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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미국
1. 개요[편집]
미국의 문화를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상세[편집]
미국의 문화는 원래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미국에서 발전한 서양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는 미국이 미국 영어, 미국 음악, 미국 미술, 사회적 관습, 미국 요리, 민속 등의 고유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갖춘 나라가 되기 전 오랫동안 발전되어 왔다. 오늘날 미국은 초기 기독교 문화의 전통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수많은 국가로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민족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지니게 된 국가가 되었다.
3. 요리[편집]
미국 요리의 역사는 대륙 전역에 걸쳐 농경과 사냥이 혼합된 식단을 가졌던 미국 원주민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 시대에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조리법이 혼합되었으며, 새로운 작물과 가축이 도입되었다. 19세기 초의 요리는 주로 농경 인구가 자신의 땅에서 재배하거나 사냥하거나 기를 수 있는 것들에 기반했다. 이민자의 유입이 증가하고 도시 생활로 이동함에 따라 19세기 후반 미국 음식은 더욱 다양해졌다. 20세기는 새로운 기술, 세계 대전, 음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 그리고 지속적인 이민이 결합하여 광범위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면서 요리의 혁명을 맞이했다. 이는 오늘날 미국 전역의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를 가능하게 했다. 20세기 자동차의 보급은 드라이브인 및 드라이브스루 레스토랑의 형태로 미국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요리에는 밀크셰이크, 바비큐, 그리고 다양한 튀김 음식이 포함된다. 많은 전형적인 미국 음식들은 원래 다른 요리 전통에서 유래한 음식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것인데, 햄버거, 피자, 핫도그, 텍스멕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역 요리로는 연안 주들의 다양한 생선 요리, 검보, 치즈스테이크 등이 있다. 미국 요리에는 추수감사절 만찬이나 크리스마스 만찬의 칠면조와 같이 명절에 먹는 특정한 음식들이 있다. 현대 미국 요리는 패스트 푸드뿐만 아니라 종종 이국적인 포장 음식에도 중점을 둔다. 또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셀러브리티 셰프, 소셜 미디어, 그리고 미식가 문화와 관련된 활기찬 요리 문화가 존재한다.
미국 요리에는 밀크셰이크, 바비큐, 그리고 다양한 튀김 음식이 포함된다. 많은 전형적인 미국 음식들은 원래 다른 요리 전통에서 유래한 음식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것인데, 햄버거, 피자, 핫도그, 텍스멕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역 요리로는 연안 주들의 다양한 생선 요리, 검보, 치즈스테이크 등이 있다. 미국 요리에는 추수감사절 만찬이나 크리스마스 만찬의 칠면조와 같이 명절에 먹는 특정한 음식들이 있다. 현대 미국 요리는 패스트 푸드뿐만 아니라 종종 이국적인 포장 음식에도 중점을 둔다. 또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셀러브리티 셰프, 소셜 미디어, 그리고 미식가 문화와 관련된 활기찬 요리 문화가 존재한다.
4. 문학[편집]
콜럼버스가 1492년에 미대륙에 상륙한 이후에도, 영국은 오랫동안 이 신대륙에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1607년에 처음으로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버지니아 회사는 이주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했다. 신대륙 식민지에서 담배 재배가 성공하자 점차 대농장주 중심의 경작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훗날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남부 특유의 봉건적 사회제도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뉴잉글랜드에서는 1620년 102명의 "필그림 파더스"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매사추세츠주의 해안에 상륙하여 플리머스 식민지를 개척했다. 또 1630년에는 윈스럽의 지도아래 보스턴을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를 만들었다. 얼마후 이 식민지와 기존에 건설한 플리머스 식민지가 하나로 통합되었고, 이 통합지역의 거주민들은 존 캘빈의 교리를 신앙의 기초로 하는 청교도 사회를 건설해 갔다. 그들은 또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하버드 대학을 설립했고 출판물의 인쇄를 위해 인쇄소를 개설했다.
그러나 이들 이주민의 대다수는 종교, 경제상의 이유로 신천지를 찾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로서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개척과 생활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본국의 문학을 바로 미대륙이라는 새로운 토양에 이식시킬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선주 민족에 남아있는 시가에 귀를 기울일 여유도 없었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미국문학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주로 기록문학, 종교문학 등이 보고문서, 역사서, 설교집, 자서전, 전기문, 일기 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 문학의 최초의 등장으로 인정되는 작품은 영국탐험가 존 스미스|스미스(1579-1631)가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건설을 기록한 《버지니아의 사정》(A True Relation of Virginia (1608))인데, 역사서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편,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총독 윈스럽의 일기("Journal")와 편지들, 플리머스 식민지 총독 브래드퍼드(1590-1657)의 《플리머스 식민지에 대해》 등도 귀중한 기록 문학으로 인정되고 있다.
종교 문학에 있어서는, 당대의 청교도 계관시인으로 불리던 위글워스(M. Wiggleworth, 1631-1703)의 시 《심판의 날》이 특히 유명하며, 64년간 목사직에서 종사했던 매더(1663-1728)의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업" (Magnalia Christ Americana (1702))는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이신론의 공세에 밀려서 세가 약해졌던 청교도주의는 에드워즈(1703-1758)에 의해서 놀라운 종교부흥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청교도주의를 체계화한 그의 저술들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에드워즈와 대조적으로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프랭클린(1706-1790)은 철저한 합리주의자로서 미국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활발하고 눈부신 활동을 하여 오늘날 미국식 직업윤리와 물질문명의 기반적 철학과 사상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자서전" (Autobiography)은 신학중심의 시대에서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로 미국사회가 전환되어가는 시점이었던 당대의 정신사를 보여주고 있다.
