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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일
2022년 10월 29일 22시 15분경
발생일로부터 +708일
발생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119-3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173, 179 사이 골목[지번]
이태원역 1번출구 앞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2]
유형
압사, 다중밀집사고
영향
밀집예상지역 사전 철폐
군중 유체화 현상[3] 및 관계당국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 안전불감증
인명
피해
사망
159
- 사고 발생 시 사망자: 156명, 사고 이후 사망자: 3명
부상
196
- 경상: 165명, 중상: 31명
재산피해
미상
동원
인원
경찰, 소방/구급대원, 공무원 2,692명[4]
경찰수사본부 인원 561명
장비
소방차 및 구급차, 경찰차 233대[5]
1. 개요2. 전개3. 사망자 분석4. 사고 원인5. 사고 징후6. 여파
6.1. 사고 수습 당시6.2. 행사 취소6.3. 합동분향소6.4.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6.5. 검은 리본
7. 사고 사진

1. 개요[편집]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의 좁은 골목에 할로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압사 사고.

2. 전개[편집]

파일:이태원압사사고3.webp
사고 몇 시간 전 인파 상황[6]

사고 당일 오후 10시경,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측 골목 저지대 중간(저지대 입구에서 25m쯤 올라간 곳)의 18.24m²(5.5평)공간[7]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 행인끼리 우왕좌왕하는 과정에 서로 뒤엉켰고, 점차 밀집되는 상황에서 불편한 자세를 유지한 채 응급 구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한편 해밀톤호텔 북서측 삼거리(고지대)[8]에서는 20분만에 막대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는 바람에 서측 골목 중간쪽 18.24m² 공간의 상황은 순식간에 심각해져만 갔다. 사고 초반 뒤쪽 인파였던 사람들도 앞쪽으로 누적되어 갔고, 뒤쪽 인파에서 세 차례 정도 밀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져 이른바 '연쇄 깔림'으로 인해 앞쪽 참변이 가중됐다. (대략 18톤·초[9]의 충격량[10])

설상가상으로 스마트폰을 꺼낼 상황이 아니었던 데다[스마트폰을 분실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으며 가방을 분실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트래픽 과잉으로 인해 전화와 데이터 통신까지 먹통인 상황 속에서 뒤쪽 인파는 이때까지도 (미디어를 통한)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고[11] 중간쯤에 내려와서야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별개로 '내려 가! 내려 가!'라며 외치는 영상은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상황이 아니라 사고 발생 2~3시간 전에 한 여성이 큰 목소리로 교통정리를 해 주자 이에 호응하는 장면이므로 사고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저 멈출 줄 모르며 내려오고만 있었다. 앞쪽 인파에서 청색증 및 구토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하자 일제히 '뒤로! 뒤로!'를 외치며 18.24m² 뒤쪽 인파가 대부분 역행하여 빠져나갔으나, 18.24m²에는 이미 300여 명의 사상자끼리 의식을 잃고 몸이 끼어서서 빼내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미 외상성 질식이, 밑에 깔린 사람들은 장기 파손으로 인한 복부 팽창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에 의하면, 외상성 질식으로 인해 뇌에 혈액이 돌지 못해 심정지로 이어지고, 호흡이 돌아온들 이미 비가역적 뇌손상을 입는다고 한다. 사망자들 대부분의 사인이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였고 외형상태는 무산소증으로 인한 청색증, 검은 반점, 안면 눌림, 심하게 꺾인 경추 형태 등이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깔린 사망자들의 경우, 사방의 압박과 무게로 장기 파손이 추가적으로 이어져 시신 훼손 정도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18.24m²의 공간에서 15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한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들의 도로 상황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영상 최초 신고 이후 40분 이상이 지난 23시가 되어서야 경찰의 도로 통제에 따른 구급차 진입이 비로소 원활해졌다고 한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구급차가 들어오는 건 가능했지만 수많은 구급차가 서로 뒤엉키면서 인근 가용 병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구급차 이송은 부상자가 아닌 사망자가 먼저 호송되는 등 혼란이 극심했다.

