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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공화국 República Portuguesa | Portuguese Republicl | ||
국기 | 국장 | |
국가 정보 | ||
국명 | 포르투갈 | |
수도 | 리스본 | |
독립 | 164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
국기 | ||
언어 | 포르투갈어 | |
면적 | 922만 3천㏊ (111위) [2023년기준] | |
인구 | 1,024만 7,605명 (92위) [2023년기준] | |
종교 | 기독교 83.02% 무종교 14.09% 불교 0.19% 이슬람교 0.42% 힌두교 0.22% 유대교 0.03% 기타 0.28% | |
상징 | ||
국가 | 포르투갈의 노래 | |
국화 | 라벤더 | |
국조 | 바르셀루스의 닭(Galo de Barcelos) | |
정치 | ||
정치체제 | 단일국가, 단원제, 공화제, 이원집정부제 | |
대통령 |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우사 | |
총리 | 안토니우 코스타 | |
외교 | ||
OECD | 1948년 창립국 | |
OSCE | 1973년 | |
포르투갈총영사관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로16번길 32 (광안동) | |
국가 코드 | ||
620, PRT, PT | ||
국제 전화 | ||
+351 | ||
여행 경보 | ||
전 지역 여행유의 |
1. 개요[편집]
포르투갈 공화국(포르투갈어: República Portuguesa 헤푸블리카 포르투게자, 영어: Portuguese Republic), 약칭 포르투갈(포르투갈어: Portugal, IPA: [puɾtuˈɣaɫ], 문화어: 뽀르뚜갈)은 유럽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이베리아반도의 서부와 북대서양 상의 군도들을 그 영토로 한다. 국토의 총 면적은 92,090 km2로, 동쪽과 북쪽은 스페인,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을 맞댄 대륙부와 대서양 상의 두 자치지역인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름은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라틴어 이름 "포르투스 칼레"(라틴어: Portus Cale)에서 유래하였다. 포르투갈은 온난한 항구라는 뜻이다.
2. 상세[편집]
오늘날 포르투갈의 국경 안에 포함된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계속 사람이 거주해 왔다. 갈라이키족과 루시타니족 같은 켈트인들은 후에 로마 공화정에 통합되었고, 이후 수에비족과 서고트족 같은 게르만족이 정착하였다. 8세기부터는 무어인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기독교도의 헤콩키스타 도중에 초기엔 갈리시아 왕국, 후엔 레온 왕국의 일부로 포르투칼레 백국(포르투갈어: Condado de Portucale 혹은 Condado Portucalense)이 성립된다. 1139년 포르투갈 왕국의 성립과 1143년 독립 승인, 1249년 국경의 확립을 통해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국가로 거듭난다.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대항해 시대 탐험의 결과로, 포르투갈은 서양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경제,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포르투갈 제국은 사상 첫 세계 제국이었고, 1415년 세우타 정복부터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까지 거의 600년 동안 이어진, 가장 오래 지속된 식민지 제국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국제적 중요성은 19세기, 특히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독립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공화국이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왕가는 추방되어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권위주의 정권인 이스타두 노부가 형성되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대의 민주주의가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이 종식되어 마지막 해외 주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등이 독립하게 된다.
오늘날 포르투갈은 비교적 HDI와 1인당 GDP가 낮지만 선진국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인간 개발 지수 역시 "매우 높음" 수준에 속한다. 삶의 질은 19위로, 세계적으로도 최상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가장 세계화되고 평화로운 나라에 속한다. 포르투갈은 국제 연합 (UN), 유로존, 솅겐 조약을 포함한 유럽 연합 (EU),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경제 협력 개발 기구 (OECD),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CPLP)의 창립 회원국이며,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대항해 시대 탐험의 결과로, 포르투갈은 서양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경제,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포르투갈 제국은 사상 첫 세계 제국이었고, 1415년 세우타 정복부터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까지 거의 600년 동안 이어진, 가장 오래 지속된 식민지 제국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국제적 중요성은 19세기, 특히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독립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공화국이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왕가는 추방되어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권위주의 정권인 이스타두 노부가 형성되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대의 민주주의가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이 종식되어 마지막 해외 주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등이 독립하게 된다.