독립 전쟁이 끝나자, 해밀턴(1755 혹은 1757 - 1804), 매디슨(1751 - 1836)과 존 제이(1745 - 1829)의 《더 페더럴리스트》(The Federalist)라는 수필은 미국 정부의 조직과 공화제 가치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인 논쟁을 저술 하였다. 제퍼슨(1743 - 1826)이 쓴 《미국독립선언문》, 그리고 미국 헌법에 대한 영향력, 그 자서전 《버지니아주에 관한 주석》(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과 많은 편지 등 초기 미국의 가장 재능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그 평가를 굳히고 있다.
에임스(1758 - 1808), 오티스(1725 - 1783)와 헨리(1736 - 1799)도 그 정치적 저작물이나 연설에 중점을 두었다.
새롭게 탄생한 최고 국가의 초기 문학 대다수는 기존의 문학 장르에서 미국의 소리를 직접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경향은 소설에 반영되었다. 유럽 형식과 스타일이 미국에 옮겨오면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문학 분야는 포스트 모더니즘이지만, 그 호칭은 다양한 이견이 있다.
오늘날 현대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카버(1938 - 1988), 로스(1933 -), 매카시(1933 -) 등이 있다. 예를 들어 William S. Burroughs (1914-1997)는 과학 소설, 탐정 소설, 서양을 사용한다. Giannina Braschi (1953-) 는시, 광고, 뮤지컬, 선언 및 드라마를 믹스한다.
한편, 뉴잉글랜드에서는 1620년 102명의 "필그림 파더스"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매사추세츠주의 해안에 상륙하여 플리머스 식민지를 개척했다. 또 1630년에는 윈스럽의 지도아래 보스턴을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를 만들었다. 얼마후 이 식민지와 기존에 건설한 플리머스 식민지가 하나로 통합되었고, 이 통합지역의 거주민들은 존 캘빈의 교리를 신앙의 기초로 하는 청교도 사회를 건설해 갔다. 그들은 또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하버드 대학을 설립했고 출판물의 인쇄를 위해 인쇄소를 개설했다.
그러나 이들 이주민의 대다수는 종교, 경제상의 이유로 신천지를 찾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로서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개척과 생활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본국의 문학을 바로 미대륙이라는 새로운 토양에 이식시킬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선주 민족에 남아있는 시가에 귀를 기울일 여유도 없었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미국문학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주로 기록문학, 종교문학 등이 보고문서, 역사서, 설교집, 자서전, 전기문, 일기 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 문학의 최초의 등장으로 인정되는 작품은 영국탐험가 존 스미스|스미스(1579-1631)가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건설을 기록한 《버지니아의 사정》(A True Relation of Virginia (1608))인데, 역사서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편,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총독 윈스럽의 일기("Journal")와 편지들, 플리머스 식민지 총독 브래드퍼드(1590-1657)의 《플리머스 식민지에 대해》 등도 귀중한 기록 문학으로 인정되고 있다.
종교 문학에 있어서는, 당대의 청교도 계관시인으로 불리던 위글워스(M. Wiggleworth, 1631-1703)의 시 《심판의 날》이 특히 유명하며, 64년간 목사직에서 종사했던 매더(1663-1728)의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업" (Magnalia Christ Americana (1702))는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이신론의 공세에 밀려서 세가 약해졌던 청교도주의는 에드워즈(1703-1758)에 의해서 놀라운 종교부흥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청교도주의를 체계화한 그의 저술들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에드워즈와 대조적으로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프랭클린(1706-1790)은 철저한 합리주의자로서 미국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활발하고 눈부신 활동을 하여 오늘날 미국식 직업윤리와 물질문명의 기반적 철학과 사상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자서전" (Autobiography)은 신학중심의 시대에서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로 미국사회가 전환되어가는 시점이었던 당대의 정신사를 보여주고 있다.
독립 전쟁이 끝나자, 해밀턴(1755 혹은 1757 - 1804), 매디슨(1751 - 1836)과 존 제이(1745 - 1829)의 《더 페더럴리스트》(The Federalist)라는 수필은 미국 정부의 조직과 공화제 가치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인 논쟁을 저술 하였다. 제퍼슨(1743 - 1826)이 쓴 《미국독립선언문》, 그리고 미국 헌법에 대한 영향력, 그 자서전 《버지니아주에 관한 주석》(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과 많은 편지 등 초기 미국의 가장 재능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그 평가를 굳히고 있다.
에임스(1758 - 1808), 오티스(1725 - 1783)와 헨리(1736 - 1799)도 그 정치적 저작물이나 연설에 중점을 두었다.
새롭게 탄생한 최고 국가의 초기 문학 대다수는 기존의 문학 장르에서 미국의 소리를 직접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경향은 소설에 반영되었다. 유럽 형식과 스타일이 미국에 옮겨오면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문학 분야는 포스트 모더니즘이지만, 그 호칭은 다양한 이견이 있다.
오늘날 현대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카버(1938 - 1988), 로스(1933 -), 매카시(1933 -) 등이 있다. 예를 들어 William S. Burroughs (1914-1997)는 과학 소설, 탐정 소설, 서양을 사용한다. Giannina Braschi (1953-) 는시, 광고, 뮤지컬, 선언 및 드라마를 믹스한다.
5. 영화[편집]
→ 자세한 내용은 미국/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