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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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어원4.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경제·사회·정치 공동체 형성을 주장하는 사상 또는 이러한 사회 형성을 목표로 삼는 형식적·실질적 정치 운동 사상이다.

2. 상세[편집]

플라톤의 국가에도 공산주의 사상을 기록했으며, 공산주의적 사고는 전근대 사회에도 존재했다. 이후 유럽 서방교회 사회에서 등장한 유토피아주의자의 만민 평등 사상 및 지상천국 운동을 의미했으나, 오늘날 공산주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 전반을 뜻하며, 그 핵심은 변증법, 역사주의와 유물론을 기반으로 한다.

이 사상이 현실 정치에서 본격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시점은 19세기 유럽 산업화 시기와 겹친다. 이 당시 유럽은 급속한 산업 발전에 따른 갖가지 사회병리현상을 겪었으며,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주장하였다.

이후 수많은 사회주의 이론과 병립하여 공산주의는 거대한 종합 사상으로 성장하였다. 1871년 파리에서 코뮌 봉기의 형태로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가 성립했으나, 존속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1917년에는 러시아의 공산주의자이 10월 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 발발한 내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하여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성립되었다. 이후 공산주의 운동은 주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대표하는 정치운동으로 결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경로를 통하여 동유럽 및 아시아의 공산주의권을 성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이후부터 공산주의 운동은 사실상 쇠퇴 일로를 맞았다.

3. 어원[편집]

유럽언어들의 공산주의 단어는 '꼬뮈니슴'(Communisme)이라는 프랑스어에서 비롯하였으며, '꼬뮈니슴'(Communisme)은 라틴어로 '공동체', '공유', 공공 등을 뜻하는 '콤무니스'(Commúnis)에서 나왔다. 실제 문헌에 등장하는 첫 사례는 18세기말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뷔토르 뒤파이가 프랑스 소설가인 레티프 드 라 브르통느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뒤파이는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묘사하였다.

'꼬뮈니슴'(Communisme)에 기초한 용어 사용은 영국과 독일 등을 시작으로 하여 전 유럽에 퍼졌다. 19세기 초반까지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인간이 갖는 형이상학적 도덕성 발현 및 로고스(의 실천적 구현을 통하여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일종의 인본주의 정치 운동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본래 국가의 소멸을 주장하는 사상과는 무관하였다.

1840년대부터 공산주의라는 용어 사용이 점차 사라졌으며, 사회운동가들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하였다. 이 당시에도 공산주의는 위와 같은 정의를 포함하여 경제적인 영역을 넘어서 모든 사회 조직을 평등하게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운동으로 이해하였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는 경제 영역에서만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으로 여겼다. 공산주의가 다시 정치 용어로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에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회주의를 낡은 용어라고 규정한 후 볼셰비키당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한 이후부터다. 이 시기부터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와 확실히 다른 개념이자, 동시에 유물론과 계급 투쟁에 기초한 진일보한 혁명 사상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레닌이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와 확실히 다른 개념이다.'라고 선언한 이후부터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서 사회주의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용어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의미가 되었다.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거나 반대하는 집단 사이에서 공산주의는 주로 계급 투쟁, 무신론, 유물론에 기초한 반신론적 폭력 혁명 사상으로 여겼다. 유럽 내에서 이러한 규정은 당시 유럽 사회가 기독교 영향을 강하게 받는 특수성에서 기인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사회주의는 대륙에서 존중받았으나, 공산주의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샤를 푸리에나 로버트 오웬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종교 진영 내에서도 존경받는 운동가로 인식했으나, 공산주의자에 대한 종교인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4. 본 문서 정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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