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ndesliga Ambassador | ||
이름 | 위르겐 클리스만 Jürgen Klinsmann | |
출생 | 1964년 7월 30일 (60세) | |
서독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현 괴핑겐군 괴핑겐 | ||
국적 | ||
신체 | 키 181cm / 체중 73kg | |
가족 | 데비 친 (아내) 조너선 (1997년생/아들) 라일라 (2001년생/딸) | |
경력 | 독일 축구 감독 (2004년~2006년) 바이에른 뮌헨 축구 감독 (2008년~2009년) 토론토 FC 축구 감독 (2010년) 미국 축구 감독 (2011년~2016년) 헤르타 BSC 축구 감독 (2019년~2010년) 대한민국 축구 감독 (2023년 3월 9일~2024년 2월 16일)[1] |
1. 개요[편집]
위르겐 클린스만은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었다.
2. 상세[편집]
독일과 미국 이중 국적 보유자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선수 시절, 클린스만은 다수의 유럽 명문 클럽을 거쳤고, 서독의 1990년 FIFA 월드컵 우승 주역이었으며, 독일의 UEFA 유로 1996 우승 주역이었다. 그는 서독 / 독일의 1990년대 가장 강력한 스트라이커들 중 한 명으로, 클린스만은 UEFA 유로 1988부터 1998년 FIFA 월드컵까지 그가 참가한 6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득점을 올렸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 당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6년 7월 12일, 그는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았고, 그의 후임으로 수석코치였던 요아힘 뢰프가 되었다. 2008년 7월, 그는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역임하기 시작한 오트마어 히츠펠트의 바통을 이어받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 되었다. 2009년 4월 27일, 클린스만은 성적 부진으로 조기 해임되었다. 그는 경질 직전의 7경기 중 5경기에서 승리하였고, 선두 볼프스부르크와는 승점 차이가 3점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과감한 개혁은 바이에른 보드진들과의 의견에 마찰을 빚었고, 결국 클린스만이 바이에른을 떠나도록 하였다.
2011년 7월 29일, 그는 미국 축구 협회와의 여러 차례 협상 끝에, 밥 브래들리 감독의 뒤를 이어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2013년, 그는 미국 감독으로 CONCACAF 골드컵 우승을 거두었다. 축구 외적으로 그는 1982년에 제빵사 견습직을 수행하였고, 4개국에서 아동 자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헬리콥터 운전 면허를 소유하고 있다.
선수 시절, 클린스만은 다수의 유럽 명문 클럽을 거쳤고, 서독의 1990년 FIFA 월드컵 우승 주역이었으며, 독일의 UEFA 유로 1996 우승 주역이었다. 그는 서독 / 독일의 1990년대 가장 강력한 스트라이커들 중 한 명으로, 클린스만은 UEFA 유로 1988부터 1998년 FIFA 월드컵까지 그가 참가한 6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득점을 올렸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 당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6년 7월 12일, 그는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았고, 그의 후임으로 수석코치였던 요아힘 뢰프가 되었다. 2008년 7월, 그는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역임하기 시작한 오트마어 히츠펠트의 바통을 이어받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 되었다. 2009년 4월 27일, 클린스만은 성적 부진으로 조기 해임되었다. 그는 경질 직전의 7경기 중 5경기에서 승리하였고, 선두 볼프스부르크와는 승점 차이가 3점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과감한 개혁은 바이에른 보드진들과의 의견에 마찰을 빚었고, 결국 클린스만이 바이에른을 떠나도록 하였다.
2011년 7월 29일, 그는 미국 축구 협회와의 여러 차례 협상 끝에, 밥 브래들리 감독의 뒤를 이어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2013년, 그는 미국 감독으로 CONCACAF 골드컵 우승을 거두었다. 축구 외적으로 그는 1982년에 제빵사 견습직을 수행하였고, 4개국에서 아동 자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헬리콥터 운전 면허를 소유하고 있다.
