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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원어명 | Türkiye | ||
건국일 | 1923년 10월 29일 | ||
국기 | 월성기 | ||
수도 | 앙카라 | ||
위치 | 유럽의 동남쪽, 아시아의 남서쪽, 흑해 연안 | ||
면적 | 783,562 | ||
상징 | |||
국가 | 독립행진곡 | ||
국화 | 튤립 | ||
인문환경 | |||
인구 | 8,518만 6,199명 | ||
평균 수명 | 75.70세 | ||
언어 | 튀르키예어 | ||
정치 | |||
국가 원수 | 대통령 | ||
대통령 | 레젭 타입 에르도안 | ||
부통령 | 푸앗 옥타이 | ||
외교장관 | 메블륫 차부쉬오울루 | ||
여당 | 정의개발당 | ||
경제 | |||
경제 체제 | 공화제 | ||
통화 | 튀르키예 리라(TL) | ||
1인당 GDP | 8,957달러 | ||
수출규모 | 1,744억 달러 | ||
수입규모 | 2,246억 달러 | ||
1인당 구매력평가기준 | 28,264 달러 | ||
기타 정보 | |||
국제 전화 | +90 | ||
시간대 | EET (UTC+2) Summer: EEST (UTC+3) |
1. 개요[편집]
아시아 서쪽 끝 동지중해에 면해 있는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와 유럽 발칸반도 남단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국가이다. 1923년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 600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건설하면서 근대국가가 되었다.
2. 인문 환경[편집]
2.1. 언어[편집]
공용어는 튀르키예어이다. 시리아 국경 부근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하며 남동부에서는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2.2. 인종[편집]
튀르키예계 86%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9%는 쿠르드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 아랍계, 그리스계, 소수의 유대인들도 있다.
2.3. 종교[편집]
튀르키예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사회적으로 종교적 규율을 엄격히 적용하지는 않지만, 이슬람교의 전통과 관행은 매우 중시한다. 튀르키예인 대부분이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으며, 튀르키예에 등록된 모스크(이슬람교의 사원)만도 75,000여 곳에 달한다. 인구의 약 65%가 종교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슬람교 신자 이외에는 주로 그리스 정교, 유대교 등 기독교를 믿는다.
3. 자연환경[편집]
3.1. 기후[편집]
내륙지방은 대륙성 기후이며, 해안지방은 해양성 기후
- 지중해 및 에게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여름은 대체로 고온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고 다습함.(연평균 기온 18℃~20℃)
- 흑해연안은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서 연중 고른 분포의 강우량(연평균 2,500mm)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온의 월교차가 거의 없음.(연평균 22℃~24℃)
- 북동부 및 아나톨리아 고원지대는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어서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림. 1~2월이 가장 추우며, 겨울철 평균기온은 0℃~10℃임.
- 봄, 가을은 짧으며, 4월, 11월, 12월이 우기에 해당함.
- 평균 고도 : 902m
- 평균기온 : 11.8℃(최저: -24.9℃, 최고: 40.0℃)
- 평균습도 : 60%
- 연평균 강우량 : 367mm
- 특기사항 : 건조하고 일교차 큼.
4. 역사[편집]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11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족이 이주해오기 전부터 많은 나라와 문화교류가 이뤄졌으며, 이로 인한 흥망성쇠도 교차했다. 특히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문명 융화의 용광로 역할을 5000년 이상 해 왔다.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1299년 건국돼 1922년 멸망할 때까지 600년 이상 서아시아, 발칸, 북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다 19세기 들어서 서유럽의 교육과 기술, 제도를 도입한 탄지마트 개혁정치가 시도되나, 결국 경제가 유럽에 점령당하면서 그리스와 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할만큼 쇠약해졌다. 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에 가담했다가 패배한 오스만제국이 연합국에 의해 분할 위기를 맞자, 당시 케말 무스타파는 1922년 술탄칼리프 제도를 폐지하고 튀르키예공화국을 세웠다. 케말 무스타파는 2차대전 때에는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반공·친서방 노선을 취했다. 이후 1960년과 1980년 군부 쿠데타 이후인 1989년 30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했으며 현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제12대 대통령으로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튀르키예는 현재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 구성이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로 양분돼 있는 키프로스는 1974년 친그리스계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한 뒤 튀르키예의 침공으로 분단돼 남쪽은 그리스계, 북쪽은 튀르키예계 키프로스 공화국이 각각 들어섰다. 튀르키예는 1970년경부터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으나, 키프로스 문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EU 회원국 그리스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 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우리나라와 우방관계를 맺고 있으며 1957년 3월 수교한 바 있다.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1299년 건국돼 1922년 멸망할 때까지 600년 이상 서아시아, 발칸, 북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다 19세기 들어서 서유럽의 교육과 기술, 제도를 도입한 탄지마트 개혁정치가 시도되나, 결국 경제가 유럽에 점령당하면서 그리스와 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할만큼 쇠약해졌다. 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에 가담했다가 패배한 오스만제국이 연합국에 의해 분할 위기를 맞자, 당시 케말 무스타파는 1922년 술탄칼리프 제도를 폐지하고 튀르키예공화국을 세웠다. 케말 무스타파는 2차대전 때에는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반공·친서방 노선을 취했다. 이후 1960년과 1980년 군부 쿠데타 이후인 1989년 30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했으며 현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제12대 대통령으로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튀르키예는 현재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 구성이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로 양분돼 있는 키프로스는 1974년 친그리스계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한 뒤 튀르키예의 침공으로 분단돼 남쪽은 그리스계, 북쪽은 튀르키예계 키프로스 공화국이 각각 들어섰다. 튀르키예는 1970년경부터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으나, 키프로스 문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EU 회원국 그리스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 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우리나라와 우방관계를 맺고 있으며 1957년 3월 수교한 바 있다.