3. 사망자 분석[편집]

159명이 사망했으며, 사망자 현황을 각각의 기준에 따라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성별 기준
성별
사망자 수
비율
여성
102명
64.15%
남성
57명
35.85%
연령대 기준
연령대
사망자 수
비율
10대
13명
8.18%
20대
106명
66.67%
30대
30명
18.87%
40대
9명
5.66%
50대
1명
0.63%
등록 기준지 기준[12]
거주지
사망자 수
비율
66명
41.509%
경기도
40명
25.157%
5명
3.145%
5명
3.145%
4명
2.516%
3명
1.887%
2명
1.258%
2명
1.258%
1명
0.629%
1명
0.629%
1명
0.629%
1명
0.629%
1명
0.629%
1명
0.629%
26명
16.352%

4. 사고 원인[편집]

할로윈 축제 인원 과밀 및 경찰, 행정당국의 안전 관리와 통제 부족 및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
사고가 발생하기 전날부터 몇 차례 이상징후가 감지되었으나 결국에는 압사 사고가 발생하였다.

5. 사고 징후[편집]

사고 전날인 10월 28일 금요일 저녁, 이태원 뒷골목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사고 구간에서 정체가 길어지자 일부 사람들이 앞 사람을 밀치고 이동해 사람들 간 언성이 높아졌고, 몇몇은 인파에 떠밀려 넘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지는 등 위험한 모습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게다가 언론 보도가 아니더라도 인파에 떠밀려 다친 사례나 서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진 사례의 경우 목격담이나 영상, 사진이 넷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또한 유튜버 긴벌레는 29일 저녁에 이태원에서 팬미팅을 진행하려 했는데, 전날 사전 답사로 현장 상황을 보고는 이태원 결집은 위험할 것으로 판단하고 팬미팅 장소를 남산으로 옮겼다.

사고 당일인 10월 29일 오후부터 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 방향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파로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했다. 사고 발생 3시간 40분 전인 18시 34분에 압사 언급을 하며 최초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사고 발생 직전까지 112 신고가 경찰이 공개한 것만 11건이 들어왔다. 신고 내용은 모두 압사사고 우려였는데 경찰이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 심지어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가 사고지점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결국엔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특히, 첫 출동의 경우 경찰이 현장에 갔으나 군중에게 해산 요청만 하고 종결시켰다. 참고로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가 상위 기관인 서울경찰청에 사전 및 당일에도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으나 서울경찰청에서 일련의 사유로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다만 사전에 용산경찰서의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고 용산서가 구두로 요청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사실 여부 확인에 들어갔다. 서울경제 기사

아프리카TV의 BJ꽉꽉은 사고 지점에서 사고 발생 1시간 전에 위험한 상황을 겪고 탈출해 인근 이태원파출소를 찾아 통제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한 네티즌은 사고 1시간 전에 이미 사고 위치에서 인파에 깔려 소지품도 잃었다가 다행히 탈출했다고 했으며,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고 직전에도 인파 속에서 충격파가 몇 번이나 휘몰아쳤다고 한다.

사고 1시간 전, 사고 지점에서 100m 가량 떨어진 '만남의광장 이태원본점' 앞에서 진행된 KBS 9시 뉴스 생방송 보도를 보면 이태원의 경사진 골목길을 양쪽에서 오르내리는 혼잡스러운 모습이 잘 보인다. 뉴스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오고 있다고 했으며, 보도 자체도 인파와 시끄러운 가게 스피커의 음악 소음으로 인해 골목에서는 진행이 불가능해 인근의 좁은 담과 화단 위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사고 전날에도 경찰서에 신고가 많이 접수되는 등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이 징후를 놓치지 않고 6호선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이태원로 및 보광로 일대 도로 통제 및 차 없는 거리 운영 등 사전 대책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6. 여파[편집]

6.1. 사고 수습 당시[편집]

