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파일:교황 문장.png
교황
로마의 주교

Papa
Summus Pontifex Et Episcopus Romanus
Pope
파일:프란치스코 교황 사진.jpg
현직
프란치스코 (Franciscus)
즉위
2013년 3월 13일 (11주년)
즉위미사
2013년 3월 19일
1. 개요2. 상세3. 교황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교리4. 선출과 장례
4.1. 선출4.2. 이름4.3. 교황이 되면?4.4. 장례절차
5. 교황의 역할6. 교황권에 대한 다른 기독교 교파의 입장
6.1. 동방 정교회의 입장6.2. 개신교
7.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교황은 로마의 주교이자 가톨릭 전체의 영적 지도자이며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다. 이는 천주교 전승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의 첫 수장으로 임명되어 천국의 열쇠를 부여받았다는 성 베드로의 정통 후계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 세계 14억 신자들이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세계적으로 정치적, 외교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2. 상세[편집]

로마 가톨릭교회 창시 이래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총 266대 교황이 재위하였으며, 현재 교황은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이다.

교황의 직위를 가리켜 교황직이라고 부르며,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 영역은 ‘성좌' 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순교한 로마에 세워진) ‘사도좌’로 불린다.

교황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책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초기 교황들은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고 다양한 교리적 논쟁을 해결하는데 주력하였다. 중세에 들면서 종교 문제 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세속 문제에도 개입하여, 종종 천주교 군주들 간의 각종 분쟁에 개입하여 중재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천주교 신앙의 전파 및 정통 천주교 교리의 수호는 물론 교회 일치 운동과 종교 간 대화, 자선 활동, 인권 수호 등에 매진하고 있다.

교황에게는 본래 세속적 권력이 없었지만, 중세기에는 세속의 통치자들이 가진 권력과 같이 광범위한 권력을 가진 때도 있었다. 최근 세기에 들면서 교황은 점차 세속 권력이 약해지면서, 오늘날 교황의 권위는 다시 본연의 임무인 종교적 문제들에 국한되어 있다. 수세기가 넘도록 교황의 종교적 권한에 대한 주장은 19세기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엄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교황 무류성 선언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 호칭 =÷
한국에서 ‘교황’이라고 번역되는 라틴어 ‘파파’는 본래 그리스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 ‘파파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대 교회 시절부터 이 칭호는 모든 주교, 특히 동방 지역 대주교와 주교인 성직자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는데, 나중에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로마의 주교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교회 대분열 시기인 11세기에 들어서면서 서방교회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대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 칭호를 가장 먼저 사용한 이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헤라클라스(232-248)인 것으로 추정된다. 파파를 한국어로 옮긴 호칭인 교황은 본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감화시킨다’는 의미의 ‘교화황’이었는데, 이는 1614년 이수광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쓴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구라파(유럽)의 풍속은 임금을 교화황이라고 하는데 결혼을 하지 않으므로 후손이 없고 어진 이를 선택하여 임금으로 세운다.”는 글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다가 1915년경부터 교화황과 교황이 혼용되다가 교화황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1920년대부터 교황은 일반 용어로 정착되었으며, ‘교종’은 한때 주로 기도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의 《로마 미사 경본》 라틴어-한글 대조나 《천주성교공과》에서도 교황과 교종은 그대로 혼용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에는 기도문에서 마저 교종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1992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용어위원회 논의를 거쳐, 2000년 10월 《천주교 용어집》을 출간하면서 교황으로 통일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파파라는 칭호는 3세기부터 모든 기독교의 모든 주교에게 공통적으로 사용한 호칭이었으나, 로마교회 지역에서는 6세기부터 특별히 로마의 주교에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교회 대분열 시기인 11세기 말엽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서방 교회의 관례를 정립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오직 로마의 주교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국한하였다. 6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소재한 동로마 제국 상법부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교황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교리[편집]

성경에는 반석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반석은 험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지를 말한다. 문자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했지만[44], 대개는 힘, 확고부동, 안전하고 견고한 장소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45] 그래서 반석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신을 상징하는 용어로도 많이 사용되었다.[46] 신약 시대에는 구약 시대에 물이 없어 목말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느님이 반석에서 물을 솟게 한 사건을 예로 들며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는 예수를 반석에 비유하였다. 이런 근거에서 예수는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반석)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예수 자신이 바위였기 때문에 바위로서의 모퉁잇돌의 특성을 시몬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하늘나라의 열쇠’라는 구절은 바티칸 시국의 국장과 같이 종종 교황의 상징물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 열쇠의 근거가 된다. 이 하늘나라의 열쇠는 지상의 권한을 상징하는 수위권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열쇠는 열고 닫는 권한, 즉 모든 권한을 상징한다. 이렇게 교회의 전권을 받은 베드로에게 예수는 “내 양들을 잘 돌보라.”며 구체적으로 그것을 실천에 옮기라고 거듭 요청하였다. 그리고 베드로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였다.

