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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역사4. 자연환경
4.1. 지리4.2. 기후
5. 스포츠6.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카보베르데 공화국, 줄여서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있는 국가이다.

2. 어원[편집]

카보베르데는 세네갈 연안에 위치한 베르데곶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명명된 이름이다. 1444년에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이 베르데곶 근처에 위치한 이들 섬을 발견한 다음에 포르투갈어로 "녹색의 곶"이라는 뜻을 가진 '카보베르데'로 명명했다. 2013년 10월 24일에는 카보베르데 정부가 각국 정부와 여러 국제 기구에 카보베르데라는 포르투갈어 국명만을 사용하고 다른 언어로 의역한 형태의 국명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3. 역사[편집]

유럽 사람들이 방문하기 전까지 이곳은 무인 지대였고 1456년경에 제노바 공화국과 포르투갈 왕국의 항해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무인도이기는 했지만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이 섬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1462년에는 열대 지방으로는 드물게 산티아구섬에서 포르투갈인의 이주가 시작되어,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 나중에 시다드벨랴(Cidade Velha)로 이름을 바꿈)라는 정착촌이 건설되었다.

16세기 경에는 노예 무역이 번성하였으나, 때때로 해적의 습격을 받기도 하였다. 노예 무역의 결과,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카보베르데로 끌려왔으며, 이들이 오늘날 카보베르데인의 조상이다. 노예 무역의 쇠퇴 이후에는 대서양 항로의 중간 거점항, 보급항으로서 번성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 열풍이 거세지면서 기니-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한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 이후에는 이들의 독립이 가시화되었다. 1975년 7월 5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4. 자연환경[편집]

4.1. 지리[편집]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위치한 나라로서 10개의 큰 섬과 약 8개의 작은 섬으로 군도를 이루고 있다. 크게 북쪽의 바를라벤투 제도와 남쪽의 소타벤투 제도로 나뉜다. 수도 프라이아는 소타벤투 제도의 산티아구섬에 위치한다.

4.2. 기후[편집]

1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카보베르데는 바를라벤투 제도와 소타벤투 제도로 불리는 두 군도로 나뉜다. 이 가운데 5개의 섬은 무인도이다. 몇 개의 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화산활동과 침식에 의하여 생성된 섬으로 암석산지이고, 포구섬의 포구산은 해발고도 2,829m로 최고봉을 이룬다. 대부분의 섬들은 대륙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와 고온건조한 기후이며 5∼10월의 우기를 제외하면 비가 적다. 연평균 강수량은 해안에서 200mm 내외, 산지에서 1,000mm 정도이다. 연평균 기온은 24℃인데다가 화산재가 표층을 덮고 있기 때문에 토양도 비옥하지 않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5. 스포츠[편집]

스포츠는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축구가 제일 인기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나니가 여기 태생으로 또한 스웨덴의 레전드 축구 선수 헨리크 라르손의 아버지 또한 여기 출신이며, 파트리크 비에이라도 이쪽 혈통이다. 국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카보베르데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여기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증조모 이사벨 다비에다드의 출신국이기도 하다.

국내 축구리그는 화산 군도가 모여있는 특성상 통합된 전국구 1부리그가 불가능한 구조로, 주요 섬들을 단위로 디비전 리그가 존재하며 이 디비전 리그에서 우승한 8개 팀이 캄페오나투 캐버디아노 데 풋볼라는 토너먼트 챔피언십 대회에 참여한다.

2025년엔 개국 이래 처음으로 2026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였다.

농구는 2023 피바 월드컵에 첫 출전해 베네수엘라를 잡고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선전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에서 센터로 활약 중인 에디 타바레스 선수가 최고의 스타이다.

대한민국과는 1988년에 수교하였고, 북한과는 1975년 수교하였다.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당시에는 IOC 정회원 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후에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 복싱 51kg-의 다비드 데 피나가 동메달 시상대에 올라 카보베르데의 올림픽 사상 첫 메달 주인공이 되었다.

6.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