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2. 인사3. 예술4. 대중문화5. 의복6. 동물7. 음식8. 결혼
8.1. 가족 구조8.2. 결혼8.3. 결혼식
9. 축제10.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인도의 문화(印度의 文化)는 인도 아대륙의 전통문화에서 비롯한 사회 규범, 가치관, 종교적 믿음, 유물과 유적 등의 문화재, 사회적 관습 등과 인도 음악, 인도 영화, 인도 미술, 인도 무용, 인도 음식과 같은 오늘날 인도 사회 전반의 문화적 특징을 아우른다. 때로는 인도의 언어, 인도의 종교, 인도의 신화, 인도의 정치, 인도 사회와 같은 영역도 문화의 범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인도 문화는 역사적으로 남아시아의 인도 아대륙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 발원한 종교인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은 아시아의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이슬람의 전파와 무굴제국의 성립으로 인도 아대륙에서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융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2. 인사[편집]

인도의 인사는 합장을 하며 "나마스테"(데바나가리 नमस्ते)와 같은 인사말을 건낸다. 나마스는 경배하다 또는 절하다는 의미로 나마스테는 당신께 경배드린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인사는 신에 대한 경배인 푸자에서 파생하였다. 당신의 안에 있는 신성함에 경배한다는 의미이다.

힌디어 나마스테는 오리야어 나마스카라지 주하라, 콕보록어 쿨룸카, 마라티어 나마스카르, 칸나다어 나마스카라, 텔루구어와 말라얄람어의 나마스카람, 타밀어의 와나캄, 벵골어의 노모슈카르, 아삼어의 노모스카르, 우르두어의 아아다브, 그리고 펀자브어의 삿 슈리 아칼과 통하는 인사말이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같은 인사말을 한다. "나마스카르"는 네팔과 같은 나라의 힌두교도들도 사용한다.

합장하며 인사하는 인도의 전통적 예절은 불교와 같은 종교의 전파와 함께 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었다.

사업상 만남에서는 전통적인 합장보다 악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3. 예술[편집]

인도의 건축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타지마할 등이 있다. 타지마할과 같은 건물들은 무굴 제국의 양식과 남인도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인도 토착 건축양식과 해외에서 전래된 양식들이 아름답게 섞여 있다. 인도에서는 외적인 조형미 외에도 내적인 건축 방식 또한 대단히 중시하는데, 이 또한 지역마다 특색이 있어 모두 다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동아시아의 건축과도 유사성을 띠는데, 인도에서는 기하학과 도형학을 건축에 적용하여 우주의 원리를 건물 속에 녹여내고자 한 것이다. 주로 힌두교의 사원들도 인도의 건축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건물들인데, 주로 ‘바스투 푸루샤 만달라’라고 불리는 고대 힌두 예술 문헌들에서 본을 따 지은 것들이다. 인도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이기도 한 타지마할은 1631년과 1648년에 샤자한 황제가 자신의 아내를 기리기 위하여 지었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자 국제적으로 공인된 세계의 문화대작’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신인도-사라센 양식이 영국인들에 의하여 인기를 끌기도 하였으며, 이때 인도-이슬람 양식이 주 건축양식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인도의 초기 문학은 주로 기원전 1500년과 기원후 1200년 사이의 문학을 뜻하며, 주로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다. 산스크리트 문학의 대표적인 명작들에는 리그베다, 유명한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시와 희곡들이 현재까지 남겨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타밀계 문학들 중 상감 문학은 현재까지도 473명의 시인들이 지은 2,381개의 시들이 남겨졌는데, 이 것이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들이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인도의 문학은 카비르 다스, 툴시다스, 구루 나낙과 같은 명시인들이 연이어 나오며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생각과 표현의 방식이 극히 다양해졌으며, 이로 인하여 중세 인도 문학은 고전 인도 문학에 비하여 확연한 풍부성을 갖추고 있다. 19세기에는 인도의 작가들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였다. 20세기에는 벵갈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등장하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하였다.

