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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zione Sportiva Roma S.p.A.
이름
주제 무리뉴
José Mourinho
본명
주제 마리우 두스산투스 모리뉴
José Mário dos Santos Mourinho
출생
1963년 1월 26일 (63세) /
포르투갈 제2공화국|포르투갈 세투발현 세투발[1]
국적
신체
키(신체)|키 176cm / 체중 82kg[2]
직업
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코치(스포츠)|축구감독
소속
선수
히우 아브 FC (1980~1982)
CF 우스 벨레넨스스 (1982~1983)
세심브라 (1983~1985)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1985~1987)
코치
스포르팅 CP (1992~1993 / 수석 코치)
FC 포르투 (1993~1996 / 수석 코치)
FC 바르셀로나 (1996~2000 / 수석 코치)
감독
SL 벤피카 (2000)
UD 레이리아 (2001~2002)
FC 포르투 (2002~2004)
첼시 FC (2004~200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첼시 FC (2013~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0~2013)
토트넘 홋스퍼 FC (2014~2017)
AS 로마 (2018~ )
국가대표
없음
1. 개요
1.1. 이름표기
2. 감독이 되기 전

1. 개요[편집]

포르투갈의 축구 감독.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1년부터 AS 로마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감독 최초 유럽 4개국 4개 리그(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타이틀 획득, 트레블, 21세기 유일한 4대리그 제외 챔스 우승을 포함한 2회의 챔스 우승을 기록했다. 리그 성향도 모두 다르고 구단 특성도 제각각인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각 리그 내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모두 들어본 경험이 있다. 때문에 검증 면에서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다.

체육교사, 통역관 등을 거쳐 감독으로 부임한 후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했다. 프리메이라 리가 소속의 히우 아브에서 데뷔했고, 이후 활약 없이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1987년에 24세의 아주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선수 시절 개인 기록은 94경기 13골.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이 까닭인지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1.1. 이름표기[편집]

José Mourinho라는 이름을 유럽 포르투갈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가 된다. 이름 부분의 경우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이중모음 오우로 읽히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o계 장모음과 이중모음은 ㅗ로 표기하므로 모리뉴라고 해야 맞지만 한국에서는 '무리뉴'가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이름인 José는 /ʒuˈzɛ/로 발음되며, 화자에 따라 /ʒoˈzɛ/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포르투갈 사람들은 /ʒuˈzɛ/로 발음하는 편이다.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모우린호[6] 등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이는 유럽 포르투갈어에 대한 무지와 축구계에서의 브라질 포르투갈어의 위상 그리고 브라질 지역별 포르투갈어의 다양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표준 유럽/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는 어말의 o는 ㅜ로 약화되는데 일부 브라질 지방 사투리로는 그냥 ㅗ로 읽는다.

브라질 포르투갈어 대화어체에서는 종종 이뉴를 잉유로 뭉개서 읽는다.(호나우지뉴->호나우징유).

그러므로 브라질 포르투갈어로는 모링유, 혹은 모링요라고 읽을 수도 있다. 원래 해축팬들에겐 축구선수 호나우딩요 때문에 아무래도 모링요라고 읽는게 더 익숙하다. 다만 브라질 포르투갈어는 어말 외 모음이 약화되지 않으니 이름도 조제라고 읽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르투갈 또한 엄연히 세계 축구계의 강호일 뿐더러(호날두가 어느 나라 선수인가?) 모리뉴 본인이 유럽 포르투갈인이므로 유럽 포르투갈어로 모리뉴라고 읽어야 맞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무리뉴라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오다가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모리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원칙에 따른 표기법을 사용한 기사에는 '모리뉴가 뭐임?', '제발 모리뉴란 이름좀 쓰지 마세요' 하는 댓글이나 달리곤 한다. 초창기에 정확한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면의 동료는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버질 판 데이크, 히샤를리종, 티아고 실바,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라울 곤살레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수없이 많다.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참고로 그의 고향 세투발에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제 마리우(Ze Mario)'라고 부른다고. 무리뉴는 이 호칭이 자신을 자신답게 느껴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축구 뉴비와 고인물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링요라는 이름에 익숙한지 여부다. 위에 길게 서술된 '무리뉴 vs 모리뉴'도 고인물들에게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무리뉴가 2004년 포르투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첼시를 맡아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그의 이름은 언론에 무리뉴와 무링요가 혼재되어 나타났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2004년과 2005년 2년간 검색되는 모든 기사의 59%가 무리뉴, 41%가 무링요로 표기되어 있으며, 모리뉴라고 표시된 기사는 단 3건(0.3%)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중계에서 대부분의 해설자나 캐스터들이 무링요 감독이라고 불렀고 대부분의 언중들도 입에 착 감기는 발음인 무링요라고 불렀다. 무리뉴는 언론에만 등장하는 이름일 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리뉴라고 쓰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차차 표기의 대세가 무리뉴로 옮겨가면서 무링요라는 언론 표기는 거의 사라져갔고 무링요라 발음하던 중계진들도 대부분 무리뉴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리뉴의 진정한 이름은 무링요라고 생각하며 무링요를 그리워하는 올드비들이 많다.

2006 독일 월드컵 이전까지는 외국 축구선수들을 뭐라고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나 2006WC를 계기로 외국 축구선수들의 발음을 정확히 하자는 언론사들의 반성을 계기로 무리뉴처럼 xx요로 표기하던 nho로 끝나는 브라질, 포르투갈인들의 이름도 xx뉴로 표기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호나우딩요, 무링요, 카르발요, 호빙요. 드록바, 콜러-> 콜레르, 키웰-> 큐얼등 많은 선수들의 이름에 정정이 있었다." href="https://namu.wiki/w/%EC%A3%BC%EC%A0%9C%20%EB%AC%B4%EB%A6%AC%EB%89%B4#fn-9" data-v-ce25a9b4="" style="box-sizing: inherit; color: rgb(2, 117, 216); text-decoration: none; font-size: 0.8em; vertical-align: super; white-space: nowrap;">

"예전에도 무링요보다는 무리뉴라고 표기한 기사가 많았네요."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무리뉴라고 표기된 초창기 기사들의 상당수는 José를 스페인어식으로 표기한 '호세 무리뉴'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 무링요라고 표기된 기사의 대부분은 '조세 무링요'라고 표기되어 있다.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2. 감독이 되기 전[편집]

본인이 축구선수로서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이른 나이인 24세에 은퇴했다. 부모님도 이것을 알았는지 선수시절 아들에게 " 선수로서 기술을 익히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안목을 기르라 " 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두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19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

지금은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코치 시절에는 무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원정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되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쓰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무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1] 수도 리스본에서 가까운 항구도시이다.[2] 현재 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