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62 vs r6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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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 65 | * 평균습도 : 60% |
66 | 66 | * 연평균 강우량 : 367mm |
67 | 67 | * 특기사항 : 건조하고 일교차 큼. |
68 | == 경제 == | |
69 | 튀르키예는 구매력 평가 대비 국내총생산 세계 17위, 명목 국내총생산 18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나라는 경제 개발 협력 기구(OECD)와 G20의 창립 회원국이다. 1923년에서 1983년까지 튀르키예 공화정이 들어서고 60년간 튀르키예는 대개 국가주의적 정책을 고수하여 정부 예산을 엄격하게 계획하고, 개인 부문 참여, 대외 무역, 외화 유통, 외국인 직접 투자에 정부가 제약을 가하였다. 그러나 1983년부터 투르구트 외잘 총리가 일련의 개혁을 주도하면서 경제 정책이 국가주의에서 탈피하여 개인 부문과 시장 경제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바뀌었다.[32] 자유화 개혁 덕분에 튀르키예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1994년과 1999년(그 해 지진 발생 후),[66] 2001년에 갑작스러운 침체와 금융 위기를 겪기도 하였으나, 1981년에서 2003년 사이에 튀르키예의 연간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평균 4%를 나타내었다. 추가적인 재정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공공 부문 적자가 커진데다 광범위한 정치 부패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은행 부문이 허약해졌으며,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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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2002년에서 2007년까지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평균 7.4%를 나타내었는데,[72] 덕분에 튀르키예는 같은 기간에 세계적으로도 빠른 경제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에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4.5%로 떨어졌으며,[73] 2009년 초에 튀르키예 경제는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을 받아 국제통화기금은 그 해의 침체율을 5.1%로 예측하였으며, 반면 튀르키예 정부는 3.6%로 추산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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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튀르키예 경제는 더 이상 농촌 지역의 전통적인 농경이 주류가 아니며, 거의 대부분 국토 서쪽 주에 집중된 주요 도시의 산업 단지들이 급속히 발전하고 서비스 부문도 확대되면서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2009년에 농업 부문은 국내 총생산의 8.8%에 머물렀으며, 산업 부문은 27.5%, 서비스 부문은 63.8%를 나타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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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유럽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8년 유럽 연합 평균치의 45%로 나타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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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 그 밖에 튀르키예 경제에서 중요한 경제 부문은 은행업, 건설, 가전 제품, 전기, 섬유, 석유 정제, 석유 화학 제품, 식품, 광업, 철강, 기계 산업 및 자동차를 들 수 있다. 튀르키예의 자동차 산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2008년에 1,147,110대 차량을 생산하여 유럽에서 자동차 생산국 6위(영국보다는 낮고 이탈리아보다는 높은 순위), 세계 기준으로는 15위 생산국이었다. 또 튀르키예는 조선업 선도국으로 2007년에 이 나라는 선박 수주량 기준으로 중국, 대한민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4위를 기록하였으며, 호화 유람선 수주량 기준으로도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에 이어 4위였다. | |
69 | 78 | == 역사 == |
70 | 79 |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11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족이 이주해오기 전부터 많은 나라와 문화교류가 이뤄졌으며, 이로 인한 흥망성쇠도 교차했다. 특히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문명 융화의 용광로 역할을 5000년 이상 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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