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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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균명칭평양음악무용종합대학 金元均名稱 平壤音樂舞踊綜合大學 Pyongyang Kim Won Gyun University of Music and Dance | ||
국가 | ||
설립 | 1949년 3월 1일 국립음악학교 |
1. 개요[편집]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은 북한의 평양직할시 대동강 문수구역에 있는 음악대학이며 학교의 이름은 작곡가 김원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2015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2. 역사[편집]
1949년 3월 1일 내각결정 "대학제에 의한 국립음악학교 창설에 관한 결정"에 의해 창립된 ‘국립음악학교’로부터 출발하였다. 이후 1972년 2월 평양음악무용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2004년 5년제 전환과 함께 평양음악대학과 무용학원으로 분리됐다. 평양음악대학은 2006년 연건축 면적 4만 886m2 규모로 새롭게 신축 되었는데 9층 규모의 본 교사, 7층 규모의 전공교사, 보조청사, 기숙사 그리고 800석 규모의 음악당 등이 완공되면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으로 명명되었다.
2007년 2월 28일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단은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참관하였는데, 북측 관계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과 달리 대학 이름에 '명칭'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작곡가 김원균과 음악대학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으로 다시 확대 개편되었는데,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모체로 하여 당시 평양음악학원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제1음악학원으로 그리고 평양시 만경대구역의 예술영재 전문학교인 금성학원 예술반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제2음악학원으로 흡수 편입하였다.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제2음악학원은 초급중학반(3년), 고급중학반(3년), 대학반(4년)으로 구성된다고 북측 매체는 보도하였다.
2007년 2월 28일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단은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참관하였는데, 북측 관계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과 달리 대학 이름에 '명칭'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작곡가 김원균과 음악대학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으로 다시 확대 개편되었는데,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모체로 하여 당시 평양음악학원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제1음악학원으로 그리고 평양시 만경대구역의 예술영재 전문학교인 금성학원 예술반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제2음악학원으로 흡수 편입하였다.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제2음악학원은 초급중학반(3년), 고급중학반(3년), 대학반(4년)으로 구성된다고 북측 매체는 보도하였다.
3. 학부[편집]
성악학부, 민족기악학부, 양악기악학부, 작곡학부, 피아노학부, 악기제작학부 등 7개 학부로 나눠져 있다.
4. 건물[편집]
- 외부
- 내부
5. 위상[편집]
북한 최고의 음악예술인 양성 기관이다. 북한에는 모두 12개의 음악대학(예술학원)이 있으며, 여기서 배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지역사회의 예술계에서 활동하거나 때로는 평양에 진출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으로 개칭 이전인 평양음악무용대학 체제시에는 음악, 무용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핵심 기관으로 주요 공연예술인의 대부분이 이 대학 출신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예술대학으로 최고지도자의 관심도 높은 대학으로 2006년까지 김일성은 5차에 걸친 현지지도와 15차에 걸친 교시가 있었고, 김정일은 5차에 걸친 현지지도와 200여차의 ‘말씀’과 685여건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6. 출신인물[편집]
김정일의 네번째 아내 고용희, 작곡가 리종오,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한 지휘자 김일진, 북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 조정림, 조선말대백과사전에 이름이 등재된 피아니스트 민병만이 이 학교를 졸업하는 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명 음악가를 다수 배출했다. 또한 인민예술가들인 허재복, 리종오, 리학범, 성동춘, 우정희, 안정호, 인민배우들인 백고산, 김옥선, 전우봉, 손대원, 렴청 그리고 국제성악콩클에서 1등을 차지한 리향숙, 김기영, 황은미를 비롯하여 국내외 경연무대들에서 이름을 떨치는 많은 창작가, 예술인들을 키워냈다. 대한민국에는 한국전 당시 월남한 송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