4. 대중문화[편집]

인도의 음악은 지역마다 모두 특색이 다르고, 전통 음악과 현대적 음악이 뒤섞여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인도의 고전 음악은 주로 북부의 힌두 음악과 남부의 카르나타 음악이 있다. 인도의 춤 또한 다양한 민속 전통과 합쳐져 미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는데,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펀자브 지역에서는 반그라 춤, 아사 지역에서는 비후 춤, 자칸드, 오디샤와 서벵골 지역에서는 주마이르 춤과 차우 춤, 구자라트 지역에서는 가르바 춤과 단디야 춤, 라자스탄에서는 구마르 춤, 마하라슈트라에서는 라바니 춤이 유명하다. 한편 8개의 무용 형태들은 인도 국립 음악, 무용, 연극 학회에 의하여 공식 고전 무용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8개의 형태들에는 타밀 나두의 바라타나트얌, 우타르프라데시의 카타크, 케랄라의 카타칼리와 모히니야탐, 안드라프라데시의 쿠치푸디, 마니푸르의 마니푸리, 오디샤의 오디시, 아삼의 사트리야 등이 있다. 인도의 전통 연극은 음악과 춤, 대본이 화려하게 뒤섞여 있다. 종종 힌두교의 신화에 기본 각본을 덧입히는 형태가 가장 많으나, 중세의 로맨스나 사회정치적 사건들도 다루곤 한다. 인도의 유명 연극에는 구자라트의 바바이, 서벵골의 자트라, 북인도의 나우탄키와 라밀리아, 마하라슈트라의 타마샤, 안드라프라데시의 부라카타, 타밀 나두의 테루쿠투, 카르나타카의 야크샤가나 등이 있다. 인도는 국립연극학교를 따로 뉴델리에 세워 젊은 연극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문화부 산하에 둔 국립기관으로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하고 있다. 인도는 영화 산업으로도 대단히 유명하다. 볼리우드로 상징되는 인도의 영화계는 세계에서 가장 관객 수가 많은 시장이기도 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수입의 43%가 볼리우드, 즉 힌두계 영화들이며 그 다음이 남인도의 텔루구 영화와 타밀 영화가 36% 정도를 차지하며 뒤쫓고 있다.

1959년부터 인도에서 TV 전파가 시작되었으며, 국영방송으로 시작된 방송국들은 점차 민간 부문들이 활발히 참여하며 지난 20여년 동안 크게 발전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국가가 방송에 대한 독점을 종결하였고, 이때부터 대대적으로 시작된 위성방송들은 인도의 대중문화 형성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현재 텔레비전은 인도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미디어들 중 하나로, 2012년 기준으로 5억 5,400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신문, 라디오, 인터넷과 비교하여도 훨씬 더 많은 양의 소비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예술과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 예술에서 현대 예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독립 이래 연방 정부와 여러 주정부는 랄리트칼라 아카데미(국립 미술 아카데미)·상게트나타크 아카데미(음악·무용·드라마 아카데미)·사히티아 아카데미(국립 문학 아카데미) 등 여러 문화·예술 관련기관을 설립하여 예술·문화활동을 촉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도는 또한 영화 문화 산업이 매우 발달해있다.

5. 의복[편집]

인도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헐렁한 천 형태의 의복을 주로 입고 다녔다. 여성의 경우에는 사리를 주로 입고 다니는데, 사리는 거대한 천 하나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이가 6야드가 넘으며 몸 전체를 칭칭 싸매는 형태로 되어 있다. 사리는 허리부터 두르기 시작하여 한쪽 끝을 고정한 뒤, 하체 전체를 두른 이후에 어깨에 천 끝부분을 얹고 다니는 것이다. 현대의 사리는 머리까지도 덮을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어떨 때에는 마치 베일처럼 얼굴까지 가릴 수 있게 되어있기도 하다. 주로 인도식 페티코트와 함께 입으며, 흘러내리지 않도록 허리에 딱 붙는 띠를 맨다. 또한 인도식 블라우스와도 함께 입어지는데, 블라우스는 주로 상체를 가리며 사리의 어깨쪽 끝을 자연스럽게 덮어 사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지하는 기능을 함께 하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에도 사리와 비슷하나 길이가 더 짧은 도티라는 옷을 입는다. 하체를 가리는 용도이며, 사리와 비슷하게 허리에 감으며 신체에 둘러지는 천 형식을 하고 있다. 남인도 지방에서는 하체 전반에 모두 감기며, 끝부분은 허리춤에 끼워넣는다. 북인도에서는 각 다리에 한번씩 더 감아주고, 다리 사이로 끝부분을 넣어 고정시키기도 한다. 또다른 전통 의복에는 남성과 여성이 신체를 가리거나 추위를 막기 위하여 쓰는 차도르, 태양과 추위를 가리기 위해 입는 터번과 비슷한 파그리 등이 있다.

