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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96 | 2009년 세계무역기구는 프랑스를 세계에서 6번째로 거대한 수출국으로 조사하였으며, 제조품의 4대 수입국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2016년에는 월드 팩트북에서 프랑스를 세계에서 7번째로 규모가 큰 수출국으로 명시하기도 하였다. 2008년 프랑스는 OECD 국가들 가운데에서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양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받은 나라이기도 하였다. 이는 룩셈부르크와 미국 다음으로 높은 규모로, 영국과 일본, 독일 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같은 해에 프랑스 회사는 2,200억 달러를 국외에 투자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프랑스는 OECD에서 2번째로 국외에 투자를 많이 한 나라로 떠올랐다. 프랑스는 금융업과 은행업, 보험업도 매우 발달하였다. 파리 증권 거래소는 1724년에 루이 15세 의하여 처음 문을 열었으며, 2000년에는 암스테르담, 브뤼셀 등의 주식거래소들과 합동하여 유로넥스트를 설립하였다. 2007년에는 세계 최대 증권 거래소들 중 하나인 뉴욕 증권 거래소와 힘을 합쳐 NYSE 유로넥스트를 설립하였다. NYSE 유로넥스트의 프랑스 지부는 유럽에서 런던 증권 거래소의 뒤를 이어 2번째로 거대한 규모의 증권 거래소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유로존의 회원이며, 유럽 단일 시장의 일원으로 막대한 시장을 공략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긴밀한 경제 협약들을 맺었으며, 2002년에는 유로화를 가장 주도적으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의 기업들은 보험업과 은행업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유수의 기업 AXA와 은행 BNP 파리바, 크레디트 아그리콜 등이 가장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특히 BNP 파리바는 세계 1위의 은행이고, 크래디트 아그리콜이 6위로 그 뒤를 이었다. 2009년에는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이 세계에서 8번째로 거대한 은행으로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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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98 | 임금은 서 유로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 10년간 상승세가 가장 높았다. 대졸자 초봉은 2010년 기준 약 29,000유로(한화 약 3,872만원)에 달했다. |
| 99 | == 사회 == | |
| 100 | === 민족 === | |
| 101 | 현재 프랑스인 대부분은 켈트족과 골족들로부터 유래하였으며, 그 외에도 로마 제국 시대에 유입된 라틴 계열과 프랑크 왕조 시대에 유입된 게르만 계열이 조금씩 섞여 있다. 중세 시기 동안에는 수많은 국가들과 먹고 먹히는 과정을 반복하고, 전쟁을 통하여 인구 유입과 유출이 굉장히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점차 민족 구성이 타 유럽 국가들과 섞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서쪽으로는 브르타뉴인들이, 남서쪽으로는 아키텐인들이, 북서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북동쪽으로는 알레만인들이, 남동쪽으로는 리구리아인들이 조금씩 유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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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1850년대부터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대규모의 이민이 일어났는데, 이후 평등을 추구하는 프랑스 헌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을 민족이나 종족에 따라 인구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법적인 차원에서 금지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현재 프랑스의 민족 구성은 대부분 개인 기업에서 행하는 것이다. 2004년 기준으로 프랑스 도시권에서는 약 85%가 백인종이었으며, 10%는 북아프리카인, 3.3%가 흑인, 그리고 1.7%가 황인종이었다고 전한다. 2008년 조사에 의하면 가장 많은 이민자 집단은 500만 명에 달하는 이탈리아인들이며, 그 뒤를 400만 명 정도의 북아프리카인, 250만 명의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인들, 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 20만 명의 터키인들이 뒤따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그리스 등 타 유럽 국가 출신 이민자들도 있다고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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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고대에 갈리아라고 불리던 이 지역에 살던 켈트족 계열의 골족과 그 후에 로마의 지배를 거치면서 라틴족, 주변의 민족인 게르만족(프랑크족, 부르군트족, 프리슬란트족, 앵글족, 색슨족)·노르만족(데인족, 노르게족)·켈트족(브리튼족, 픽트족, 게일족)과 융화하여 오늘날의 프랑스인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실증적·합리적이다. 피레네 산맥의 바스크 지방에는 체격·용모 등이 프랑스인과는 다른 바스크인이 살고 있다.[17] 프랑스 국경 근처에는 독일인, 룩셈부르크인, 왈로니족, 플란데런족 등이 거주한다. 현대에는 EU권내의 각 국가로부터 이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의 북아프리카와 세네갈, 기니 등의 서아프리카 및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옛 식민지 국가의 사람도 다수 거주하며, 특히 폴란드, 우크라이나, 체코, 벨라루스, 러시아, 슬로바키아 같은 동유럽에서 온 슬라브계 민족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 |
| 106 | === 언어 === | |
| 107 | 고대 갈리아 프랑스인이 사용하던 골어는 라틴어로 대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라틴어에서 발전한 프랑스어가 국가언어가 되었다. 영국에 이은 식민제국건설로 인하여 프랑스는 이에 따라 국제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가 형성되었다. 프랑스인의 프랑스어에 관한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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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켈트어 계통의 브레통어, 로망스어 계열의 오크어, 게르만어 계열의 알자스어 등의 각 지역어가 있으나, 프랑스의 강력한 1언어정책으로 인하여 소수어에 대한 공적 지위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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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프랑스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전 세계 인구는 약 2억 9,000만명으로 추산된다(아프리카 24개국, 캐나다 퀘벡 지역, 유럽 일부지역 포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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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 한국에는 개화기 시절 한국이 서구 국가들과도 교류를 시작하면서 소개되기 시작했다. 1880년 펠릭스 클레르 리델 주교에 의해 최초의 한불사전인 한법자전에 편찬되었고, 1901년 샤를 알레베크에 의해 불한사전인 법한자전이 편찬되었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서울 정동에 설립된 관립 외국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 |
| 114 | === 교육 === | |