5. 정치[편집]
5.1. 정치 체제[편집]
튀르키예는 총리 중심의 내각책임제와 내각을 견제할 수 있는 실권적 대통령제를 병행하고 있었으나, 2018.7월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했다.
600명으로 구성되는 국회는 단원제이며, 국회의원 임기는 5년.
각료회의는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각 부처 장관(Minister)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7년 헌법개정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출방식이 도입되었으며, 2017.4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헌법 개정 이후 첫 대통령 선거가 2018.6월에 실시됐다.
600명으로 구성되는 국회는 단원제이며, 국회의원 임기는 5년.
각료회의는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각 부처 장관(Minister)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7년 헌법개정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출방식이 도입되었으며, 2017.4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헌법 개정 이후 첫 대통령 선거가 2018.6월에 실시됐다.
5.2. 내각[편집]
내각은 부통령과 각급 각료로 구성되며 부통령과 각료는 대통령이 임명함. 국회의원 가운데서 각료로 임명될 경우 국회의원직을 포기해야 한다.
내각은 국가의 일반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주로 국가의 제반 문제들을 검토하여 시행령을 공포하며, 국회는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이 있다.
내각은 국가의 일반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주로 국가의 제반 문제들을 검토하여 시행령을 공포하며, 국회는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이 있다.
튀르키예 정치 내각[4] | |
직책 | 성명 |
부총리 | 푸앗 옥타이 |
법무부 장관 | 베키르 보즈다이 |
재무부 장관 | 누레딘 네바티 |
내무부 장관 | 슐리만 소일루 |
외교부 장관 | 메블륫 차부쉬오울루 |
무역부 장관 | 메흐메트 무시 |
가족사회복지부 장관 | 데리아 얀크 |
노동사회보장부 장관 | 베다트 빌긴 |
무역부 장관 | 메흐메트 무시 |
국가교육부 장관 | 마무트 외저 |
국방부 장관 | 훌루시 아카르 |
보건부 장관 | 파레틴 코카 |
문화관광부 장관 | 메흐메트 에르소이 |
환경도시계획 및 기후변화부 | 무라트 쿠롬 |
에너지천연자원부 장관 | 파티아 회메즈 |
과학산업기술부 장관 | 무스타파 바랭크 |
청소년체육부 장관 | 메흐메트 카사포엘루 |
농업삼림부 장관 | 베키르 파크데미를리 |
교통인프라부 장관 | 아딜 카라스마일로울루 |
5.3. 정당[편집]
6. 공휴일[편집]
국정 공휴일과 종교 공휴일이 있으며, 국민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나 정교 분리로 금요일 근무, 토 · 일요일 휴무
* 국정 공휴일
* 국정 공휴일
- 신정(1. 1.)
- 국가주권일 및 어린이날(4. 23.)
- 노동절(5. 1.)
- 청소년 스포츠의 날(5. 19.)
- 민주주의 국민통합의 날(7. 15.)
- 승전기념일(8. 30.)
- 공화국 선포기념일(10. 29.)
7. 국명 변경[편집]
유엔이 2022년 6월 1일 국호를 터키(Turkey)에서 튀르키예(Türkiye)로 변경해 달라는 터키 정부의 요청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UN의 모든 공식 문서는 해당 국가를 Türkiye로 명시할 예정이다. 튀르키예는 튀르키예어로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으로, 튀르키예인들이 자국어로 자국을 부르는 명칭이자 튀르키예어로 표기한 정식 국호 역시 '튀르키예 공화국'이다.
튀르키예로의 국명 변경 추진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식 표현인 '터키'가 국제무대에서 혼동을 가져오고,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반영한 데 따른 것이다. 즉, 영어권에서 터키(Turkey)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칠면조를 가리키는 데다 '겁쟁이, 패배자'등을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고 있어 '튀르크(용감한)'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 12월 터키의 국명을 튀르키예로 바꾸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 공식적으로 국명 변경 캠페인의 발족을 알린 바 있다. 이후 약 6개월간 대내외적인 홍보를 거친 후 UN에 2022년 6월 1일 국가명을 새로 등록해달라는 공식 서한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로의 국명 변경 추진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식 표현인 '터키'가 국제무대에서 혼동을 가져오고,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반영한 데 따른 것이다. 즉, 영어권에서 터키(Turkey)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칠면조를 가리키는 데다 '겁쟁이, 패배자'등을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고 있어 '튀르크(용감한)'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 12월 터키의 국명을 튀르키예로 바꾸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 공식적으로 국명 변경 캠페인의 발족을 알린 바 있다. 이후 약 6개월간 대내외적인 홍보를 거친 후 UN에 2022년 6월 1일 국가명을 새로 등록해달라는 공식 서한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8. 튀르키예-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아 형제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튀르키예인의 조상은 훈족과 튀르크족으로, 한자식 이름은 흉노와 돌궐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웃에 살던 민족으로 우리나라와 동맹을 맺어 중국의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에 대항하기도 했으나 결국 싸움에서 밀리며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튀르키예인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다시 우리나라와의 인연이 이어져 연합군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주었고, 이 전쟁에서 많은 튀르키예 군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튀르키예인들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매우 친하게 생각하여 칸카르데쉬, 즉 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른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다시 우리나라와의 인연이 이어져 연합군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주었고, 이 전쟁에서 많은 튀르키예 군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튀르키예인들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매우 친하게 생각하여 칸카르데쉬, 즉 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