인도는 제1천년기 동안 전혀 바느질되지 않은 의복을 입고 다녔다. 쿠샨인들이 48년 즈음에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오자, 북인도에서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제도되고 바느질을 한 의복들이 엘리트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일반인들은 여전히 바느질을 하지 않은 의복들을 입었고, 델리 술탄조와 무굴 제국 시기에 이르러서야 바느질을 한 의복들이 대대적인 인기를 끌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중세와 근세 북인도에서 주로 입었던 것들에는 바지와 비슷한 샬와르와 피자마, 튜닉과 비슷한 쿠르타와 카미즈 등이 있었다. 남인도에서는 다만 바느질을 하지 않은 의복들이 여전히 사용되곤 했다.

지난 50년 동안, 인도의 의복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북인도 지방의 도심 지대에서는 사리가 더 이상 일상 의복이 아니며, 오직 공식적인 행사 등에서만 간간히 입는 옷이 되었다. 전통적인 샬와르나 카미즈 등은 주로 어린 여성들이 간혹 입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마저도 더 편한 청바지나 티 종류를 선호한다. 남성들이 주로 입었던 쿠르타도 현재 인기가 떨어지며 서양식 의복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특히 에어컨 등이 인도 전역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지며 화이트칼라 사무직들은 스포츠 자켓과 같은 편한 의상들을 훨씬 선호한다. 결혼식이나 공식 행사의 경우에는 중산층, 상위층 사람들은 주로 반드갈라(인도식 정장)이나 네루 자켓(네루 총리가 입어 유명해진 자켓) 등을 입고 참석한다. 한때 인도인들이 즐겨 입었으며 간디가 직접 물레를 돌려 만들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도티는 더 이상 도심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힌두교의 사제들만이 간간히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 동물[편집]

오늘날 힌두교는 인도혹소의 학대와 도살을 꺼린다. 그러나 힌두교가 처음부터 소를 존중한 것은 아니다. 베다 시기까지도 소는 제사의 희생물로 사용되었고 그 규모는 점점 커졌다. 그러나 우파니샤드 시기가 되면 인도는 농경 문화가 정착되고 소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그 결과 기존의 형식에 얽매인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브라만교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불교와 같은 새로운 종교는 소의 도축을 반대하였다. 석가모니가 말한 불살생(不殺生)은 특히 소를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후 힌두교 안에서도 특히 암소를 대지모신의 화신으로 여기는 관습이 생겨나면서 소에 대한 존중이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도 힌두교와 자이나교는 소의 도살과 쇠고기 섭취를 금기로 여긴다. 그러나, 축산업의 사정은 이런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소에 대한 타부가 없는 이슬람 신도들은 거리낌 없이 소를 도축하며 인도의 소 사육은 3억 마리 이상으로 2위인 브라질 보다 8천만 마리가 많은 압도적 세계 1위이다. 쇠고기 수출도 176만 톤에 달한다. 한편 인도들소는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도축 대상이 되고 힌두교도도 즐겨 먹는다. 사육 두수는 5천만 마리 이상으로 세계 제1위이다. 수출되는 인도들소의 고기양은 연간 208만2천톤에 달한다.

한편 이슬람은 교리상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인도의 소와 돼지에 대한 타부는 영국 식민지 시기 세포이 항쟁의 원인이 되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영국군 장교가 세포이들에게 소나 돼지의 기름이 발라져 있는 화약통을 입으로 뜯으라고 명령한 것이 종교적 계율을 강제로 어기게 했다는 불만으로 작용하였다.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가네샤는 코끼리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한 신이다. 지혜와 부, 상업을 관장한다는 믿음 때문에 널리 숭배된다.

7. 음식[편집]

인도의 요리는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특색을 가지고 있다. 워낙 영토가 넓기에 토양, 기후, 문화, 인종, 국가들도 모두 달랐고, 이에 따라 모두 다른 식문화들이 형성된 것이다. 주로 토착 향신료, 허브, 채소, 과일들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인도의 식문화는 특히 힌두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무굴 제국의 통치기로 인하여 이슬람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 또한 남서부 해안지역에서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19세기에는 영국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들에는 인도의 쌀밥과 비슷한 필라프, 치킨과 비슷한 비리야니, 빈달루 커리, 머튼 커리 등이 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래된 감자, 토마토, 땅콩, 캐슈넛, 파인애플, 구아바, 칠리 고추 등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모두 현재의 인도 음식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인도의 풍요로운 향신료는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정도였다.

