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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생과 성장3. 노동 운동4. 노동조합 활동
4.1. 금속노조 위원장4.2. 브라질 가톨릭 교회의 연대
5. 제35대 대통령
5.1. 1차 집권기5.2. 2차 집권기
6. 제39대 대통령7. 제40대 대통령8.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브라질의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생애를 서술하는 문서.

2. 출생과 성장[편집]

룰라는 1945년 10월 27일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주의 궁벽한 농촌 마을 카에치스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로 사람들에게는 룰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룰라의 가족은 이탈리아계 혈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계에는 포르투갈계 혈통도 조금 섞여 있었다.

룰라의 아버지는 룰라가 태어나고 며칠 후 상파울루로 훌쩍 떠났다. 7년 후 룰라의 어머니와 자식들이 상파울루로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본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첫 아내와 자식들을 본척 만척했고, 심지어는 룰라와 형제들을 학대하기까지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어머니와 룰라의 형제들은 그런 아버지와 의절을 하고 타 지역으로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일찍 사망했다. 룰라의 아버지는 죽을때까지 여러 여자와 23명의 아이를 보았다고 한다.

룰라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0세가 되어서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때까지 문맹 상태였다.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학교를 4학년 때 그만두어야 했었으므로, 초등학교 4학년의 학력이 배움의 전부이다. 그 후 그는 상파울루의 거리에서 행상과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다가 금속 공장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됐다. 그는 금속 공장에 다니면서 기술 학교에서 일을 배웠고, 18세 때는 금속을 깎아서 가공하는 기술인 선반 자격증도 취득했으나,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왼쪽 새끼 손가락을 잃었다.

3. 노동 운동[편집]

산업 재해로 손가락을 잃은 것을 계기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공장에서 자신의 지위를 차츰 확보해 나가면서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됐고, 1968년에는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부인은 간염에 걸려 그 다음 해 뱃속의 아기와 함께 치료도 못 받고 죽었는데, 미리 아기 옷을 준비할 만큼 부인의 출산을 기다리던 룰라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부인의 병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악화된 것으로 여겨졌고, 적절한 치료만 받았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룰라는 자신을 반스탈린주의자이자 민주사회주의자 라고 선언하고 노동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노조의 활동가가 됐다. 룰라가 주도하던 반스탈린주의 노동조합은 노동자당이 되었다. 1974년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여사무원 마리자 레티시아와 재혼했다.

4. 노동조합 활동[편집]

4.1. 금속노조 위원장[편집]

1975년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10만명 이상의 노조원의 대표가 되었다. 룰라 평전인 《브라질의 선택 룰라》(박원복 옮김, 가산)에 의하면 룰라는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노동운동가였다. 그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일하던 시기에 노동자들의 요구를 귀담아들었다. 항상 사무실을 열어두어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커피를 대접하면서 귀담아들었으며, 퇴직금 정산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일했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룰라 위원장을 신뢰하였다. 1978년에는 브라질의 완성차 업체들에 소속된 금속노동자들이 브라질의 저임금 정책을 거부하고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완성차 업체 금속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적인 총파업투쟁으로 발전하였으며 1979년, 1980년에도 그러하였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권리의식은 신 노동조합운동 형성 및 브라질 노동자당창당 곧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발전하였다. 노동자당은 지주나 자본가가 주도하는 당시 브라질의 지방의회에서 주민 참여예산제를 주장하며 주목받았다. 이 무렵, 노동자당은 공통적으로 반스탈린주의를 주장하며, 이오시프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에 대해 비난하고 반공주의자 레흐 바웬사와 교류했다.

4.2. 브라질 가톨릭 교회의 연대[편집]

룰라는 보수적이었던 브라질의 가톨릭 교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룰라는 해방신학과 거리가 멀었고 이 때문에 다른 국가의 교구에 비해 보수적인 브라질의 가톨릭 교구와 관계를 형성했다. 1970년대 말경 룰라의 노동조합에는 이미 많은 가톨릭 성직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감금된 룰라의 석방과 사면을 요청했다. 군사독재 정권은 성직자들의 반발을 살 것을 우려해 룰라를 임시적으로 석방했다.

