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문서의 이전 버전(에 수정)을 보고 있습니다. 최신 버전으로 이동
분류
제36대 경기도지사 김동연 金東兗 | Kim Dong-yeon | ||
신상 정보 | ||
출생 | 1957년 1월 28일 (67세) |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 ||
국적 | ||
본관 | 경주 | |
학력 | ||
경력 | 제4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 | |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 | ||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
새로운물결 당대표[1] | ||
정당 | 더불어민주당 | |
가족 | 배우자 : 정우영 | |
자녀 : 2남 | ||
종교 | 개신교 | |
대한민국의 제36대 경기도지사 | ||
임기 | 2022년 7월 1일 ~ | |
전임 | 이재명 |
1. 개요[편집]
김동연(金東兗, 1957년 1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36대 경기도지사(민선 8기)이다. 초대 국무조정실장,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 제4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 생애[편집]
본관은 경주이며, 195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아버지가 33세의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신 후[2]가세가 크게 기울어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과 천막촌에서 할머니, 어머니, 동생 3명과 함께 살았다. 가족 부양을 위해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75년 1월, 한국신탁은행에 취업하였고, 이듬해 1976년 2월, 야간대학이었던 국제대학에 진학하였다.
1977년 병역 신체검사에서 "시력 0.04를 포함하여 신체검사 등급 2등급, 합계 10점짜리 징집 등급에서 연령 1점, 학점 2점, 체격 5점, 지능 2점 등을 받아 모두 합쳐서 3등급"으로 '중등도 근시'라는 판정을 받고 보충역에 편입되었다.
은행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세상 누구를 지금의 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각오로 공부한 끝에 25살이 되던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와 제6회 입법고시에 동시 합격을 하여 공무원 임용 신체검사 때 간이 시력검사에서 0.3 내외를 받고 1983년부터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기획예산처에서 주로 근무했다.[4] 공무원을 하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에 이어 국비 장학금과 미국 정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정책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2년 공직생활을 하며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를 신조로 삼은 김동연은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을 하던 2006년 참여정부에서 변양균 장관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중장기 전략보고서'라고 자평한「국가비전2030」작성의 실무를 총괄하였다.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금융비서관과 국정과제비서관, 예산실장을 역임한 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지냈다.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무상 복지 정책'을 공약했을 때 김동연 차관은 "제기된 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추가 증세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며 무상 보육에 반대하고 보편적 복지 정책을 비판하였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박근혜 정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2012년 동아일보에서 ‘죽기 전에 이것만은…’이란 특집을 연재하면서 원고 청탁을 받은 김동연은 '버킷리스트 첫 번째에 있던 그 꿈을 이룬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거꾸로 두 아들과 철든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새 버킷리스트 맨 윗줄에 올린다"는 내용으로 쓴 글이 1월 18일에 알려졌지만 새 버킷리스트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자신이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세계은행에서 근무할 때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에 진학하여 4학년이던 2008년에 '할아버지 사연'으로 제9기 대학생 인턴기자로 선발된 동아일보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던 큰 아들이 27세 나이였던 2013년 10월 세상을 떠나고 '원전부품비리 사건'이 크게 터져 범정부대책TF 위원장을 맡았는데 한 신문에서 "아들 발인날도 일을 했다"고 보도된 것에 대해 "큰 애가 그 상황에서 뭐라고 했을까"는 물음에 스스로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공직자인데 ‘당연히 하셔야죠’ 했을 거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일을 했다.”고 밝혔다 9개월 뒤 스스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에 쓴 「있는 자리 흩트리기」에서 큰아들에 대해 “큰 아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길을 계속 가고 싶다”며 “무언 중에 한 수많은 약속을 지키는 길을 가고 싶다”고 썼다.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16년간 보낸 선물 품목과 액수 등이 상세히 적은 ‘성완종 선물리스트’에서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선물을 받지 않은 공직자로 등장하는 김동연은 국무조정실장으로 있으면서 비서실에 "사적으로 아주 가까워 거절하면 결례인 경우에 양로원 등에 보내달라"고 했고, "그 외 다른 것들은 정중하게 사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잘 아는 사이였던' 성 전 회장 선물이라 돌려보낸 건 아니었고, 그 기준에 따라 처리한 것뿐이다.”고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골에서 머물다 2015년부터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을 맡아 '파란학기’, ‘After You 프로그램’, ‘아주 희망 SOS 프로그램’ 등 창의 중심의 대학 혁신과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았으며 브라운백미팅, 총장북클럽, 진로멘토링 등을 정기적으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초기 내각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되어 총장직에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재임기간 2년 동안 총 급여 3억 5천만원의 40% 가량인 1억 4천만원을 소외 계층을 위해 기부했다.