| 115 | 2.5~3세 때 에콜 마테르넬에 다니는 것으로 프랑스인의 교육이 시작된다. 의무 교육은 에콜 프리메르(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 콜레주(중학교)까지 이어지고 대학 진학파는 리세(고등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들어간다. 프랑스의 노동법은 만 16세 미만의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리세에서 1학년은 스공드, 2학년은 프러미에, 3학년은 테르미날이라고 부르고 모든 학교에는 유급이 있다. 대입 시험(바깔로레아)의 경우,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랑스어, 영어 시험을 보며,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 되어야 3학년으로 진학이 가능하며, 3학년 때 각각 전공에 따른 시험을 본다. 대학은 모두 5월만 되면 학년말 시험을 치른다. 여기서 두 번 떨어지면 해당자의 전공은 그 어느 대학에서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 |
| 116 | === 종교 === | |
| 117 |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매우 뿌리깊은 나라이며,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위그노를 필두로 한 개신교 종파도 생겨났다. 현재는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무슬림들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유대교 신앙을 지킨다. 다만 프랑스 정부의 공식 종교 정책은 라이시테 원칙으로 불리는 종교-정치 분리 원칙이다. | |
| 118 | == 문화 == | |
| 119 | 프랑스는 지난 수백년 동안 서양 문화 발전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동시에, 문화적 초강대국으로 군림해 왔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 이름을 떨쳤기에, 오늘날 프랑스는 풍부한 문화와 유산을 지닌 국가로 여전히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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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 프랑스는 전국을 통틀어 무수히 자리잡은 문화유산과 유적지 덕에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프랑스의 박물관수는 1,200여개를 넘으며 매년 50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것으로 집계된다. 프랑스 정부는 중요 문화유산을 직접 관리하는데, 이를테면 국가 사적지 85곳을 관할할 의무를 지닌 국가유적센터를 설립해두고 있다. 여기에 등록 문화재로 총 43,180건을 지정해두고 있으며 그 유형은 주거용 건축물 (고성), 종교용 건축물 (성당, 바실리카, 교회), 조각상과 기념비, 정원 등이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프랑스의 문화유산은 총 45곳으로 집계된다. | |
| 122 | === 미술 === | |
| 123 | 프랑스 미술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미술과 플랑드르 미술이 전래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중세 프랑스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장 푸케는 이탈리아로 처음 여행을 가서 초기 르네상스를 접한 최초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기 퐁텐블로파 회화는 프리마티초, 로소 피오렌티노 등 프랑스로 건너온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바로크 시대 프랑스의 유명 화가였던 니콜라 푸생과 클로드 로랭도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17세기부터는 프랑스 회화가 주류로 부상하면서 고전주의를 통해 차별화되기 시작하였다. 1648년 장바프티스트 콜베르는 프랑스 예술을 보존하기 위해 루이 15세의 명으로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를 창립하였으며, 1666년에는 이탈리아 예술계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위해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도 설립하였는데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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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 18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은 옛 바로크 양식을 좀 더 수정 계승한 로코코 양식을 발달시켰다. 이 시기 궁정에서 활동하던 앙투안 와토, 프랑수아 부셰, 장오노레 프라고나르가 프랑스의 대표 화가로 거듭났다.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예술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나폴레옹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선호하여 자크루이 다비드 같은 예술가를 후원하는가 하면,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구가하던 미술 아카데미는 아카데미즘이라는 주류 양식을 정의하게 되었다. 이 시기 프랑스는 예술 창작의 중심지로 거듭났으며,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미술을 지배하는 두가지 사조로 테오도르 제리코와 외젠 들라크루아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그 다음으로 카미유 코로, 귀스타브 쿠르베, 장프랑수아 밀레로 대표되는 사실주의가 부상하였고, 궁극적으로 이는 자연주의로 진화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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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 19세기 후반부터는 프랑스 회화의 영향력이 한층 더 두터워지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인상주의와 상징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의 회화가 발달한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는 카미유 피사로,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꼽힌다. 이들의 뒤를 이은 폴 세잔, 폴 고갱, 툴루즈로트렉, 조르주 쇠라 등의 2세대 인상파 화가들은 아방가르드 미술에도 한몫하였으며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과 같은 야수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로 넘어가면서 파리에 거주하던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개척하였다. 또한 빈센트 반 고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마르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같은 당대 화가들도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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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 프랑스의 각 박물관들도 이 시기부터 회화와 조각품의 수집에 나서게 되었는데, 프랑스 정부가 소유한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모나리자 등의 18세기 이전 옛 명작들을 구입 및 인수받아 오늘날의 초대형 컬렉션을 완성하게 되었다. 또 국가 소유 미술품 가운데 인상파와 야수파 회화를 중심으로 19세기 후반 미술을 정리하기 위한 대책으로 오르세 미술관이 1986년에 설립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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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은 프랑스 국립 근대미술관이 관할하고 있으며 1976년 조르주 퐁피두 센터로 이전하였다. 이들 세 국립미술관은 한 해 17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명실상부 프랑스의 대표 미술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파리에 함께 위치한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 그랑팔레와, 시립미술관인 파리 현대미술관이 있다. 파리 외에도 유럽과 프랑스 회화를 아우르는 미술관이 각 도시마다 설립되어 있으며 리옹 미술관, 릴 미술궁전, 루앙 미술관, 디종 미술관, 렌 미술관, 그르노블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 |
| 132 | === 건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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