오늘날 포르투갈은 비교적 HDI와 1인당 GDP가 낮지만 선진국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인간 개발 지수 역시 "매우 높음" 수준에 속한다. 삶의 질은 19위로, 세계적으로도 최상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가장 세계화되고 평화로운 나라에 속한다. 포르투갈은 국제 연합 (UN), 유로존, 솅겐 조약을 포함한 유럽 연합 (EU),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경제 협력 개발 기구 (OECD),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CPLP)의 창립 회원국이며,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3. 국명[편집]
한국한자음으로는 포도아(葡萄牙)로도 불린다.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서기 930년과 950년 사이에 등장하였고, 1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더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1세가 1067년 아들 가르시아 2세에게 영토를 주면서 공식적으로 포르투갈이라고 명명하였다. 수에비족의 통치하에 있던 5세기에 이미 히다티우스(라틴어: Hydatius)는 수에비족의 왕 레키아르(라틴어: Rechiar)가 도피한 장소를 "포르투칼레"(라틴어: Portucale)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서기 930년과 950년 사이에 등장하였고, 1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더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1세가 1067년 아들 가르시아 2세에게 영토를 주면서 공식적으로 포르투갈이라고 명명하였다. 수에비족의 통치하에 있던 5세기에 이미 히다티우스(라틴어: Hydatius)는 수에비족의 왕 레키아르(라틴어: Rechiar)가 도피한 장소를 "포르투칼레"(라틴어: Portucale)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4. 역사[편집]
포르투갈의 역사는 기독교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인 헤콩키스타 기간에 포르투갈 백작령이 세워지면서 시작한다. 백작령은 갈리시아 왕국의 일부였다가 나중에 레온 왕국으로 편입된다. 1139년에 포르투갈 왕국이 세워졌고, 포르투갈레 백작인 엔히크는 자신을 스스로 공작으로 격상하고,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1143년에 교황과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의 왕인 알폰소 7세와 아라곤 왕국의 왕인 페트로넬라가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하였다. 1249년에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를 점령하면서 헤콩키스타가 끝나고 국경이 안정되었다.
15,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둔 세계적인 경제, 정치, 군사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578년, 세바스티앙 1세가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패하고 후계 없이 사망하여 승계권 위기를 겪자,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와 통합되고 이후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 아라곤 왕국처럼 에스파냐 왕국의 부속 왕국으로 전락한다.
1640년에 국가 복원 혁명이 일어나 포르투갈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을 포르투갈의 주앙 4세로 추대하며 독립을 선언했으나 에스파냐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아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영국의 지원으로 포르투갈은 독립을 했으나 포르투갈 왕국은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리면서 약화하기 시작하였다. 1755년에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1823년에 가장 큰 식민지인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포르투갈은 정치, 경제적으로 분열하였고, 19세기 중반부터 1950년대까지 2백만 명 이상의 포르투갈인이 브라질과 미국에 이민하는 등 강대국으로서의 포르투갈의 지위가 추락하였다.
1910년에 왕정을 종식하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1926년에 쿠데타가 일어나났고 1933년에는 이스타두 노부(새로운 체제)라는 포르투갈 제2공화국 독재 체제가 시작되었다. 독재는 1974년에 무혈 쿠데타인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정부가 붕괴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1975년 새롭게 수립된 포르투갈 제3공화국은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포함한 모든 해외 식민지를 독립시켰고, 마지막 해외 영토인 마카오는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포르투갈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다. 포르투갈은 1986년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을 탈퇴하였다.
15,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둔 세계적인 경제, 정치, 군사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578년, 세바스티앙 1세가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패하고 후계 없이 사망하여 승계권 위기를 겪자,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와 통합되고 이후 카스티야-레온 연합 왕국, 아라곤 왕국처럼 에스파냐 왕국의 부속 왕국으로 전락한다.
1640년에 국가 복원 혁명이 일어나 포르투갈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을 포르투갈의 주앙 4세로 추대하며 독립을 선언했으나 에스파냐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아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영국의 지원으로 포르투갈은 독립을 했으나 포르투갈 왕국은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리면서 약화하기 시작하였다. 1755년에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1823년에 가장 큰 식민지인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포르투갈은 정치, 경제적으로 분열하였고, 19세기 중반부터 1950년대까지 2백만 명 이상의 포르투갈인이 브라질과 미국에 이민하는 등 강대국으로서의 포르투갈의 지위가 추락하였다.
1910년에 왕정을 종식하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1926년에 쿠데타가 일어나났고 1933년에는 이스타두 노부(새로운 체제)라는 포르투갈 제2공화국 독재 체제가 시작되었다. 독재는 1974년에 무혈 쿠데타인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정부가 붕괴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1975년 새롭게 수립된 포르투갈 제3공화국은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포함한 모든 해외 식민지를 독립시켰고, 마지막 해외 영토인 마카오는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포르투갈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다. 포르투갈은 1986년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을 탈퇴하였다.
5.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