이 밖에도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 예컨대 성 아우구스티노는 베드로를 ‘제1의 사도’라고 했으며, 에우세비오 같은 학자들도 베드로를 ‘사도의 수령’ 또는 ‘사도직의 원수’라고 표현했다.

베드로에게 위임된 직책은 그의 후계자들에게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리하여 베드로란 이름은 고유명사인 동시에 보통명사가 되어 버렸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9년 6월 10일 제네바의 세계 교회 협의회 본부를 방문했을 때 자신을 “나는 바오로라고 불리며 이름은 베드로입니다.”라고 소개하였다.

4. 선출과 장례[편집]

4.1. 선출[편집]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선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두 번의 비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성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성당 밖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연기의 색깔로 새 교황의 선출 여부를 알게 된다. 검은 연기는 새 교황이 아직 뽑히지 않았다는 신호이고, 하얀 연기는 새 교황이 뽑혔다는 신호다.

새 교황을 언제까지 뽑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바티칸 역사상 가장 오래 걸렸던 교황 선거는 교황 클레멘스 4세의 후임을 뽑는 콘클라베로 1268년에 열려 2년 9개월에서 이틀이 더 걸린 1271년에야 끝났다.

새 교황이 확정되면 그는 “수용한다”는 답변으로 공식 확인하고, 수석 추기경이 회랑 가운데로 나와 군중에게 “하베무스 파팜”이라고 말하며 새 교황의 이름을 발표한다. 그러면 새 교황이 제단사들이 미리 준비한 임시 제의를 입고 군중 앞에 나타나 ‘로마 시와 전 세계에게’를 의미하는 라틴어 ‘우르비 에트 오르비’라는 말로 첫 축복을 준다.

만일 새로 선출된 교황이 주교품을 받지 않은 사람일 경우, 추기경단의 수석 추기경은 선출된 교황 당선자에게 주교품을 서품하며 당선자는 주교품을 받은 때부터 로마 주교가 되는 동시에 교황이 된다.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국적을 가져도 상관없다. 역대 교황 가운데 210명은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이 중 99명은 로마 출신이었다. 나머지 56명은 프랑스 출신 16명, 그리스 출신 12명, 독일 출신 8명, 시리아 출신 6명, 팔레스타인과 스페인, 아프리카 출신 각 3명 등이다. 잉글랜드, 포르투갈, 네덜란드, 폴란드, 아르헨티나가 각 1명이다.

4.2. 이름[편집]

교황 선거에서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당선자는 교황직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즉시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평소 존경하던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서 자신의 교황명(敎皇名)으로 삼아 공표해야 한다. 새 교황의 이름은 수석 부제 추기경이 곧바로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선출 사실과 함께 공포한다.

역대 교황명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된 것은 ‘요한’으로 지금까지 통틀어 23명의 교황이 이 이름을 선택하였다. 그만큼 가장 인기가 있으나 ‘요한’이라는 이름의 교황들이 가장 많이 시해당하거나 유폐되는 등 교회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사건들이 이 이름과 관련이 깊어서 교황 요한 23세 이전에는 거의 7세기에 가깝도록 ‘요한’이라는 이름을 택한 교황이 없었다.

‘요한’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이름은 ‘그레고리오’와 ‘베네딕토’로 둘 다 총 16명이 있으며, ‘클레멘스’는 14명, ‘레오’ 및 ‘인노첸시오’는 13명, ‘비오’는 12명 등이다. 다만 ‘베드로’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만을 위해 쓰도록 정해져 있어 베드로를 교황명으로 쓴 사례는 없다. 이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의 명명(마태 16,18)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고 한다.

교황들 가운데 처음으로 개명한 이는 교황 요한 2세로, 본래의 이름인 메르쿠리우스가 이교도의 신을 딴 이 이름이기 때문에 교황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요한 2세'로 이름을 바꿨다. 반면 원 세례명을 그대로 유지한 교황은 16세기의 교황 하드리아노 6세가 유일하다. 그리고 두 개의 교황 이름을 합쳐서 개명한 사람은 요한 바오로 1세가 처음이며 다음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도 이 이름을 사용했다.

4.3. 교황이 되면?[편집]

  • 자신의 이름, 이전의 국적 및 시민권을 버려야 한다.
  •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전부 규제를 받는다.
  • 일주일에 한 번씩 고해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 교황의 고해성사를 담당하는 사제는 예수회 사제이다.
  • 고해 사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황이 고백하는 죄를 듣고 사해 준다.
  • 교의상 로마 가톨릭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 교회 안 모든 법령은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 교황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선례를 따를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 전통을 폐지하고 교회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으며, 교서를 발표할 수 있고, 협의를 거치지 않고도 교회 안 규정을 바꿀 수 있다.
  • 어떤 문제들에 관해서는 추기경단의 자문과 충고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모든 일에 있어 교황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 인간이 하는 재판은 받지 않기에 법정에 소환되지 않을 권한을 갖는다.

