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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ity of Manchester
맨체스터 대학교

Universitas Mancuniensis
대학 정보
모토
라틴어
Cognitio, sapientia, humanitas
영어
Knowledge, Wisdom, Humanity
한국어
지식, 지혜, 인류애
국가
분류
공립대학
역사[1]
개교
1824년 (200주년)
설립
1824년: 기계공 교육원[2]
1851년: 오언스 칼리지[3]
1880년: 빅토리아 대학교[4]
2004년: 맨체스터 대학교[7]
소재지
잉글랜드, 맨체스터
(Oxford Rd, Manchester M13 9PL, UK)
재단
규모
12억 1,700만 파운드 (2021/22)
발전기금
2억 4,200만 파운드 (2021)
총장[8]
나지르 아프잘 OBE
(Nazir Afzal)
부총장[9]
낸시 로스웰 DBE DL FRS FMedSci FRSB
(Dame Nancy Rothwell)
재학생
총원
40,485명 (2020/21)
학부
26,630명 (2020/21)
대학원
13,855명 (2020/21)
교직원
총원
12,920명 (2020/21)
교원
5,150명 (2020/21)
직원
7,770명 (2020/21)
합격률
학부
51.1% (2019/20)
대학원
35% (2019/20)
교색[10]
 Manchester Purple (#660099) 

 Manchester Yellow (#FFCC33) 
언어별 명칭
[ 펼치기 · 접기 ]
라틴어
Universitas Mancuniensis
웨일스어
Prifysgol Manceinion
프랑스어
Université de Manchester
독일어
Universität Manchester
스페인어
Universidad de Mánchester
네덜란드어
Universiteit van Manchester
이탈리아어
Università di Manchester
폴란드어
Uniwersytet Manchesterski
그리스어
Πανεπιστήμιο του Μάντσεστερ
아랍어
جامعة مانشستر
일본어
マンチェスター大学
중국어
曼彻斯特大学
1. 개요2. 역사3. 상징
3.1. 문장
4. 통계

1. 개요[편집]

맨체스터 대학교 소개 영상
[ 펼치기 · 접기 ]
Cognitio, sapientia, humanitas
지식, 지혜, 인류애
맨체스터 대학교(The University of Manchester)는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위치한 최상위 명문 종합대학이다.

1824년 당시 영국의 국왕 조지 4세가 수여한 왕립 헌장에 따라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에 의하여 산업 혁명의 발상지 맨체스터에 기계공 교육원을 설립함으로써 역사가 시작된다.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다방면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한 만큼 그 영향력이 장대하다. 우선 맨체스터 대학교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학생 수를 보유한 대학이자 영국에서 다섯 번째로 재단 규모가 큰 대학이다. 그리고 QS 세계 대학 랭킹 기준 세계 30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의 대표 명문 연구중심 대학 리그로 일컬어지는 러셀 그룹의 창립 회원이다. 2022년 기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이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이어 영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수이다. 또한 2010년 대학발전센터의 우수 랭킹 조사에서 모든 학부가 최우수(Excellent) 등급 판정을 받은 단 4개의 대학 중 하나이고 Research Excellence Framework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연구 역량이 우수한 대학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영국에서 최초로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 과업으로 공식 지정한 대학이기도 하다.

영국 공업의 심장인 맨체스터에 세워져 산업 혁명에 기여한 역사로 인해 공학과 경영학 및 경제학 계열의 평판이 매우 우수하다. 원자의 핵을 분열시켜 원자력을 이용하는 실험이 세계 최초로 본교에서 실행되었고, 기억과 재생이 가능한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인 맨체스터 베이비와 세계 최초의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현대적 슈퍼컴퓨터인 아틀라스가 개발되었으며,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시험인 튜링 테스트가 고안되었다. 그리고 본교 경영대학인 얼라이언스 맨체스터 비즈니스 스쿨(Alliance Manchester Business School, AMBS)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저지 비즈니스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교 세드 비즈니스 스쿨보다도 먼저 설립된 영국 최초의 경영대학으로, 공과대학 및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와의 다학제적 연구에 특화되어 기술경영, 기술정책, 산학협력과 같은 연구들의 명성이 높다. 특히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영국 서식스 대학교 과학기술정책연구소와 함께 기술경영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기관으로 꼽히며, 석사 과정은 세계 대학 순위 28위, 박사 과정은 세계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명성이 높다. 아울러 19세기 말 자유무역을 제창해 근대 자유 무역의 기틀을 마련한 맨체스터학파를 태동시켰고, 경제학에 이른바 한계혁명을 가져온 한계학파가 이론적 기틀을 다졌던 교육기관들 중 하나였다. 이처럼 공학, 경영학, 경제학이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건축학, 인류학, 역사학, 미술사학, 연극영화학, 치의학 계열 등도 명성이 높다.

2. 역사[편집]

▲ 맨체스터 대학교의 역사적 의의
맨체스터 대학교의 역사는 1824년 산업 혁명의 부흥지였던 맨체스터에 소재한 맨체스터 기계공 교육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200년 동안 다양한 이름들을 거쳐 현재의 대학교가 되었다. 자세한 역사는 대학 홈페이지의 역사 페이지 참고.

