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2. 상세3.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1970년대 중국은 외교 일환으로 미국과 일본에 판다를 빌려주어 최초로 서구와 문화 교류를 맺었다. 이것을 일컬어 "판다 외교"라고 한다.

2. 상세[편집]

그러나 중국은 1984년부터 다른 국가에 대여 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1년에 미화로 백만 달러를 받는다. 게다가 타국에서 태어나는 새끼 판다도 중국 정부 소유며, 본격적인 번식 가능 연령인 만 4세 이전에 반환해야 한다. 푸바오도 이 연령대에 맞춰서 청두시에 있는 기지로 반환했다. 때문에, 판다는 더 이상 선물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2005년 5월, 중국은 한 쌍의 판다를 중화민국에 요청해서, 양안 관계가 양국 관계처럼 보여 화제가 되었다. 2006년, 중국 공산당 측이 이 판다 한 쌍의 이름을 공모하여, 마침내, 퇀퇀과 위안위안으로 결정했다. 이 이름은 团圆→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다에서 따왔다. 처음에는 천수이볜이 거절했지만, 2008년에 마잉주가 총통에 당선되면서 중국 공산당 제안을 수락했다. 이윽고, 그해 12월, 한 쌍의 판다가 도착했다.

3.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