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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용[편집]
105인 사건이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총독 암살 모의로 날조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조선은 한일 합방 이후 조선총독부와 1대 조선 총독인 테라우치 총독을 중심으로 한 무단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일제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만주 등지에 무관학교를 세워서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비밀 단체를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일제는 1911년 1월 독립군기지를 창건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양기탁, 임치정 등의 신민회 소속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함과 동시에 이 사건을 테라우치 총독의 암살 미수 사건으로 크게 부풀리고 관서 지방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확대하여 60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일제는 이들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고 온갖 고문을 총동원하였고 결국 종내 거짓 자백을 받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무단 통치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명칭이 105인 사건인 이유는 체포된 600여 명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풀린 사람들을 제외하고 형이 선고된 사람이 105인이기 때문에 105인 사건으로 불리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조선은 한일 합방 이후 조선총독부와 1대 조선 총독인 테라우치 총독을 중심으로 한 무단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일제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만주 등지에 무관학교를 세워서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비밀 단체를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일제는 1911년 1월 독립군기지를 창건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양기탁, 임치정 등의 신민회 소속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함과 동시에 이 사건을 테라우치 총독의 암살 미수 사건으로 크게 부풀리고 관서 지방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확대하여 60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일제는 이들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고 온갖 고문을 총동원하였고 결국 종내 거짓 자백을 받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무단 통치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명칭이 105인 사건인 이유는 체포된 600여 명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풀린 사람들을 제외하고 형이 선고된 사람이 105인이기 때문에 105인 사건으로 불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