5. 제35대 대통령[편집]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까지 룰라는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운동가였다. 선거 운동 중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브라질의 외채 상환을 그의 공약에서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러한 선언은 세계경제에 거대한 파문효과를 준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 선언의 뒤를 잇는 브라질의 부분적인 채무 불이행 선언을 두려워한 자본가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범적으로 외채를 줄여감으로써 현실적인 외채정책을 실시하였으므로 이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정치고문 두다 멘돈카의 조언을 따라 보다 미디어 친화적인 이미지를 추구한 룰라는 PSDB(브라질 사회민주당)의 후보자 조제 세하를 2002년 10월 27일 대통령 선거에서 물리치고 브라질의 35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5.1. 1차 집권기[편집]

제3의 길과 룰라주의편집

룰라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자본주의라는 틀을 유지한 채 각종 개혁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룰라 다 시우바는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했으나, 2002년 출범한 룰라의 1차 내각은 제3의 길을 적극 지지했다. 룰라 스스로는 노동자당의 중도파를 자처했으며, 군사독재정권 이후 내내 브라질의 경제 정책이었던 신자유주의 대신 룰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1차 내각 시절 룰라는 공식적으로 제국주의에 반대하지 않았음에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에 반대했다.

룰라는 그가 선출된 이래 그의 공약 가운데 복지 프로그램을 최우선적으로 실시했다. 군부독재 정권 시기에 다국적 자본들이 경제원조한다는 구실로 외채를 빌려주어 브라질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외채문제, 소수의 지주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대다수의 농민들이 무토지 농민인 심각한 빈부의 격차 등으로 인해 브라질 민중들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대통령에 의해 이미 시도된 바 있는, 기아근절 운동을 노동자당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재해석하고 확대시켜 빈민지원정책인 포미제루를 시행했다. 이 정책은 브라질에서의 굶주림을 끝장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른 정책들과 함께 시행되었다. 브라질의 세라투에서 건조지역 물탱크 건설, 청소년 임신 반대 운동, 가족 농업 강화 운동, 빈민층에 대한 지원금과 같은 과거 캄피나스의 조제 호베르투 마갈량이스 테이셰이라 시장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된 조건부 학습 지원 프로그램 보우사 이스콜라 정책을 보우사 파밀리아라는 이름으로 확대하여 실시했다. 보우사 파밀리아는 브라질 역사상 시행된 정책중 가장 큰 규모의 정책이었다.

오래전부터 룰라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보호와 벌목 규제를 주장했다. 2003년 룰라는 아마존에서 다단계에 벌목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2004년부터 브라질의 아마존 벌목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1차 내각 시절 룰라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주장했지만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브라질 산업의 핵심이라 생각하여 화석연료 감축을 지지하지 않았다.

5.2. 2차 집권기[편집]

200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스 아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좌파 성향 대통령이자 국가 지도자였다. 그러나 룰라가 구성한 1차 내각에는 우익 인사들이 다량 포함되어 있었으며, 룰라는 이들의 내놓은 정책을 부분 발췌하여 시행하였다. 1차 내각은 룰라는 정치학자들에게 제3의 길로 평가되었다. 2007년 2차 내각을 구성한 이후 룰라는 우익에게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인 룰라주의를 시행했다. 룰라는 1차 내각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반제국주의를 지지하였다. 룰라 다 시우바는 공식적으로 반제국주의 지도자를 지지하였으며, 2007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친구가 되었고, 2008년에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과 친구가 되었다. 2010년 1월 5일 2차 룰라 내각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쿠바와 함께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단일 국가로써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국제 성명을 발표했다. 2010년 12월 29일 여론조사기관 센수스·이보페가 룰라의 퇴임을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사람들의 지지율은 87%였다. 상파울루주의 지지율은 95%를 넘었다.

