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출생 | 1914년 2월 20일 |
함경북도 명천군 상우남면 상장동 | |
사망 | 2008년 1월 7일 00시 30분 (향년 93세) |
국적 | |
빈소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 15 |
본관 | 전주 김씨 |
호 | 백남 |
학력 | 1939년 연세대학교 (졸업) |
가족 | |
직업 | 작곡가, 언론인, 교육자 |
종교 | 개신교 |
1. 개요[편집]
김연준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언론인·교육자이다.
2. 생애[편집]
191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났다. 1939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기술보국을 위해 한양대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했다. 1959년부터 1973년까지 15년간 한양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이후 2007년까지 한양대 학교법인인 한양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2008년 타계하였다.
명천 부상의 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고, 경성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다. 음악부의 피아니스트 김영환의 뒤를 이은 현제명의 지도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덕분에 연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에서 활동했다. 1936년 제15회 연전추기음악회에서 제2 바이올린으로 출연하였다.
한양대학교 총장과 이사장, 대한체육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일보와 기독교신문을 창간하였으며,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회장,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1937년 국내 최초의 바리톤 독주회를 개최한 이래 수 많은 가곡을 작곡하고 24차례의 작곡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음악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저서에 『백남문집』, 『사랑의 실천』, 작곡집에 『김연준 가곡 1,500곡집』, 『성가곡집』 등이 있다. 저서로 《백남문집》과 《사랑의 실천》, 작곡집으로 《김연준 가곡 1,500곡집》과 《성가곡집》 등이 있다.
명천 부상의 아들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고, 경성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다. 음악부의 피아니스트 김영환의 뒤를 이은 현제명의 지도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덕분에 연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에서 활동했다. 1936년 제15회 연전추기음악회에서 제2 바이올린으로 출연하였다.
한양대학교 총장과 이사장, 대한체육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일보와 기독교신문을 창간하였으며,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회장,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1937년 국내 최초의 바리톤 독주회를 개최한 이래 수 많은 가곡을 작곡하고 24차례의 작곡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음악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저서에 『백남문집』, 『사랑의 실천』, 작곡집에 『김연준 가곡 1,500곡집』, 『성가곡집』 등이 있다. 저서로 《백남문집》과 《사랑의 실천》, 작곡집으로 《김연준 가곡 1,500곡집》과 《성가곡집》 등이 있다.
3. 사망[편집]
2007년에는 재단이사장직에서 물러나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하였고, 이후 2008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2009년 5월 15일 한양대 개교 70주년을 맞아 신본관 건립 개관식을 가졌으며 같은 날 김연준의 동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동상은 신본관 바로 앞에 있다.
2009년 5월 24일 한양대 안산캠퍼스(에리카캠퍼스) 개교 30주년을 맞아 김연준의 동상 제막식을 가졌으며 대학 본관 앞에 있다.
2009년 5월 15일 한양대 개교 70주년을 맞아 신본관 건립 개관식을 가졌으며 같은 날 김연준의 동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동상은 신본관 바로 앞에 있다.
2009년 5월 24일 한양대 안산캠퍼스(에리카캠퍼스) 개교 30주년을 맞아 김연준의 동상 제막식을 가졌으며 대학 본관 앞에 있다.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 박사 동상 | |||
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