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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يمنية | كۆماری عێراق

Republic of Yemen
파일:예멘 국기.jpg
파일:예멘 국장.png
국기
국장
ٱللَّهُ، ثُمَّ ٱلْوَطَنُ، ٱلثَوْرَةُ، ٱلْوَحْدَةُ
알라, 국가, 혁명, 통일
국가 정보
국가명
예멘
수도
사나
독립
1990년 5월 22일[1]
언어
아랍어
면적
5,279만 7천㏊ (50위)
인구
3,444만 9,825명 (44위)
국교
이슬람교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기
국가
연합 공화국
국화
아라비카커피
국수
아라비아표범
정치
정치체제
최고지도자
압둘말리크 알후티 (2004년 9월 ~ 현재)
총리
마인 압둘말리크 사이드
최고정치회의 의장
마흐디 알 마샤트
최고정치회의 총리
압델아지즈 빈 합투르
외교
가입 국제기구
주한대사관
도쿄도 미나토구 니시아자부
국가 코드
YE, YEM
국제전화
+367
여행경보
전 지역 여행금지
1. 개요2. 상세3. 역사
3.1. 예멘의 통일
4. 행정구역5. 자연환경6. 인문환경
6.1. 민족6.2. 문화6.3. 종교
7. 경제8. 스포츠9. 정치10.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예멘 공화국은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있는 국가이다.

2. 상세[편집]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지 중 하나로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며, 천일야화의 주요 배경지 중 하나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길목에 있어 예로부터 문화적으로 풍부했고, 중동 국가 가운데서 아랍인의 독특한 기질과 문화적 전통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북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오만과 인접해 있다. 수도는 사나이며 유고슬라비아 가 해체된이후에는 Y로 시작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3. 역사[편집]

기원전 1,000년 경 남서부 아라비아 반도에 사바 왕국(Saba, 사바 또는 시바) 왕국이 발생하여 기원후 570년경까지 존속하였다. 왕국은 예멘 지역에서 나는 몰약과 유향 무역으로 경제적으로 부를 축척하였으며, 주민 대부분은 농경에 기반하여 생활했다.

기원전 2세기 경에는 서남부 해안을 중심으로 힘야르 왕국(Himyar, 기원전 115년~기원후 522년)이 등장해 향료의 해상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기원후 1세기 경 이 지역은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라고 불렸다.

힘야르 마지막 왕 두 누와스(Dhu Nuwas)는 널리 퍼진 기독교를 몰아내기로 하고, 예멘 지역 북부 나즈란의 기독교인에게 유대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자 불에 태워 죽였다. 당시 에티오피아(악숨 왕국)의 통치자 나자쉬 황제는 기독교로 개종한 상태였고, 기독교의 수호자인 유스티누스 로마 황제에게 선박 지원을 요청하여 530년, 7만여 에티오피아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두 누와스 왕은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고 예멘 지역은 에티오피아가 점령했다(2세기 경). 600년 경 페르시아로 도망간 힘야르 왕자의 요청으로 페르시아 군대가 예멘 지역에서 에티오피아인을 쫓아내 72년간 지속된 에티오피아의 예멘 통치가 끝났다.

628년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가 도래되었고, 9세기 초반까지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가 예멘 지역을 지배했다.

9세기 초 서남부 티하마 지역(Tihama) 자비드 시(Zabid)를 중심으로 지야드 왕조(Ziyad)가 성립했다.

9세기 말 무함마드의 후손인 야흐야 빈 알후세인 빈 알카심 알라시(Yahya bin Hyssein bin Qasim ar-Rassi)가 북부 사나를 중심으로 자이드 왕조(Zayd, 자이드파)를 성립하였다. 이 지역이 예멘이라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1962년 혁명 시까지 북예멘 지역을 중심으로 왕조가 지속되었다.

11세기 사나를 중심으로 이스마일파 술라이히 왕조(Sulayhi)가 성립되었고, 남부에는 에티오피아 노예 출신의 나자 왕조(Najah)가 성립하였다. 남부 지역은 나자 왕조의 뒤를 이어 라술 왕조(Rasul)와 타히리드 왕조(Tahirid)가 16세기 초까지 차례로 명멸했다.

