자는 언론사들의 반성을 계기로 무리뉴처럼 xx요로 표기하던 nho로 끝나는 브라질, 포르투갈인들의 이름도 xx뉴로 표기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호나우딩요, 무링요, 카르발요, 호빙요. 드록바, 콜러-> 콜레르, 키웰-> 큐얼등 많은 선수들의 이름에 정정이 있었다." href="https://namu.wiki/w/%EC%A3%BC%EC%A0%9C%20%EB%AC%B4%EB%A6%AC%EB%89%B4#fn-9" data-v-ce25a9b4=""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2, 117, 216); text-decoration: none; font-size: 0.8em; vertical-align: super; white-space: nowrap;">

"예전에도 무링요보다는 무리뉴라고 표기한 기사가 많았네요."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무리뉴라고 표기된 초창기 기사들의 상당수는 José를 스페인어식으로 표기한 '호세 무리뉴'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 무링요라고 표기된 기사의 대부분은 '조세 무링요'라고 표기되어 있다.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2. 감독이 되기 전[편집]

본인이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이른 나이인 24세에 은퇴했다. 부모님도 이것을 알았는지 선수시절 아들에게 " 선수로서 기술을 익히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안목을 기르라 " 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두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19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

지금은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코치 시절에는 무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원정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되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쓰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무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3. 선수단 육성[편집]

무리뉴는 수비수 및 수비적인 포지션에 위치한 유망주들을 제법 육성해낸 케이스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경우 아직 전성기였던 페페에게 볼멘소리도 들어가면서 라파엘 바란을 기용하여 팀에 자리를 잡게 만들었고, 첼시 2기 시절에는 퀴르트 주마를 중용하여 게리 케이힐을 대체하기도 하였다. 맨유에서도 알렉스 퍼거슨의 추천이 있기는 했지만[30] 스콧 맥토미니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게 기회를 꽤 준 편이다. 토트넘에 와서도 2군 선수인 자펫 탕강가를 1군에 콜업하고  올리버 스킵에게 때때로 출전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중 스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토트넘의 핵심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현재 AS 로마에서는 니콜라 잘레브스키를 좌측 윙백으로 포지션 변경시켜 육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유망주를 키울 능력이 없는지라 어린 선수들을 주로 바이백이나 임대를 보내는 식으로 경험치를 먹이는 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다니엘 카르바할인데, 카르바할의 이적 당시 레버쿠젠은 다소 껄끄러워 했지만 무리뉴는 카르바할의 재능을 알아보고 크게 될 거라며 그를 보냈다. 비록 무리뉴는 레알을 떠났지만 카르바할은 레버쿠젠에서 제대로 포텐을 터뜨렸고, 무리뉴의 후임으로 들어온 카를로 안첼로티 체제에서 바이백으로 복귀한 카르바할은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라이언 세세뇽도 무리뉴가 꾸준히 세세뇽의 플레이를 모니터링 하면서 그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 동기부여가 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으며, 토트넘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해 애매하다고 평가받던 올리버 스킵을 노리치에 임대로 보낸 것은 무리뉴가 토트넘에 와서 남긴 신의 한 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3.1. 공격수 유형 유망주 육성 능력 부족[편집]

그러나 수비수의 육성을 어느 정도 장려한 것과 달리 미드필더나 공격수 쪽은 완성된 선수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를 영입해 오는 경향이 강한데, 전성기였던 첼시 1기와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디디에 드록바, 클로드 마켈렐레, 디에고 밀리토, 사무엘 에투, 베슬리 스네이더르, 앙헬 디 마리아, 사미 케디라 같이 정말 실력있는 선수들을 적절하게 영입하며 팀의 뼈대를 구축했지만 첼시 2기부터는 월드 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선수가 내쳐지고 전성기가 지났거나 빅팀에 어울리지 않는 기량을 가진 선수를 비싸게 사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육성 실패 사례는 케빈 더브라위너, 모하메드 살라이다.

더브라위너의 경우 그 당시 윌리안, 오스카, 에덴 아자르가 있었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안드레 쉬를레까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리뉴는 2013-14 시즌 더브라위너가 주전으로 뛰기 위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을 하려는 걸 막고서는 리그에서 단 3경기 밖에 기용하지 않았고, 더브라위너가 주전 출장을 요구하자 포지션 경쟁자들을(후안 마타, 아자르, 오스카, 윌리안, 쉬를레) 모두 불러모아서 그들 앞에서 더브라위너의 스탯과 경쟁자들의 스탯을 비교해 가면서 더브라위너를 몰아세웠다고 한다.[36]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더브라위너는 VfL 볼프스부르크로 임대를 떠나서 16경기에서 3골 6도움을 올리며 본인이 기회를 받을 만하다는 걸 증명했지만, 결국 볼프스부르크로 완전 이적했고 2014-15 시즌에 더브라위너는 리그에서만 10골 21도움을 올리며 분데스리가 최다 도움을 갱신하고 평가가 짜기로 유명한 독일의 스포츠 잡지 키커에게 월드 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뒤 더브라위너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서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거듭난 걸 보면 바이백 조항조차 달지 말라고 요청한 무리뉴의 안목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결과론이라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당시에는 팬들이 보기에도 맞는 결정이라고 해도 이는 오히려 무리뉴의 선수 안목이 그냥 일반 팬 수준이라는 걸 증명할 뿐이다.[39] 또한 보기에 맞는 결정이라고 하기에도 위의 선수들은 임대에서 죽을 쑨 것도 아니고 본인들의 경쟁력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선수들을 써보지도 않고 내친 것은 무리뉴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두 명의 유망주들이 무리뉴에게 내쳐진 뒤 타 팀에서 에이스 놀이를 하기 시작한 걸 보면 무리뉴의 안목은 부족한 게 맞다.