인도의 곡식 재배는 특히 몬순 기간에 영향을 많이 받고, 강우량에 따라서 전국적으로도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관개 시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의 인도에서는 강우량에 의하여 곡물들이 확연히 자라는 지역들이 달랐는데, 물이 많이 필요한 쌀은 북동부와 서부 해안 지대의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재배되었으며, 기장처럼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데칸 고원이나 라자스탄 주 등에서 재배되었다.

인도인들은 주로 곡물을 빻아 반죽으로 만들어 구워 난을 만든 다음, 여러 향이 강한 반찬들과 곁들여 먹는다. 주로 렌틸콩 등을 재료로 사용하며, 마늘과 생강과 같은 향신료를 넣은 채소와 함께 먹는 것이다. 다만 그 외에도 고수, 쿠민, 강황, 계피, 카다몬 등의 향신료도 함께 사용한다. 먹을 때에는 ‘탈리’라고 불리는 식판 위에 음식들을 올려놓는데, 곡물류 음식을 중간에 놓으며 그 주위에 있는 작은 판들 위에 반찬들을 놓는다. 인도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여러 채식 음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에서 유래된, 모든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뜻의 아힘사 문화이기도 한데, 이 때문에 남인도, 구자라트, 북중부 인도에서는 거의 채식 위주의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육류를 대체적으로 기피하며, 이로 인하여 인도는 막대한 인구에도 불구하고 육류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중국의 경우에는 육류 섭취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인도는 그 검소한 식문화와 채식 위주의 식문화로 인하여 우유나 유제품을 통하여 동물성 단백질을 주로 섭취하고 있다.

인도는 특히 무굴 제국기에 큰 식문화 변동을 겪었다. 인도는 쌀의 재배가 이미 훨씬 전에 알려져는 있었으나, 무굴 제국기에 들어서야 필라프와 같은 주식으로 만들어지고 널리 퍼진 것이다. 또한 요구르트에 고기를 재우는 등 다양한 요리 기술들이 이때 보급되었다.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요구르트를 인도에서는 양파, 마늘, 아몬드, 향신료 등을 넣어 먹었다. 쌀은 무굴의 수도인 아그라에서까지 재배되었고, 이슬람 세계에서도 그 뛰어난 맛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고기에 소스를 치고, 냄비 뚜껑을 꽉 닫아 풍미를 더하며 느리게 요리하는 등의 문화도 전파되었다. 인도의 식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으로는 커리나 탄두리 치킨 등이 있다. 탄두리 치킨은 탄두르 오븐에서 굽는데, 펀자브나 델리 시골 지방에서 무슬림들이 빵을 굽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었다. 다만 탄두르 오븐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8. 결혼[편집]

8.1. 가족 구조[편집]

인도의 전통적 가족 형태는 일반적으로 확대가족이었다. 확대가족은 부모와 자녀뿐만 아니라 결혼한 손자와 그 자식까지 가족으로 살아가는 형태이다. 그 집안의 제일 웃어른인 남성이 이러한 확대가족의 가장 역할을 하는 가부장제이기도 하다. 가장은 가족의 다른 구성원이 따라야 할 규칙을 정하고 가족이 해야 할 의례와 행사, 가족에게 닥친 문제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며 나머지 구성원은 대개 가장의 결정에 따랐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취직 등을 이유로 가족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었고, 도시의 생활 양식은 함께 모여 살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생활 비용도 크기 때문에 핵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농촌 지역은 아직도 확대가족이 일반적이다.

1966년 오렌스타인과 마이클린의 인도의 인구와 가족 구성 연구 연구에 따르면 1911년에서 1951년까지 인도의 가족은 일반적으로 확대가족이었고 구성원의 수도 비슷하게 유지되었지만, 그 뒤로 도시화와 경제 발전이 시작되면서 보다 핵가족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1993년 신하는 《현대 인도 가족의 역동적 변화》에서 인도의 가족 형태가 현대에 들어 핵가족의 형태로 급격히 변화하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확대 가족이 유지되고 있다고 서술하였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양육 부담 때문에 보다 대가족 형태의 가족을 유지한다. 부모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가족 구성원의 누군가가 아이를 계속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52] 경제 성장과 함께 학교 교육이 확산되면서 인도의 전통적 확대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었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태도도 변화하였다.