1977년 병역 신체검사에서 "시력 0.04를 포함하여 신체검사 등급 2등급, 합계 10점짜리 징집 등급에서 연령 1점, 학점 2점, 체격 5점, 지능 2점 등을 받아 모두 합쳐서 3등급"으로 '중등도 근시'라는 판정을 받고 보충역에 편입되었다.
은행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세상 누구를 지금의 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각오로 공부한 끝에 25살이 되던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와 제6회 입법고시에 동시 합격을 하여 공무원 임용 신체검사 때 간이 시력검사에서 0.3 내외를 받고 1983년부터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기획예산처에서 주로 근무했다.[4] 공무원을 하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에 이어 국비 장학금과 미국 정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정책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2년 공직생활을 하며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를 신조로 삼은 김동연은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을 하던 2006년 참여정부에서 변양균 장관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중장기 전략보고서'라고 자평한「국가비전2030」작성의 실무를 총괄하였다.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금융비서관과 국정과제비서관, 예산실장을 역임한 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지냈다.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무상 복지 정책'을 공약했을 때 김동연 차관은 "제기된 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추가 증세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며 무상 보육에 반대하고 보편적 복지 정책을 비판하였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박근혜 정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2012년 동아일보에서 ‘죽기 전에 이것만은…’이란 특집을 연재하면서 원고 청탁을 받은 김동연은 '버킷리스트 첫 번째에 있던 그 꿈을 이룬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거꾸로 두 아들과 철든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새 버킷리스트 맨 윗줄에 올린다"는 내용으로 쓴 글이 1월 18일에 알려졌지만 새 버킷리스트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자신이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세계은행에서 근무할 때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에 진학하여 4학년이던 2008년에 '할아버지 사연'으로 제9기 대학생 인턴기자로 선발된 동아일보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던 큰 아들이 27세 나이였던 2013년 10월 세상을 떠나고 '원전부품비리 사건'이 크게 터져 범정부대책TF 위원장을 맡았는데 한 신문에서 "아들 발인날도 일을 했다"고 보도된 것에 대해 "큰 애가 그 상황에서 뭐라고 했을까"는 물음에 스스로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공직자인데 ‘당연히 하셔야죠’ 했을 거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일을 했다.”고 밝혔다 9개월 뒤 스스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에 쓴 「있는 자리 흩트리기」에서 큰아들에 대해 “큰 아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길을 계속 가고 싶다”며 “무언 중에 한 수많은 약속을 지키는 길을 가고 싶다”고 썼다.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16년간 보낸 선물 품목과 액수 등이 상세히 적은 ‘성완종 선물리스트’에서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선물을 받지 않은 공직자로 등장하는 김동연은 국무조정실장으로 있으면서 비서실에 "사적으로 아주 가까워 거절하면 결례인 경우에 양로원 등에 보내달라"고 했고, "그 외 다른 것들은 정중하게 사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잘 아는 사이였던' 성 전 회장 선물이라 돌려보낸 건 아니었고, 그 기준에 따라 처리한 것뿐이다.”고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시골에서 머물다 2015년부터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을 맡아 '파란학기’, ‘After You 프로그램’, ‘아주 희망 SOS 프로그램’ 등 창의 중심의 대학 혁신과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았으며 브라운백미팅, 총장북클럽, 진로멘토링 등을 정기적으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초기 내각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되어 총장직에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재임기간 2년 동안 총 급여 3억 5천만원의 40% 가량인 1억 4천만원을 소외 계층을 위해 기부했다.
[1] 지금의 더불어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