15세기에는 예멘 동부에서 카티리 왕조(Kathir)가 성립되어 1967년 남예멘 성립 시까지 존재하였다. 15세기 예멘 지역은 커피 무역을 시작하였는데, 예멘 서남부 알마카 지구(Al-Makha, 모카 시가 위치. Al-Mocha라고도 불림)는 당시 세계 최대의 커피 무역항이었다. 예멘 지역의 자이드 왕조는 18세기 커피 무역 퇴조와 함께 쇠퇴하였다.

1570년 포루투갈이 아라비아해의 소코트라 섬을 점령했다.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북부 자이드 왕조와 동부 카티리 왕조를 제외한 예멘 전 지역을 점령했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은 홍해입구를 중심으로 점령지를 넓혀 나갔으며, 1839년 천혜의 무역항인 아덴을 노리고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영국은 지방 토후들과의 보호 조약을 통해 아덴을 중심으로 영구 보호령을 설치했다.

1849년 오스만 제국이 예멘 지역을 재점령하였다. 그러나 자이드 왕조를 완전히 복속 시키지 못하여 평화조약을 맺었고,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물러날 때까지 공존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자이드 왕조는 ‘예멘 이마메이트’(Imamate of Yemen)로 불리며 영국의 아덴 보호령을 제외한 예멘 전 지역을 통치하였다. 종교 최고 지도자인 이맘(Imam)은 세속과 종교를 동시에 지배했으며,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존경 받았다. 1948년 암살된 야히야 무함마드 하미드 에드딘 이맘의 뒤를 이은 아흐마드 빈 야히야 이맘은 개방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영국, 미국, 이집트, 소련 등과 외교관계를 맺고, 근대화 정책도 추진하였으나 실패했다.

1962년 아흐마드 이맘이 사망 후, 압둘라 살라(Abdullah Salla)가 이끄는 장교단의 군사 쿠데타로 자본주의 국가 예멘 아랍 공화국(북예멘)이 성립했다. 1967년에는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여 공산주의 국가인 남예멘 공화국(Republic of South Yemen)이 성립했다.

1972년·1973년·1979년에 국경 문제로 남예멘과 북예멘 간에 무력 분쟁이 이어져 왔으며,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예멘과 북예멘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1990년 5월 남북협상에 의해 통일이 성사되었으나 1994년 5월에 재분단되어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고, 1994년 7월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3.1. 예멘의 통일[편집]

예멘의 통일은 1990년 5월 22일에 예멘 아랍 공화국과 예멘 인민민주공화국이 통일 국가인 예멘을 건국한 사건이다. 이는 냉전 국가 중에서 최초로 서로 합의하여 인정하는 통일일 뿐 아니라 분단국가 상황에서도 서로 불가능한 기적을 이룬 통일이기도 한다. 더구나 예멘의 통일은 독일의 재통일과 같은 해에 통일하였는데 4개월 이상 앞섰다.

4. 행정구역[편집]

예멘은 22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5. 자연환경[편집]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하며 북부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는 오만이 위치하며, 남부는 아덴만, 서부는 홍해에 연한다. 국경선은 1,746㎞으로 오만 간 388㎞, 사우디아라비아 간 1,458㎞이며, 해안선은 1,906㎞로 남북거리는 565㎞, 동서거리는 1,100㎞이다.

북위 12도에서 20도 사이에 위치하며, 아덴만을 사이에 두고 소말리아와 만난다. 본토 이외에 소말리아 앞바다에 위치한 인도양의 소코트라섬 등도 예멘에 속한다.

국토 면적은 약 527,968㎢으로 경작가능면적은 6%이며, 목초지 30%, 삼림 7%, 기타 57%으로 이용되고 있다. 관개농지면적은 4,900㎢이다.

중부 및 남서부는 예멘고원으로 불리는 고원 지형으로, 수도 사나는 해발고도 2,300m 위치하고 있다. 예멘 고원은 건천인 와디 하드라마우트와 와디 마실라를 중심으로 중앙(동부)과 서부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중앙(동부) 고원지대는 해발고도 450m~1,500m에 이르는 광활한 고원 평야로 서부 고원지대보다 더 건조하나 작물 재배에 충분한 강수량을 보유하고 있다. 예멘 최고도 지역은 Jabal An Nabi Shu'ayb로서 해발 3,666m에 이른다. 서부의 고원지대에서는 와디 주변 평지의 비옥한 토질, 온화한 기후, 아랍 지역 최대인 적정한 강수량 등을 바탕으로 감자, 수수를 비롯한 곡물류의 상당량이 생산된다. 계단식 농경이 발달해 있으며, 목화와 과일 등도 생산하고 있다. 망고가 가장 수익성이 높다.

