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50 vs r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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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에 인천으로 이사해 성장하고, 인천중학교(6년제, 제물포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1955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며, 민법을 전공하여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다만 논문은 유학 준비 관계로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57년부터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서 잠시 연구한 뒤, 1958년부터 서독 쾰른 대학교 박사 학위 과정을 밟아 민법과 국제사법의 대가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1962년에 〈한국 민법 및 국제사법에 있어서 이혼〉(독일어: Scheidung im koreanischen materialen und internationalen Privatrecht)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의 강사로 있었다. 1965년에 조교수가 되어 민법, 서양법제사, 로마법 등을 가르치다가 1967년부터는 부교수 및 학생과장으로 있었다. 1970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환교수로 도미하였다가, 1971년에 귀국하여 1972년에 서울대학교 법대 정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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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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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4일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문리대 학생들에 이어 10월 유신 반대 데모에 나섰다. 경찰의 진압으로 법대생들이 체포·연행되어 구금된 것에 대해 교수회의에서 스승으로서 모른 체해서는 안된다며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앙정보부에서 유럽 간첩단 사건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자 10월 16일에 중앙정보부에 근무하고 있던 최종선과 함께 두 형제가 웃으며 자진출두하였으나 그로부터 3일 뒤인 10월 19일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 김치열은 10월 25일에 최종길이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중앙정보부 건물 7층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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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4일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문리대 학생들에 이어 10월 유신 반대 데모에 나섰다. 경찰의 진압으로 법대생들이 체포·연행되어 구금된 것에 대해 교수회의에서 스승으로서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며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앙정보부에서 유럽 간첩단 사건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자 10월 16일에 중앙정보부에 근무하고 있던 최종선과 함께 두 형제가 웃으며 자진출두하였으나 그로부터 3일 뒤인 10월 19일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 김치열은 10월 25일에 최종길이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중앙정보부 건물 7층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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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4년 12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전기고문에 의한 타살을 사인으로 제시했으며, 1975년에는 쾰른 대학교의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 등이 외무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진상 규명 촉구가 있었으며, 1988년 10월 6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서울지방검찰청에 재수사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10월 18일, 검찰은 당일자로 공소시효가 만료하였으며 “타살됐다는 증거도, 자살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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