8.2. 결혼[편집]

인도의 전통적인 결혼은 근대 이전 세계의 대부분에서 그러하였던 것과 같이 중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계적으로 자유 연애는 19세기에 들어서야 생겨난 개념이다. 인도의 경우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결혼이 중매로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결혼 연령이 낮은 조혼도 성행하였다. 2011년 인도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21세이며, 2009년 결혼한 여성의 약 7%는 18세 이하였다.

대부분의 결혼에서 신부 측이 신랑에게 지참금을 제공한다. 중매로 이루어지는 결혼에서 지참금은 부부간 갈등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신부를 살해하거나 신랑의 폭력이나 시댁의 학대를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인도의 전통 사회는 여성의 유산 상속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참금과 혼수는 일종의 사전 상속으로 여겨졌다. 신부의 집은 돈뿐만 아니라 각종 귀중품도 혼수로 장만하여야 한다. 1956년 인도는 별도의 유언이 없는 상속에서 남녀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법을 개정하였지만 실재로는 유언장을 통해 상속자를 지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차별이 여전하다. 2004년 기준 약 20 %가 법적 유언장을 작성하여 유산을 상속하고 있다.

이슬람 신도의 경우 여성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없었지만, 2006년 여성의 이혼 청구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관습이 크게 작용하는 인도 사회에서는 이혼율이 1%에 불과하다. 한편 이슬람 신도의 경우 예전에는 관습적으로 남성이 이혼이라는 말을 세 번 외치면 여성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혼이 성립하였다. 이런 관습은 2019년 위법이 되었다.

2005년 인도의 41,554 가구를 조사한 연구는 인도의 결혼 풍습 역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과 같이 아무런 정보없이 중매로 결혼하는 방식은 점점 줄어들고 중매를 통하긴 하지만 결혼 전에 미리 당사자들이 정보를 주고 받고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변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연애 결혼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8.3. 결혼식[편집]

인도의 결혼식은 어떤 종교를 따르는 가에 따라 다양하다. 미국은 매년 약 천만 건의 결혼식을 거행하며 힌두교의 결혼식은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치르는 의식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큰 행사이다. 전형적인 힌두교 가족은 결혼식 준비를 위해 상당한 재산을 사용한다. 지역과 계층마다 의식은 다양하지만, 아버지가 딸을 사위에게 건내는 의식, 불 앞에서 결혼을 서약하는 것, 신랑이 신부의 목에 세 개의 매듭을 묶어 결혼을 선포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힌두교의 결혼식은 불의 신 아그니 앞에서 서로를 배필로 맞았던 비슈누와 락슈미의 결혼을 재현하는 의미를 갖는다.

시크교도는 경전을 둘러 보는 의식을 치르고 이슬람은 중동의 이슬람식 결혼과 유사한 결혼을 치른다. 최근 고아와 같은 곳에서는 서양식 결혼도 많아졌다.

9. 축제[편집]

인도의 국경일은 독립기념일, 공화국의 날,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일과 같은 것이 있다. 불가촉천민 출신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의 탄생일인 4월 14일은 시민 사회에서 기념식을 진행해 오다가 2015년 인도의 공식 국경일이 되었다.

인도의 문화와 종교가 다양한 만큼 축제 역시 다양하여 지역과 종교에 따라 다양한 축제가 있다. 힌두교 축제 가운데 봄맞이 축제인 홀리, 빛의 축제인 디왈리, 가을의 수확제 등이 성대하게 열린다. 디왈리는 힌두교도 뿐만 아니라 불교와 자이나교도들도 함께 즐기는 축제이고, 부처님 오신 날인 웨삭 역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이다. 힌두교만의 축제로는 크리슈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슈나 잔마슈타미가 있다. 인도에서 공휴일로 지정된 이슬람 축일로는 이드 알피트르, 이드 알아드하, 마울리드, 무하람 추모일, 샤브 에 바라트가 있다. 인도에서는 소수 종교인 인도의 기독교는 크리스마스와 성금요일 같은 기독교의 전통적 축일을 기념한다.

축제의 참여에도 인도의 카스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불가촉천민이 축제에 참석하는 것은 타부로 여겨지며 종종 폭력의 대상이 된다. 달라트는 1935년부터 자신들 만의 축제를 따로 열고 있다.

10.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