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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 94 | 성종이 다시 군신회의를 소집하자 재상들은 모두 추위와 어려움을 이유로 파병이 불가하다고 하였으나 한명회는 그래도 파병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의논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안녕만 도모하기 때문이고, 노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국가의 대체입니다. 군왕의 적개에도 의당 급히 서둘러야지 늦출 수는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라며 굽히지 않았다. 결국 논의가 계속되다가 그의 뜻이 관철되어 성종은 의정부좌의정 윤필상에게 가서 정벌하라고 명하여 다시 군사를 파병,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성종은 '경의 강한 계책 덕에 거병하여 성공하니, 내가 매우 가상히 여긴다,'며 그를 칭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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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96 | 또한 그는 두만강과 압록강에 장성을 쌓을 것을 건의하였다. '조종조에 압록강 연안에 위아래로 장성을 쌓으려고 하다가 일이 커서 이루지 못하였는데, 신의 생각에는 다시 그 일을 거행해야 한다고 여깁니다.'하니, 성종은 의정부좌의정 홍응을 파견하여 성곽의 수축, 개보수를 감독하게 했다. |
| 97 | == 국가 원로 활동 == | |
| 98 | 1480년(성종 10년) 가을에 부원군직을 사임하려 하였으나 성종이 승낙치 아니하고 성종이 어찰을 보내 " 국가의 공적이 여러 세대에 이르고 재주와 식견은 한 세대를 앞서 갈 만큼 밝으며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나라 근심으로 염려하여 논의하면 반드시 적중하였다. 원로가 조정에 있음은 나라의 영광이며,믿는 신하가 힘을 다함은 임금에게 힘과 의지가 되는도다. 아무리 오래도록 병에 시달리더라도 많은 약을 내리니 힘써 치료하여 내 뜻에 부응하라. 그러면 경도 노년에 편안함이 있고 나도 옛 것을 버리고 허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사퇴를 만류하였다. 1483년 경상도에 저수지를 만들어 가뭄을 대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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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그는 은퇴를 결심하고 서울 중심부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었다. 한명회는 정자의 이름을 '물새들이 희롱하는 정자'라는 뜻의 압구정이라고 지었다. 압구정동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명회는 자기가 권력이 아닌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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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 그는 스스로를 젊어서는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몸을 바치고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면 강가에 누워 세상을 관조한다고 자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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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조정의 문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압구정에 찾아와서 압구정을 예찬한 시가 수백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이를 비웃었다. 포의 이윤종은 이를 비웃는 시를 짓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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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그는 자연을 벗 삼겠다 하였으나 시중의 학자들은 권력과 벗 삼았다며 조소하였다. 한강 남쪽에 지은 그의 정자와 별장은 화려하기로도 이름 높았다. | |
| 97 | 107 | == 본 문서 정보 == |
| 98 | 108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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