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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어머니 또는 모친은 여성이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의 입장에서 그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며, 남의 앞에서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는 자친이라고도 부른다. 다르게 부르는 호칭으로 '엄마'가 있다.
2. 상세[편집]
간혹 육아를 하고 입양을 하였거나 이따금 보육원을 책임지는 여성일 경우에도 어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되면 미혼모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배우자의 부모님도 자신의 부모님이 된다. 촌수로도 부부는 무촌(無寸)이기 때문이고, 문화적으로도 호칭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게 되어 있다. 여자가 결혼하면 시어머니, 남자가 결혼하면 장모님이 생긴다.
3. 어원[편집]
신라시대의 학자 최치원이 지은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의 비문에 阿㜷(아미)가 어머니를 가리키는 신라어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 시대에 이미 어미라는 말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역할[편집]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자식을 낳고 길러 세대 재생산을 한다. 인간의 아이는 미숙한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부모의 양육을 필요로 한다. 인류학에서는 부모의 양육 역할에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 출산은 분명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지만, 양육의 분담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일부 인류 집단에서는 양육이 여의치 않은 경우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출산과 양육, 그리고 가족 관계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생물학적 역할과 사회적 역할로 구분할 수 있다. 19세기까지도 많은 문화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로 양육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이마누엘 칸트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가족 관계 내에서도 역할이 다르며 그 역할은 서로 상보적이지만 남성성이야 말로 만물의 척도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없다는 차별적인 주장을 펼쳤다. 칸트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와 19세기의 남성 철학자들 다수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들은 상보적 성 역할 이론으로 모성을 미화하고 숭배하였다. 철학의 모성 숭배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사이 정점을 찍었다. 초기 여성주의 저술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모성의 관점에서 옹호하는 일도 있었으나, 이후 여성주의 철학은 신화적인 모성 숭배가 만들어낸 여성성인 "이상적인 모성" 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억압의 근거로 작용하였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을 정점으로 하는 공동체로 가족을 설명하는 기능주의적 묘사가 불평등을 감추기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여성주의자들은 가부장제가 미화하는 이상적 모성은 강요된 것으로 현실에서는 사회 제도가 임신과 출산, 양육, 집안일 등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떠미는 수단이 될 뿐이라고 본다. 현실에서 여성은 출산에 대해 일방적인 압박을 느끼며, 가족 관계 내에서 어머니의 성 역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적 갈등 요소이다. 그러나 제2세대 여성주의의 출현 이후 여성주의 일각에서는 모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 역시 반여성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들은 모성을 "인간적 모성"과 "가부장적 모성"으로 나누고 가부장제에 의해 이데올로기화된 모성이 아닌 생명, 소통, 평화 등을 기반으로 한 인간적 모성의 실현을 강조한다.
한편, 가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계속하여 변화하고 있는데, 역사 속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양육 의무가 강조되기도 한다.
출산과 양육, 그리고 가족 관계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생물학적 역할과 사회적 역할로 구분할 수 있다. 19세기까지도 많은 문화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로 양육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이마누엘 칸트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가족 관계 내에서도 역할이 다르며 그 역할은 서로 상보적이지만 남성성이야 말로 만물의 척도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없다는 차별적인 주장을 펼쳤다. 칸트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와 19세기의 남성 철학자들 다수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들은 상보적 성 역할 이론으로 모성을 미화하고 숭배하였다. 철학의 모성 숭배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사이 정점을 찍었다. 초기 여성주의 저술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모성의 관점에서 옹호하는 일도 있었으나, 이후 여성주의 철학은 신화적인 모성 숭배가 만들어낸 여성성인 "이상적인 모성" 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억압의 근거로 작용하였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을 정점으로 하는 공동체로 가족을 설명하는 기능주의적 묘사가 불평등을 감추기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여성주의자들은 가부장제가 미화하는 이상적 모성은 강요된 것으로 현실에서는 사회 제도가 임신과 출산, 양육, 집안일 등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떠미는 수단이 될 뿐이라고 본다. 현실에서 여성은 출산에 대해 일방적인 압박을 느끼며, 가족 관계 내에서 어머니의 성 역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적 갈등 요소이다. 그러나 제2세대 여성주의의 출현 이후 여성주의 일각에서는 모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 역시 반여성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들은 모성을 "인간적 모성"과 "가부장적 모성"으로 나누고 가부장제에 의해 이데올로기화된 모성이 아닌 생명, 소통, 평화 등을 기반으로 한 인간적 모성의 실현을 강조한다.
한편, 가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계속하여 변화하고 있는데, 역사 속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양육 의무가 강조되기도 한다.
5.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