3. 경력[편집]
3.1. 국가대표팀[편집]
1987년 서독 국가대표팀에 첫 소집되어 경기를 뛴 뒤 108번의 출전이라는 화려한 국가대표팀 경력을 쌓았고, 로타어 마테우스와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이어 가장 많은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장한 독일 선수가 되었다. 클린스만은 A매치 108경기에서 47번 득점하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가장 득점력이 좋은 선수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루디 푈러와 3위의 동률을 이루고, 미로슬라프 클로제 (70골) 와 게르트 뮐러 (68골) 에 이어 가장 많은 국가대항전 골을 득점한 독일 선수가 되었다.
클린스만은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여 축구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1988년, 1992년, 1996년 클린스만은 세 차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고 세 번째 대회에서는 우승을 거두었다. 클린스만은 세차례의 다른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이후 블라디미르 슈미체르, 티에리 앙리, 누누 고메스도 이 업적을 달성하였다.
그는 1990년 FIFA 월드컵의 서독 우승 주역들 중 하나였으며 (이 대회에서 3골 득점), 1994년 FIFA 월드컵 (5골 득점), 1998년 FIFA 월드컵 (3골 득점) 에도 참가하였다. 그는 월드컵 3회 연속 3골이상을 득점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고, 이 업적은 호나우두와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달성하였다. 그는 FIFA 월드컵에서 역대 득점 6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14골을 득점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게르트 뮐러에 이어 가장 많은 월드컵 득점을 기록한 독일 선수이다.
1994년 FIFA 월드컵을 통해 독일과 첫 맞대결을 벌인 대한민국이 의외의 선전을 한 것에 대해, 그는 "만약 그때 5분만 더 있었다면 우리가 졌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클린스만은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여 축구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1988년, 1992년, 1996년 클린스만은 세 차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고 세 번째 대회에서는 우승을 거두었다. 클린스만은 세차례의 다른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이후 블라디미르 슈미체르, 티에리 앙리, 누누 고메스도 이 업적을 달성하였다.
그는 1990년 FIFA 월드컵의 서독 우승 주역들 중 하나였으며 (이 대회에서 3골 득점), 1994년 FIFA 월드컵 (5골 득점), 1998년 FIFA 월드컵 (3골 득점) 에도 참가하였다. 그는 월드컵 3회 연속 3골이상을 득점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고, 이 업적은 호나우두와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달성하였다. 그는 FIFA 월드컵에서 역대 득점 6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14골을 득점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게르트 뮐러에 이어 가장 많은 월드컵 득점을 기록한 독일 선수이다.
1994년 FIFA 월드컵을 통해 독일과 첫 맞대결을 벌인 대한민국이 의외의 선전을 한 것에 대해, 그는 "만약 그때 5분만 더 있었다면 우리가 졌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3.2. 클럽[편집]
위르겐 클린스만/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3.3. 감독[편집]
위르겐 클린스만/감독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4. 개인 수상 내역[편집]
- 발롱도르 : 2위 (1995)
- FIFA 올해의 선수 : 3위 (1995)
- 분데스리가 득점왕 : 1987-88
- UEFA컵 득점왕 : 1995-96
- FWA 올해의 선수 : 1994-95
- PFA 올해의 팀 : 1994-95
- UEFA 유로 대회 베스트 : 1996
- FIFA 월드컵 실버슈 : 1990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 1990
- ESM 올해의 팀 : 1994-95
- FIFA XI : 1996, 1999
- FIFA 100 : 2004
-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 1988, 1994
- 독일 올해의 골 : 1987
- 토트넘 올해의 선수 : 1994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 1987-88
- 키커 랑리스테 - WK 7회, IK 9회
5.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위르겐 클린스만/근무 태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6. 여담[편집]
- 클린스만 가는 슈투트가르트 보트낭 구에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고, 클린스만은 흔히 "보트낭 제빵사의 아들"로 불리기도 한다.
- 위르겐 클린스만 본인 또한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이다.
- 그는 미국인 배우 데비 친과 결혼한 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캘리포니아주의 헌팅턴비치에 거주하고 있다.
- 둘 사이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두 자녀의 이름은 각각 조너선(1997년 생, 아들)과 라일라(2001년 생, 딸)이며, 조너선은 현재 미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이다.
7. 본 문서 정보[편집]
[1] 원래 계약 기간은 2026 FIFA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2026년 7월 31일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