하지만 무리뉴가 AS로마의 감독이 된 이후엔 첼시에서 부진하고 있던 타미 에이브러햄을 영입한 뒤 세리에A의 베스트 스트라이커로 키웠으며, 2003년생이자 로마의 유스인 펠릭스 아페나잔을 콜업하여 후보자원으로서 뛸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켰다. 또한 폼이 떨어진 미키타리안을 다시 살려내어 팀이 유컨우승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4. 무리뉴에 대한 말, 말, 말[편집]

나는 주제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두뇌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유머 감각이 있다. 그가 보기에는 프리미어 리그란건 알렉스 퍼거슨|노련한 아르센 벵거|보안관이 오랜 세월 주저앉아있는 마을과 같겠지. 그리고 자기는 그 마을에 홀몸으로 굴러들어온 건맨이라는 기분으로 있는게 아닐까.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빅클럽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작은 팀에서 시작했지만 FC 포르투에서 리그 우승, UEFA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냈다. 첼시와 인터 밀란에서의 활약은 잘 알려져있다. 무리뉴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알렉스 퍼거슨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두 안다. 그는 여러 구단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그래서 우리 회장이 데려온 것#

무사 시소코
무리뉴 감독은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명이다. 그는 우리 선수단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집중을 유지하고, 하나된 상태를 유지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의 중요성을 심어줬다. 이제 AS 로마 선수단은 그와 함께 (컨퍼런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니콜로 차니올로

5. 어록[편집]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간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는 내가 세계 제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능가하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첼시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오만으로 듣지 않아줬으면 하지만, 최고의 감독을 손에 넣었다.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첼시로 이적한 직후 기자회견에서)(참고)
유럽 3대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거머쥔 건 나 하나뿐이다. 앞으로는 '특별한 존재(Special One)'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Only One)'라고 불러주길 바란다.[3]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기자회견)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4]
맨유에서 차지한 리그 2위는 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업적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다는 솔직한 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바르사 기자 : 당신은 바르사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사에 무례하느냐?
무리뉴 :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팀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 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 받을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5]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두 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말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선수들 앞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주장의 임무다(첼시 부임 이후 존 테리를 주장에 임명하면서)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인테르가 이겼으니까. 한편으로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첼시가 져버렸으니까. 또한 나는 행복하다. 인테르 팬들이 기뻐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다. 첼시 팬들은 슬퍼하고 있으니까. 불행으로 행복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생이다.[6]
오늘 시합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싶거든 우선 나를 죽이고나서 해라.
나는 경기력이 나쁜 선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외부에서의 공격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팀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선수를 지켜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7]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시합이 끝난 후 매스컴 앞에서 선수를 비판하는 것이다. 패배나 무승부 후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보호받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매스컴을 기쁘게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려야할 적은 나이며, 기분 나쁜 녀석은 나이며, 건방진 녀석은 나이며, 무능한 감독은 바로 나다. 내가 그러한 대상이 되는 것은 팀에 있어서 긍정적인 것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무리뉴 : 압박감? 무슨 압박감?
기자 : 2게임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
무리뉴 :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한다. 축구에선 없다.
두려운 것은 신 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
축구에는 시인들이 많지만 시인들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8]
경기 전후로 인터뷰에 응할 때는 언제나 그것도 시합의 일부로서 대처하고 있다. 경기 전의 기자회견에 나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다. 경기 후의 기자회견까지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를 네 번 우승시키는 감독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No.1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No.2를 해주겠다. 현재로선 유다가 No.1이란 뜻이다.[9]
Q. 첼시 감독 시절이던 2015년, 절대 토트넘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지 않았느냐?
A. 그 땐 내가 짤리기 전이었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동일한 원칙을 가진 선수들은 나와 문제가 전혀 없었고 또 없을 거다. '난 오늘은 75%만 뛰어야지. 난 오늘은 한 95%만 해야지.'라는 태도를 가진 선수들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100%을 요구할 것이고 나 또한 100%로 임하기 때문이다.[10]
I have nussing to say. (할 말이 없다.)[11]
중국 요리를 평가할 의향은 있지만 중국선수는 모른다.[12]
첫 두 질문을 받아보니, 중국 축구가 왜 그렇게 쓰레기인지, 그리고 중국이 수많은 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뭣때문에 축구만은 예외인지 난 알겠다. 왜냐면 기자들이 영 프로답지 않거든.[13]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호날두는 마데이라 제도|마데이라 출신이라 어린 시절 가정 교육을 잘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남을 공경할 줄 모르고 성숙하지 못하다.[14]
손흥민은 공격적인 선수다. 빠르고 전환도 좋다. 특히 자유로운 공간을 허용할 경우 손흥민은 매우 위협적이다.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팀을 상대로 볼을 빼앗아 빠른 공수전환이 이루어질 때, 내 생각에 손흥민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15]