2.1. 기계공 교육원[편집]

1824년 4월 7일 당시 영국 왕립학회 소속의 화학자 존 돌턴이 거대 산업 도시로 한창 성장을 하고 있던 맨체스터에서 그 지역의 공장주들과 상인들과 함께 기계공 교육원(Mechanics' Institute)을 설립했다. 교육원에서는 기초 과학을 중심으로 수업이 편성되었고, 그곳을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맨체스터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보냈다.

1837년 기계공 교육원은 잉글랜드 최초의 도시 박람회를 개최했고, 18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형 박람회를 열었다. 그곳에서는 골상학과 같은 당시에 유행했던 학문에 관련된 기구들과 자료들은 물론 전반적인 산업 기술과 관련된 장비들을 전시했다. 박람회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했으며 무려 10만여 명이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잉글랜드의 다른 도시에서도 도시 박람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기계공 교육원은 초반에는 브리지워터 암스 호텔 건물을 사용했으나 1855년에 건축가 J. E. 그레건의 유작이었던 프린세스 거리의 이탈리아풍 건물로 이전했다. 해당 건물은 1972년 5월 11일에 영국의 문화재로 등재되었다.

1882년 9월, 기계공 교육원은 기계공교육기술학교(Technical School and Mechanics' Institution)라는 새로운 교명으로 개편되었고, 시간이 흘러 1918년 맨체스터 시립기술칼리지(Manchester Municipal College of Technology)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2.2. 오언스 칼리지[편집]

기계공 교육원이 자리잡았을 무렵, 맨체스터의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학교가 세워졌다. 1846년 맨체스터를 주름잡던 직물 상인 존 오언스가 청년들을 교육시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설립하라는 뜻으로 96,942파운드의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그의 신탁 관리인들이 그의 이름을 따 1851년 콥든 하우스라는 건물에서 오언스 칼리지(Owens College)를 세웠다.

오언스 칼리지는 독일 교육의 영향을 받았는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출신인 토머스 애쉬턴을 주축으로 당시 학교 관계자들이 독일 대학들을 탐방한 후에 그 교육 시스템을 도입함과 동시에 독일 학자들을 교수로 임용했다. 관계자들 중 하나이자 토머스 애쉬턴과 같은 대학 출신인 영국의 화학자 헨리 로스코는 새로 도입한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는데, 그가 정비한 독일식 교육 방식은 붉은 벽돌 대학 교육의 귀감이 되었다.

1873년 오언스 칼리지는 옥스퍼드 로드로 이전했고, 1880년 4월 20일 잉글랜드 북부 대학 연합체 빅토리아 대학교(Victoria University)를 설립한 후 왕실 헌장을 받아 공식적으로 대학 지위를 인정받았다. 당시 빅토리아 대학교에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리버풀과 요크셔 칼리지가 가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두 대학이 1903년에 각각 탈퇴를 함으로써 독립적인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자, 빅토리아 대학교는 오언스 칼리지를 흡수해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Victoria University of Manchester)라는 교명으로 새로이 탄생했다.

2.3.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편집]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상징[편집]

3.1. 문장[편집]

맨체스터 대학교의 문장은 본교의 전신인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와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의 각 문장을 합친 것이다. 왕관 위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사자와 벌 문양은 옛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의 문장에서, 하늘색 바탕에 성벽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방패는 옛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의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문장 밑에는 본교의 모토가 쓰여 있다. 맨체스터 대학교 문장 소개 페이지 참고.

4. 통계[편집]

아래 자료는 2021/22학년도 기준이다. 대학 통계 자료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성별과 인종 통계
성별 비율
남성 (50%)
여성 (50%)
인종 비율
非백인 (53%)
백인 47%
출신 국가 통계
국가 비율
EU 출신
(6%)
영국 출신
(58%)
기타 출신
(36%)
非영국·EU 출신 통계
중국 (59%)
말레이시아 (12%)
인도 (8%)
홍콩 (6.2%)
미국 (4.3%)
아랍에미리트 (2%)
대한민국 (1.7%)
캐나다 (1%)
일본 (0.5%)
기타 국가 (5.3%)
[1] Our foundations 참고.[2]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이자 본교의 시초[3] 빅토리아 대학교의 전신[4]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의 전신이며 1880년 4월 20일 왕실 헌장(Royal Charter)을 받아, 공식적으로 대학 지위를 인정받는다. 본교 역사상 최초의 왕실 헌장.참고[5] 빅토리아 대학교의 후신으로 1903년 7월 15일에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의 이름으로 새로운 왕실 헌장을 수여받는다.참고[6] 1955년 7월 29일 왕실 헌장을 수여받으며 대학 지위 인정.[7] 2004년 10월 1일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교와 통합하며 현재의 맨체스터 대학교가 공식 출범한다.[8] Chancellor. 영국 대학의 명목상 수장. 대학 운영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은 부총장(Vice-Chancellor and President)에게 있다.[9] Vice-Chancellor and President. 대학의 실질적 수장.[10] Colour Palette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