국토 북동부는 룹알할리 사막(al-Rub' al-Khali)의 남쪽과 연결된 모래 사막 지형으로, 소수의 베두인족들이 거주한다. 베두인 유목민들은 낙타 유목만을 하고 있다.

예멘 북부 및 중앙고원지대는 여름에는 더우나, 겨울에는 추운 한냉서온 기후이며 연평균기온은 22~25도, 하절기에는 최고 50도, 동절기에는 최저 0도, 연평균 강우량은 500㎜에 이른다. 남서부 고원지대의 기온은 여름에도 상당히 서늘하고 겨울에는 매우 춥고, 동부고원 및 사막은 고온건조 사막기후이다.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은 건조 지대이나 예멘 서부 고원지대는 토양이 비옥한 편이며 강우량도 적당해 농경지 대부분은 별다른 관개시설 없이 농사가 가능하다. 사나 남쪽의 고원지대는 지진 다발지역이며, 1982년 12월 대지진으로 약 3,000명의 인명피해와 50만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국토 남부는 해안 평원 지형으로 넓이 25~40㎞의 좁은 해안평야인 티하마(Tihama) 평원이 남부 홍해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아덴만쪽에도 너비 8~16㎞의 해안평원이 위치하고 있다. 해안평원에서도 곡물, 야채 등의 농작물 재배가 이루어지며, 관목류 나무도 분포되어 있다. 해안 습지로 건조한 기후에도 말라리아 모기가 서식한다. 남부해안에 위치한 아덴은 1월 평균기온이 25℃, 7월 평균기온이 32℃, 여름의 한낮 기온이 38℃를 넘는 경우가 많으며 상대 습도는 80% 가량된다. 티하마 및 남부해안지역은 고온다습하고 토질이 척박하다.

티하마로 불리는 홍해 연안은 매우 건조하고, 산지에서 흐르는 강은 보기 힘들며, 와디 또는 지하수의 형태로 존재한다. 동부는 해발 2,000m 지역이며, 기온차가 서부산지보다 더 크다. 낮 30°C, 야간 0°C의 기온 차를 보이기도 한다. 동부 지역은 보리나 밀이 재배된다.[출처 필요] 아덴 만 연안의 해얀 평야에서는 수리를 이용한 농작물을 경작한다. 기온은 홍해 연안이 높고 중부 고지가 쾌적하다. 중부에서는 연간 400∼1,000mm의 강우량을 보인다. 홍해 연안의 평야는 40∼50°C의 고온과 높은 습도의 기후를 이룬다.[2]

예멘 해안 저지대는 전형적인 사막기후, 고원 산악지대는 온난성 기후이며 강수량은 고도에 따라 편차가 크다. 동부 해안 저지대와 북동부 사막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에 불과한 영농 불모지대이며, 남서부 고원지대는 연평균 강수량이 400㎜ 정도이다. 고원지대는 강수량의 변화가 심하고 일부지역은 연평균 강수량 750㎜에 이르기도 한다.

부존자원으로 석유, 가스, 플루토늄, 암염, 석탄, 금, 니켈, 우라늄, 진주 등이 있다. 암염은 2,500만톤의 매장량으로, 고순도, 노천광으로 수익성이 높다.

6. 인문환경[편집]

6.1. 민족[편집]

아랍인이 98%를 차지하고,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이 중 수니파가 56%, 시아파가 43%를 차지한다. 시아파의 대부분은 수니파와 비슷한 교리를 가진 자이드파(다섯 이맘파)이고, 열두 이맘파와 이스마일파(일곱 이맘파)도 예멘 내 소수파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수의 예멘계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6.2. 문화[편집]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활양식도 이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이슬람의 가르침보다 부족 내의 규칙을 우선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은 허리띠에 쟌비야라고 불리는 반달모양의 단검을 차고 있다. 이 단검은 소유자의 집안이나 부족, 빈부와 같은 특성을 드러낸다. 실용적인 면보다는 상징으로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날이 예리하지 않은 것도 많아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도 많이 보이지만, 그 경우에도 많은 남성이 자신의 집에 쟌비야를 갖고 있다. 여성은 종교적인 관습에 따라서 머리와 얼굴을 가리기 위한 스카프와 몸을 가리는 천을 착용하고 있으나, 이것은 개인과 그 가족의 신앙의 깊이에 의해서 판단되므로, 신앙이 깊어지면 그만큼 피부를 숨기는 면적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여성의 이슬람 복장 착용 정도는 이슬람 부흥 등의 사회 경향도 많이 받지만, 일반적으로 예멘의 여성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와 비교하면 착용 비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주로 도시 지역에서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 금지된 술 대신, 카트라고 불리는 마약성 작물의 잎을 씹는 관습이 있다. 카트는 예멘인의 사교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거리나 가정집에서 여러 명이 모여 카트를 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6.3. 종교[편집]