나는 선수들간 비교를 하지 않는다. 손흥민과 케인은 월드클래스 선수들이다. 그것이 전부다.[16]

그건 당신들(기자, 미디어)에 달린 문제다. 소니는 스스로 증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냈다. 매 시즌마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물론 팀이 더 좋아지면 기량을 끌어올리기 더 쉽겠지만, 소니가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없다.[17]

오, 대한민국의 왕. 무슨 일이시오. 질문이 있으시다고? 그럼 대답해 드려야지.[18]
[1] 수도 리스본에서 가까운 항구도시이다.[2] 현재 체중.[3] 이후 펩 과르디올라도 라리가, (무리뉴와는 달리 세리에 A는 아니지만) 분데스리가,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면서 3대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 감독이 되었다.[4] 그런데 17-18시즌 맨유가 2위를 확정한 후 1위를 놓쳤다면 2위가 최고의 결과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라며 까이고 있다.[5]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적시장에 거액을 쏟아붓는 첼시에 돈으론 성공을 살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둘의 사이는 엄청 좋다(...). [6] UCL에서 인테르의 감독으로서 첼시에게 승리한 뒤.[7] 실제로 2019-20 시즌 토트넘에서 손흥민탕기 은돔벨레에 대한 무리뉴의 평가는 극과 극인데, 평소 팀에 헌신적인 손흥민이 레드 카드를 먹고 퇴장했을 때 무리뉴는 그를 옹호했지만, 은돔벨레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팀에 방해가 되자,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8] 참고로 이 말은 야약스와의 유로파리그 결승후 아약스 감독인 피터 보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롱볼 게임때문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게임을 하지 못했다. 양팀 서로 기회가 별로없는 지루한 게임이였다"란 말을 반박한 것이다.[9] 2017년 FA컵 준결승에서 첼시에게 0-1로 패배한 직후의 인터뷰. 경기중 자신을 배신자라 야유했던 첼시 서포터들에게.[10] 출저: 아마존 토트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 1화에서.[11] 2015년 첼시 감독이었을 당시 졸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리버풀에게 홈에서 3:1 패배를 당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 특유의 억양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해외에서 무리뉴를 깔 때 등장하는 어록.[12] 인테르 시절이었던 2009년 8월 중국에서 열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경기 후 (라치오에게 2-1 패배) 인터뷰에서 중국측이 중국 선수에 대한 평을 원했다거나, 무리뉴를 호색한으로 몰고갔다, 중국까지 와서 경기를 하는 걸 보니 세리에A에 돈이 없는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무리뉴를 도발했다는 루머가 한때 나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인터뷰를 실은 기사(아카이브로 대체)가 존재하지만 저런 내용은 없다. 다만 중국 축구가 쓰레기라는 말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13] 앞서 취소선 처리된 위 인용문이 나온 것으로 날조되었던 인터뷰에서 실제로 한 말이다. 중국 선수, 중국 여자 이야기는 날조지만 중국 기자들이 개념없는 질문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앞서 질문 두 개가 있었는데, 원문 기사에 의하면 첫 번째 질문은 이제 막 계약한 사무엘 에투의 풀타임 투입은 누가 억지로 시킨거 아니냐, 두 번째 질문은 라치오도 당신이 불평했던 똑같은 폭염이 흐르는 경기장에서 경기했는데 왜 걔들은 (인테르를) 이겼는가 하는 도발성 질문들이었다.[14] 이 말 자체는 전형적인 무리뉴의 독설이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논란 및 사건 사고|해당 문서를 보면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자 호날두의 문제를 매우 잘 나타냈다며 재평가받고 있다. 반대로 후술한 손흥민에 대해선 월드 클래스급이라며 언사도 해줬다.[15] 토트넘 감독 부임 전에 남긴 평가다.[16] 호날두, 드록바, 즐라탄 등 이제까지 함께해 온 위대한 스트라이커들과 비교해달란 기자에 질문에 대한 답변.[17]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에 얼마나 다가섰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풀이하자면 이미 월드 클래스 수준에 도달했지만 언론의 주목도가 낮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도 "세상은 신중하고, 조용하고, 겸손하면서도 무난한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손흥민이 덜 주목받는 것에 아쉬운 마음을 내보였다.[18] 아마존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 에서 장난치며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