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7 vs 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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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opad> [[파일:프란치스코 교황 사진.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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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00>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br]Jorge Mario Bergogl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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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width=20px]] [[아르헨티나]][br][[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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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생''' ||1936년 12월 17일 ([age(1936-12-1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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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생''' ||1936년 1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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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부에노스 아이레스||
8
||<|2> '''사망''' ||2025년 4월 21일 (향년 8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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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녀 마르타의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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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266대 교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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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3일 ~ 현직 ^^([age(2013-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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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3일 ~ 20254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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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저''' ||[[사도 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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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부 :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br]모 :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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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 ||17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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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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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보다 많은 사람과 만남의 자리를 갖기 위해 자신의 거주지로 교황의 공식 관저인 [[사도 궁전]] 대신에 성녀 마르타 호텔을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프란치스코는 교황 비오 10세 이후 처음으로 교황의 관저 밖에서 기거하는 교황이 되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또한 전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주일마다 삼종 기도와 훈화를 위해 사도 궁전의 창 밖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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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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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이날 아침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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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페럴 바티칸 추기경은 "이날 오전 7시 25분, 로마의 프란치스코 주교님께서 성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며 "그의 전 생애는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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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우리에게 복음의 가치에 따라 충실함, 용기, 그리고 보편적인 사랑으로 살도록 가르쳤다"며 "특히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라고 가르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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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주 예수의 진정한 제자인 그의 모범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혼을 하느님의 무한하고 자비로운 사랑에 맡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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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심각한 폐렴 때문에 입원했다가 회복해 교황청으로 돌아온 뒤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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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날 부활절 미사에 깜짝 등장해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만나고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435554?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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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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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죄 묵인 주교 옹호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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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페르난도 카라디마 신부는 수십명의 아동들을 성추행 하였다. 아동 성추행 사건은 2002년부터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졌고 2010년 이후부터 언론에 보도되었다. 결국 카라디마 신부는 2011년 면직 당했다. 사건은 이렇게 묻히는듯 싶었다. 2015년 바티칸 교황청이 아동 성추행이 벌어진 오소로노 교구에 카라디마 신부의 제자인 바로스 주교로 임명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성추행 피해자들은 바로스 주교가 성추행을 알고도 묵인했다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카라디마 신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바로스 주교가 성추행 장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도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카라디마 사건으로 칠레에서 가톨릭의 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교구의 분열이 이어졌다. 수백명에 달하는 신자와 시민들은 바로스 주교의 취임식에서 “바로스, 오소르노를 떠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월 18일(현지시각) 칠레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로스 주교를 둘러싼 성추문 은폐 의혹에 대해 "증거를 가져오면 이야기할 것"이라며 "단 하나의 증거도 없고 모든 것이 중상모략"이라며 바로스 주교를 두둔하였다. 세계 각국서 교황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결국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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