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2. 상세3. 남북 관계4. 한미 관계5. 한일 관계6. 한중 관계7. 한러 관계8.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이 문서에서는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에 대한 내용을 서술한다.
대한민국은 대부분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어 몇몇 나라들만 서술했다.

2. 상세[편집]

대한민국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한국 전쟁을 겪은 이후 적대적인 관계로 현재까지도 군사대치 중에 있어 많은 사회적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한편 한국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주도적으로 지원했던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상 전신이 되는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식민 지배하였던 일본과는 1965년에 수교한 이후 국교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 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하며 개입하였던 러시아(소비에트 연방 승계국), 중화인민공화국과는 탈냉전 이후에야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주변국들과의 관계는 지정학적·역사적 중요성을 바탕으로 한국외교의 핵심적 사항으로 자리 잡아 왔고, 한국의 독립과 정부 수립, 한국 전쟁,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진 세계적인 냉전 구조의 형성과 와해 과정은 한국과 이들 4국 사이의 관계에 그대로 투영되어 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기준으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시리아, 쿠바 3개국과 외교관계가 없으며, 이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승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190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유엔 비회원국인 서사하라, 중화민국, 팔레스타인도 외교 관계가 없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 3개 국가를 승인하지 않는다. 이중 중화민국의 경우에는 1992년 8월 23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함에 따라 단교되었다. 또, 대한민국은 2008년에 독립한 코소보를 승인했으나 아직 외교관계는 수립되지 않았으며, 2011년에 독립한 남수단은 승인과 함께 현재 외교관계가 수립된 상태이며, 2013년 2월에는 쿡 제도와 수교했지만, 니우에와는 아직 수교하지 않았다.

유엔에는 1991년에 북한과 동시에 가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외무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가, 통상에 관한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관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3. 남북 관계[편집]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하여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지위만을 인정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국내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 일체를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국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반국가단체로 본다.

국민의 정부 당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물자 교류는 참여정부 말까지 활발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 도발 등으로 인해 2013년 금강산 관광 산업, 개성공단까지 중지된 상태이였지만 남북회담을 통해 재가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계속해서 대남 도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을 진행함에 따라 다시 중지되었다.

4. 한미 관계[편집]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19세기 중반인 1871년 조선의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완강히 버티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 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쇄국정책을 풀고 세계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 되자 미국은 1882년에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어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가지게 된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 미국은 특사를 파견하여 축하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1905년 을사조약 뒤부터 뒤틀어졌는데 당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인 엘리스 루스벨트가 미국을 대표하여 대한제국에 방문했을 때 고종의 환대에도 없는 사람 취급하였고 고종의 아내였던 명성황후 무덤 앞의 말 조각상에서 앉아 사진을 찍는 무례함을 범했기 때문이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래로 미국의 대량 원조를 통해 매우 광범위하게 발전하여 왔다. 미국은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당시 유엔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 편에서 참전하여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한 군사적 보호속에서 매우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5공화국 때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도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일부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고 문서 공개 이후 한동안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은 촛불 시위로 비화되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을 겪었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출범된 이후 한미 관계가 상당히 강화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5. 한일 관계[편집]

한일 양국은 1965년에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양국 간에 역사 인식, 영토 등에 대한 갈등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들을 숭배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독도 문제, 동해 명칭 문제, 일본군 위안부도 민감한 문제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내각 당시에는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양국 관계가 멀어졌으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일본 후쿠다 야스오·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출범과 한일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관계가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 관계가 강화되었다. 2002년에는 양국이 공동 주관하여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한류 열풍"이 불어 양국 간 교류가 많이 증진되었다. 그러나 역사·영토(독도) 문제 등 여러 부분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강화함으로써 양국 관계도 점차 경직되어가고 있다.

6. 한중 관계[편집]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대한민국의 국군과 유엔군은 계속 북진하여 평양을 넘어 압록강까지 도달했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하여 한국의 영토를 무단으로 침입하였다. 그 후에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적대 관계가 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과는 1992년까지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1992년 공식 수교하면서, 기존의 중화민국과 단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는 와중에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이루고 있다.

2012년 8월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2013년 6월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가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시를 방문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6년 주한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 추진과 미・중 무역 갈등 문제 등 국제 사회에서의 충돌로 인하여 한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7. 한러 관계[편집]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었던 동・서 냉전으로 인해 대한민국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탈냉전 이후에 한소수교가 1990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와 경제, 문화, 우주기술협력, 군사(불곰사업) 등에서 밀접한 관계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둔도 문제를 포함해서 연해주 등 잠재된 영토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위성인 나로호 발사도 러시아의 협조 하에 발사했다. 현재 12만 5000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와 한국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항공사가 매일 운항하고 있다.

8.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