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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후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대륙의 주도권 및 식민지 쟁탈을 놓고 서로 적대국인 경우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앙탕트 코르디알(entente cordiale) 정책을 펴면서, 러일 전쟁 이후 영국 및 러시아와 동맹(삼국 협상)을 맺게 된다.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관계에서는 보조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근대 독일의 성립이후 보불전쟁, 1, 2차 세계 대전 등에서 독일과 대립하였으나, 전후에는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 및 협력하는 관계에 있다. 냉전시기에 샤를 드골은 국제패권구도가 미국-소련의 양강구도로 편성되면서 프랑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으며, 이에 따라 서방국가이지만 소련과의 국교를 수립, 중화인민공화국의 UN대표권 승인(1964년 1월에 국교 수립)[13].등 중립적인 외교를 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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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식민지국가들과도 프랑코포니를 통하여 일정부분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으나, 알제리 독립전쟁을 통해 많은 유혈사상자를 낸 알제리와의 관계는 역사문제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에서 현대 프랑스 역사의 어두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지부티는 프랑스로부터 1977년에 독립하였는데, 프랑스와 지부티 간의 군사적, 경제적 조약들을 통해, 지부티에게 안보와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중동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어느 정도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중국, 한국 및 일본과의 외교를 중시한다. 1799년,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침략하였다. 그의 군사들은 룩소르와 카르낙에서 고대 이집트의 사원을 발견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로제타석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문자를 해독하게 된 중요한 단서였다. 미국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나,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프랑스가 비판하면서 외교관계는 잠시 소원해졌다가 부시가 물러난 후에 오바마 대통령 임기 기간동안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프랑스와 시종일관 우방국으로서 나폴레옹이 집권할 때 스페인의 식민지로 프랑스의 영향권이었다.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것에 반발을 일으켜 유럽 내에 전쟁이 일어난 틈을 타서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그 이후에도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시종일관 우방국으로서 첫 월드컵에도 프랑스가 참가한 것부터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프랑스는 아주 노골적으로 아르헨티나의 편을 들기까지 했으며 이에 프랑스는 아르헨티나에 엑조세를 공짜로 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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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대한민국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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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포함된 천주교신자들을 조선왕실에서 탄압(병인박해)하면서 외교문제가 되었고 이를 빌미로 프랑스군대와 한국군이 격돌하는 사건 - 병인양요 - 이 일어났다. 이때 강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등 문화재의 반환문제는 현재도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2010년 G20 정상회의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반환문제를 합의를 했고, 2011년 4월과 5월 4차에 걸쳐서 5년마다 갱신되는 대여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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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국교를 수립했으나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양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는 인정하는 분위기여서 프랑스 조계 지역의 경찰들은 김구 주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이유에서일 뿐,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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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때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에 파병했다. 파리는 한국의 군정기에는 정치적 망명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였다. 현재 한국과 프랑스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축구 선수 권창훈 등이 프랑스 축구 클럽에서 뛰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교과목에 프랑스어가 개설되어 있고, 프랑스에서는 한국어를 교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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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기구 2006년 11월 28일 NATO 정상회담이 북유럽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열렸다. 29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를 나토에 편입하자고 제안하였으나, 프랑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파비앙 코르비노와 로빈 데이아나는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많은 프랑스인들이 서래마을에 살고 있다. 2015년 9월 18일에는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에펠탑에서 레이저 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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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다는 군대 그 자체를 이유로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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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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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나라들의 모임인 G7에도 가입하여 있을 정도로 경제가 발달하였다. 2018년에는 PPP로 환산하였을 때 세계에서 10번째로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유럽 연합 내부에서는 독일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1999년에는 다른 11개국과 함께 유로화를 창설하였으며, 결국 2002년에는 프랑스 프랑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완전히 유로화 체제로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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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기본적으로 혼합 경제 체제로, 개인 자본이 주를 이루며 국가의 자본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상대적으로 인프라 쪽에 많은 지분을 기고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국가 핵심 산업인 핵산업, 전기 산업, 철도 사업, 항공기 사업, 정보 통신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1990년대 이래부터는 이 쪽에 대한 통제를 점차 늦추고 있으며, 프랑스 텔레콤이나 에어 프랑스와 같은 대기업들과 보험 산업, 군수 사업들의 국유 지분들을 점차 개인들에 매각하면서 민영화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 프랑스는 에어버스와 같이 유럽의 항공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들 중 하나이며, 기아나 우주센터를 갖추고 있는 등 독자적인 항공우주 기술도 매우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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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세계무역기구는 프랑스를 세계에서 6번째로 거대한 수출국으로 조사하였으며, 제조품의 4대 수입국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2016년에는 월드 팩트북에서 프랑스를 세계에서 7번째로 규모가 큰 수출국으로 명시하기도 하였다. 2008년 프랑스는 OECD 국가들 가운데에서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양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받은 나라이기도 하였다. 이는 룩셈부르크와 미국 다음으로 높은 규모로, 영국과 일본, 독일 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같은 해에 프랑스 회사는 2,200억 달러를 국외에 투자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프랑스는 OECD에서 2번째로 국외에 투자를 많이 한 나라로 떠올랐다. 프랑스는 금융업과 은행업, 보험업도 매우 발달하였다. 파리 증권 거래소는 1724년에 루이 15세 의하여 처음 문을 열었으며, 2000년에는 암스테르담, 브뤼셀 등의 주식거래소들과 합동하여 유로넥스트를 설립하였다. 2007년에는 세계 최대 증권 거래소들 중 하나인 뉴욕 증권 거래소와 힘을 합쳐 NYSE 유로넥스트를 설립하였다. NYSE 유로넥스트의 프랑스 지부는 유럽에서 런던 증권 거래소의 뒤를 이어 2번째로 거대한 규모의 증권 거래소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유로존의 회원이며, 유럽 단일 시장의 일원으로 막대한 시장을 공략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긴밀한 경제 협약들을 맺었으며, 2002년에는 유로화를 가장 주도적으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의 기업들은 보험업과 은행업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유수의 기업 AXA와 은행 BNP 파리바, 크레디트 아그리콜 등이 가장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특히 BNP 파리바는 세계 1위의 은행이고, 크래디트 아그리콜이 6위로 그 뒤를 이었다. 2009년에는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이 세계에서 8번째로 거대한 은행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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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서 유로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 10년간 상승세가 가장 높았다. 대졸자 초봉은 2010년 기준 약 29,000유로(한화 약 3,872만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