6. 제39대 대통령[편집]

2022년 10월 결선 투표 결과 룰라 50.9% vs 보우소나루 49.1% 로 단 1.8%p차의 박빙으로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누르며 룰라가 당선, 다시 브라질 대통령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1차 투표에서도 룰라 48.4% vs 보우소나루 43.2%로 5.2%p차로 보우소나루를 이겼다. 당초 1차 투표 당선까지 예측되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고, 1985년 민주화 이래 최고의 접전이기도 했지만, 보우소나루 진영의 극한까지 치달은 극우 포퓰리즘과 가짜뉴스 도배, 그를 둘러싼 우파진영의 총집결 속에서 무려 90년대 초부터 중앙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30년이 지나고서 범죄 음해를 당해 징역까지 살았음에도 이 모든 걸 극복하고 3선 대통령으로 당선된 걸 생각하면 참 놀라운 결과다.

12월 9일에 재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 외무부 장관, 수석 보좌관 등 5명의 명단을 발표했으며, 특히 지난 대 선에서 자신을 대신해 출마한 바 있는 페르난두 아다지를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2023년 1월 1일에 있을 3기 취임식을 앞두고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은 2022년 12년 28일 오후 6시부터 2023년 1월 2일까지 취임식이 있을 수도 브라질리아 내에서 총기류 및 탄약 소지 면허 효력을 일시 중단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어긴 사람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지만 당연하게도 보안군과 경찰, 민간 보안회사 직원 등은 명령 준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12월 29일 16명의 신임 장관을 임명하면서 새 정부를 구성할 37명의 장관 임명 절차를 끝냈다. 룰라 당선인이 속한 노동자당 소속 장관은 재무부 장관 및 수석보좌관 등 요직을 포함해 10명이며, 나머지는 중도파와 중도우파에 해당하는 당에서 임명됐다.

2023년 1월 1일, 룰라는 브라질의 제39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식을 가지고 임기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룰라 대통령은 전임 보우소나루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뒤집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개인적 구상에 따라 국가를 복종시키려 했던 사람들에 대한 어떠한 복수의 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분열된 국가 치유를 자신의 임무로 내세웠다. 다만 그는 "오류를 범한 사람들은 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일부 보우소나루 지지자의 쿠데타 선동 행위 등에 대한 처벌을 예고하기도 했다.#

2026년 2월 22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하였다. 2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정상회담에서 대통령들과 대표단은 탈탄소 녹색성장, 반도체, 방산 등 국가전략산업, 학술교류와 교환학생 제도 개선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양국 관계를 67년 만에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소년공 출신'이라는 점 등 공통분모를 고리로 두터운 친분도 재확인했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국에서도 브라질산 소고기 수출이 잘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2026년 10월 4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45.16%를 득표해 47.03%를 얻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에게 1.87%p 차이로 패배했다. 같은 날 실시된 의회 선거 및 지방선거에서도 우파 진영이 약진한 데다, 물가와 치안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이어지면서 재선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결선투표 직전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에서도 보우소나루 후보가 오차범위 내 근소한 우세를 보였다. 특히 1989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1차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한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역전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결선투표를 앞두고 선거운동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사회복지 확대와 지지층 결집에 주력한 끝에, 10월 25일 결선투표에서 51.79%를 득표해 보우소나루 후보를 3.58%p 차이로 꺾고 재선에 성공하여 제40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브라질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초로 1차 투표의 열세를 뒤집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후보가 되었으며, 2002년과 2006년, 2022년에 이어 네 번째 대선 승리를 거두면서 브라질 민선 대통령 역사상 최초의 4선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10월 26일 이재명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확정됐다는 외신 보도 직후 SNS에 올린 글에서 “저의 각별한 친구이자 동지인 룰라 대통령님,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당선을 축하드린다”고 인사했다. 이 대통령은 또 “브라질 국민께서 보내주신 신뢰와 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큰 역할 해주시리라 생각한다”며 “대통령님이 그려오신 브라질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룰라 대통령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저의 진정한 친구인 이 대통령님이 보내준 축하 인사에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국가들 간의 대화, 사회 정의, 노동자 권익 그리고 환경 보전 등 가치를 계속해서 옹호할 것”이라며 “이 대통령과 저는 모두에게 존엄성과 기회를 보장하는 미래를 반드시 만들어 나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7. 제40대 대통령[편집]

8.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