예멘의 종교는 주로 수니파와 시아파 두 이슬람교 종파로 이뤄졌다. 무슬림 인구의 65%는 수니파이고, 30% 가량은 시아파이다. 수니파의 주 종파는 샤피이파이지만 한발파와 말리크파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다. 시아파는 소수이지만 상당한 열두 이맘파와 이스마일파들이 존재함에도 주 종파는 자이드파이다 (예멘의 시아파 참조). 수니파 계열은 대부분 남부와 남동쪽에 있다. 자디스 계열은 북쪽과 북서쪽, 자프리파와 이스마일파는 거의 사나와 마리브에 위치했다. 큰 도시들에서는 종파들이 합해져 살고 있다.

예멘 인구의 1% 가량이 안되는 자들은 비무슬림들로, 힌두교, 기독교, 유대교, 무신론자들이다. 또한 3,000명 가량의 기독교도, 400명의 유대교도, 소수의 힌두교도들이 존재한다. 예멘의 헌법과 법률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다소 억제한다.

7. 경제[편집]

이웃 아랍 국가들에 비해 석유나 천연가스의 개발이 늦어, 아랍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농어업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기후 악화와 낙후된 설비 등으로 식량을 자급할 정도는 되지 못하며, 예멘인들의 국민적 기호품이자 마약성 작물인 까트(Qat) 재배가 지나칠 정도로 널리 확산되어 있어 적지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석유 등의 에너지자원은 198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공업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된 아덴을 중심으로 정유, 석유화학, 제염(製鹽), 알루미늄 공예 등이 발전해 있다. 인근 아랍국가들과 서방세계로부터 상당히 많은 재정지원을 얻어 왔지만 경제 성장이 더디고, 실업률이 30% 이상이며 물가 상승률도 높다. 다만 석유의 수출이 늘어나며 무역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 전망은 어둡지 않은 편이다.

8. 스포츠[편집]

축구는 예멘에서 가장 있는 스포츠 종목이다.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와 AFC 주관 대회에 참가한다. 예멘은 많은 축구 클럽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팀들은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에 참가한다.

예멘의 산악들은 산악 바이킹, 암벽 등반, 트레킹, 하이킹, 스키, 산악 점핑 같은 야외 스포츠, 그리고 등산 같은 도전적인 스포츠들에 대한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해발 5,000m에 해당하는 사라와트 산맥과 자발 안 나비 슈아이브의 등산과 하이킹은 예멘과 국제 항공사들이 계절별로 운영한다.

예멘 해안 지역과 소코트라섬은 서핑, 보디보딩, 세일링, 수영, 스쿠버다이빙 같은 수중 스포츠 기회를 제공한다. 소코트라섬은 전세계에서 서핑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 중 한 곳이다.

9. 정치[편집]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 중 유일하게 공화제를 채택한 입헌국가이다. 현행 헌법은 1991년에 공포되어 1994년과 2001년에 개정된 것이다. 국가원수는 대통령으로,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임기는 7년으로, 3선이 금지되어 있다. 권한은 막강하고, 형식상으로도 사실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다. 부통령과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위원회의 구성원은 총리의 조언에 따라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자문위원회(111석)과 인민대표원(301석)으로 구성된다. 자문위원회 의원은 모두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인민 대표원의 의원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6년이다. 그러나 자문위원회에 입법권은 없으며,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조언기관에 불과하므로, 예멘 의회는 실질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민대표원의 사실상 단원제에 가깝다.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한다.

10.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예멘이 1990년 5월 22일을 기점으로 양국간의 합의 후 통일을 하였다.[2] 급조된 상태에서 이룬 강제 분단국가 종식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아직도 알 카에다와 사우디아라비아군, 후티 반군의 내전과 테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콜레라가 퍼지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