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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 비판을 작성해놓은 문서이다.
2. 인물평[편집]
그는 타고난 유들유들함과 비위로 위관급 장교 시절부터 철저한 '정치군인'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이 있다. 이후 청와대 경호실 근무 경험으로 '정치군인'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자질을 다 갖추게 됐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정승화는 전두환이 정치적 야망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194] 전두환은 이후 대통령 박정희와의 잦은 교제를 통해 권모술수의 능력을 길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붙임성에 대해서는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희호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숫기와 입담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전두환을 가리켜 '전두환 역도 또한 미국이 오래전부터 손때묻혀 키운 친미분자'라고 평가했다. 전두환 당시 야당인사이자 14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그가 "뻔뻔하고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은 전두환에게 국정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고,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 석고대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3. 긍정적 평가[편집]
- 1979년 박정희 피살 후 경제회생에 노력을 기울여 일명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헌정 사상 최고의 호황을 맞이했다.
- 1986년 아시안 게임(1981년 11월 26일), 1988년 하계 올림픽(1981년 9월 30일)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점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2009년 9월 납북자가족모임과 라이트코리아 등 보수단체회원들은 서울 세종로 통일부 앞에서 시위를 하며 임진강 참사 사고 이후 전두환이 북한의 수공계획을 미리 간파하고 평화의 댐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자신의 임기기간 동안 경제기획원이 관치를 펼쳐, 전임 박정희 정권에 비해 임기동안 평균 물가상승률을 6.1%으로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과외 과열로 인해 계층간 위화감이 심각해진다고 보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7·30교육개혁조치에 따라 대학졸업정원제와 함께 교육정상화와 과열과외해소라는 이유로 과외금지조치를 실시했다. 학교밖에서의 과외수업은 일체 금지하고 미인가된 교습자와 과외를 한 학부모는 명단을 공개하여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직장인인 경우에는 면직처분을 내렸으며, 과외를 받은 학생은 적발된 경우 입시자격을 박탈하고 형사입건하였다.
- 전두환은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야구(1982년 창설)와 축구(1983년 창설)의 프로리그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1988년 하계 올림픽으로만 해당하는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