4.4. 장례절차[편집]

교황의 장례식은 엄격한 형식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먼저 교황의 시종관이 교황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난 다음 교황을 상징하는 어부의 반지(교황의 공식인장)를 교황의 손가락에서 빼내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반지를 두개의 선을 그어 훼손시킨다. 이는 교황의 통치기간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하며 기타 문서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는 교황의 시신을 시스티나 경당으로 옮기는데 추기경들과 바티칸의 주요 인사들이 긴 행렬을 이루어 시신을 호위한다. 시신이 경당에 모셔지면 하얀색 실크와 특별하게 짠 팔리움으로 된 수의를 입힌다. 시신의 손에는 장갑이 끼워지고 교황의 주교관이 가슴 위에 놓인다. 교황의 시신은 시스티나 경당의 거대한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 아래서 꼬박 하룻밤을 보낸 다음,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 안 클레멘타인 경당으로 옮겨진다.

교황의 시신은 그곳에서 3일간 수십만 조문객들의 조문을 받는다. 이 전통은 과거 로마 제국의 장례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례 미사는 대성전 돔 아래에 있는 중앙 제대에서 거행된다. 장례 미사가 끝나면 시신은 윤이 나게 잘 닦인 삼중 나무관 속에 안치된다. 그 후 교황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문이 라틴어로 읽히며, 그 송덕문은 청동으로 된 원통에 담겨 교황의 발치에 놓인다.

이때 금화와 은화, 동화 등 동전들을 가득 담은 붉은 벨벳 자루를 시신 옆에 놓아두는데, 그 개수는 교황의 재임 연수(1년에 금화, 은화, 동화 각각 1개씩)에 따라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훼손시켰던 어부의 반지를 넣고 시신의 얼굴을 비단 천으로 덮으면 바로 관을 봉한다. 봉해진 교황의 관은 대성전 제대의 왼쪽에 있는 ‘죽음의 문’을 통해 아래로 천천히 운구 되어서 역대 교황이 묻히는 대성전 지하 묘소 안에 미리 준비한 대리석관 안으로 옮겨지고 나서 거대한 석판으로 덮여 안치된다.

5. 교황의 역할[편집]

  • 교령을 승인, 재가 또는 정지시킬 수 있다.대사를 허락할 수 있다.
  • 시복이나 시성을 할 수 있다.주교를 임명하고 추기경을 지명할 수 있다.
  • 교구를 설정, 관리, 변경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교구장을 보좌할 수 있도록 보좌 주교를 선임할 수 있다.
  • 교황청립 학교를 설립하고 인준할 수 있다.
  • 전례서를 출간할 수 있다.
  • 교회 재단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다.
  • 교황청에 속한 선교 활동을 수립하고 관리할 수 있다.
  • 공의회를 소집, 주재하고 폐회할 수 있다.
  • 거룩한 날과 가톨릭 축일 등을 정할 수 있다.
  • 새로운 전례를 도입하고 낡은 전례를 폐지할 수 있다.
  • 교의를 공표할 수 있다.
  • 교회법을 새로 도입하거나 변경, 폐지할 수 있다.
  • 가톨릭 정통 교의를 이교와 이단으로부터 수호한다.
  • 환속을 원하는 수도자들의 서원과 맹세를 풀어줄 수 있다.
  • 혼인관계의 특별관면을 해줄 수 있다.
  • 법원의 역할을 한다.
  • 사법절차의 규칙을 세울 수 있다.
  • 문책이나 처벌조항을 만들 수 있다.
  • 청문회를 열 수 있다.
  • 로마 교구를 위해 판사들을 구성하거나 종교회의 판사들을 지명할 수 있다.

6. 교황권에 대한 다른 기독교 교파의 입장[편집]

6.1. 동방 정교회의 입장[편집]

동방 정교회에서는 15세기 페라르-플로렌스 공의회를 통해 서방교회와 신학적 협의를 하고자 하였다. 서방교회가 교황을 반대한 서방의 공의회주의자를 겨냥한 문장인 교황의 수위권 문장에 동의해 주고, 동시에 교황의 권한은 공교회의 공의회와 거룩한 교회법(동방정교회가 제정함)에 합치되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동방과 서방이 공유하는 공의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며, 정교회는 로마 대주교인 교황이 재치권과 무류성을 언급하는 것조차 용인하지 않는다. 정교회는 초대교회부터 내려온 5대 지역의 대주교의 자리가 모두 동등한 위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교황 역시 다섯 대주교 중 한 명일 뿐이다.

6.2. 개신교[편집]

개신교에서는 기본적으로 교황권 자체를 부인한다. 개신교에서는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표 역할을 하긴 했으나 로마교회에 직접적인 선교 활동을 한 적도 없으며, 로마 감독/주교에서 베드로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은 토미즘 이후의 교리적 정리라고 인식한다. 서방교회의 전통을 천주교회와 공유하는 개신교회는 도리어 천주교회가 초대교회부터 내려온 5개 대교구에서 분리된 로마교회로 보며, 교황 역시 12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서방 교회 신학적 정립 이후에 설립된 제도로 인식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대표되는 성도의 믿음이 교회의 기반이며, 전통적 교회 제도는 필요하나 절대적 제도는 복음에 대치된다고 여긴다.

7.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