  • KBS 뉴스특보와 전화 연결된 현장 목격자에 따르면, 사고 발생 이후 인근 상가들은 안전을 위해 영업을 종료하고 손님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안내했다고 한다. 구조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의견이 있으나 현장 경찰 및 소방 인력에 의해 상가 내부 인원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통제되었다는 증언도 존재한다. 이는 사고 발생지의 혼잡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이다.
  • 사고 발생 후부터 수습 전까지 이태원역 일대를 지나는 시내버스는 이태원로 녹사평역 ~ 한강진역 구간, 보광로 이태원역 ~ 청화아파트 구간 통제에 따라 우회운행한다. 이후 대사관로 ~ 한강진역 구간은 통제가 우선 해제되었고, 11월 1일부터 전 구간 통제가 해제되었다.
  • 서울시는 인파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새벽 3시 50분부터 녹사평역~서울역 간 셔틀버스 2대를 운행하였으며 서울 지하철 6호선은 심야 임시편 운행 및 새벽 5시에 조기 운행을 시작하였다.
  • 수도권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강원도 소속 구급차들도 사고 현장에 동원되었다. 119 구급차 경기 50대, 인천 10대, 충남 10대, 충북 10대, 강원 10대, 서울 52대가 사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구급차 동원 현황 뿐만 아니라 소방당국의 요청에 사설구급차와 병원, 보건소구급차도 동원되었다. [14]
  • 사상자들은 강북삼성병원, 건국대병원, 경희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동국대 일산병원, 이대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보라매병원, 중앙대병원, 순천향대 서울병원, 삼육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한양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동탄성심병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노원 을지대병원, 의정부 을지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분당차병원, 삼성서울병원, 성빈센트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 등 40~50여 개의 병원 및 사망자의 경우 수도권의 타 장례식장등에 분산 이송되었다.
  • 사고 현장과 가까운 한남동 소재로 사상자가 많이 이송된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의 경우 영안실조차 가득 차서 다른 곳으로 사망자들을 이송하였다.
  • 사고현장에서 전화 및 데이터 통신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으나, 새벽 2시 33분을 기준으로 다시 정상화되었다.

6.2. 행사 취소[편집]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할로윈 관련으로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 예정이었던 행사는 거의 대부분 중지되거나 연기되었다.

6.3. 합동분향소[편집]

10월 31일부터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서 합동분향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합동분향소는 11월 5일까지 운영되었다.

6.4.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편집]

또한, 합동분향소와 별개로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시민들의 추모공간이 만들어졌다.

파일:1667200727586124.jpg

6.5. 검은 리본[편집]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후에 사용했던 리본과 똑같은 모양을 가진 검은 리본을 사용해서 애도하고 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여러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 및 추모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 검은 리본은 이태원 압사 사고에만 한정해서 추모하기보다 오히려 장례식장에서 추모의 의미로 검은 리본을 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파일:다운로드.jpeg.jpg

7. 사고 사진[편집]

파일:이태원압사사고.webp
파일:이태원압사사고2.webp
[지번] 이태원동 119-3[2] 해당 도로에 도로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3] 인파로 인해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군중 전체가 물에 휩쓸린 것처럼 움직이는 현상[4] 소방 507명, 구청 800명, 경찰 1,371명, 기타 14명. 기타는 수도방위사령부 수송대와 의무대 인력들로 추측된다.[5] 소방 184, 구청 10, 경찰 30, 기타 9. 구급차: 서울 52대, 경기 50대, 인천·충남·충북·강원 10대. # 비상조치 발령으로 지원을 나간 경찰 차량 30대 포함[6] 사고지점 30m 북편골목, BOTTLE STORE 간판 앞.[7] 해당 공간에서 사망사고가 집중됐다.[8] 이태원 세계음식거리[9] 한 사람 기준으로 18톤·초에 해당하는 충격력을 온전히 다 받을 수는 없다. 애초에 그렇게 되면 신체 외형 상태부터가 온전치 못하게 된다. 실제로는 붙어 있는 사람들 사이로 분산된다. 고지대 쪽 사람들의 체중합이 경사(높이차)와 속도차(밀침)에 비례하여 밑으로 가중되는데, 전문가는 이를 20명당 15t 기준 18t으로 보정했다. 즉 위쪽 인파의 사람들의 평균 무게가 60kg라고 가정했을 때, 한 사람당 72kg 정도의 무게를 눌리는 내내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때 체중이 72kg보다 덜 나가는 사람들은 이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앞쪽 상황은 거기에 인원 수만큼의 체중(+60kg ~ +360kg)을 더해 버텨야 했을 것이며, 그나마 압력이 상하체 면적으로 분산되어 몇 분을 버틸 수 있었던 거지, 이를 그 이상 버티는 건 건장한 성인 남성도 불가능하다. 또 분산이 고르지 못한 곳(양 사이드 측)에서는 더 큰 충격량을 받아 사망자가 훨씬 많이 나왔다.[10] 보배드림에서 이태원 생존자가 올린 피멍이 잔뜩 들어있는 몸 사진을 통해 압박으로 인한 몸의 눌림이 얼마나 심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11] 그 상황을 촬영했던 한 제보자에 따르면 술집 난간 위에 있던 사람들이 앞쪽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여 손을 뻗자 그제서야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12] 등록기준지는 부 또는 모의 본적이나 출생시 주소지로 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사망 당시의 연고지와는 무관할 가능성이 높다.[외국인] [14]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에도 전국에서 구급차들이 동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