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西江大學校 Sogang University | ||
분류 | 사립대학, 4년제 대학 | |
슬로건 |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 | |
설립 | 설립국가 | |
설립일 | 1960년 4월 18일 (64주년) | |
설립자 | 테오도르 게페르트 | |
위치 |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35 | |
상징 | 동물 | 알바트로스 |
학교법인 | 학교법인 서강대학교 | |
총장 | 제16대 심종혁 | |
학사 통계 | 학생수 | 11,667명 (2024년 기준) |
평균평점 | 3.41점 (4.3점 만점) | |
경쟁률 | 20.3:1 (1,953명 모집 / 35,272명 지원) | |
취업률 | 73.9% (2023년 기준) | |
대학기관평가인증 인증대학(2024년) |
서강대학교 캠퍼스 전경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1960년 4월 18일에 예수회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설립하였다. 캠퍼스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대흥동)에 있으며, 현재 총장은 심종혁이다. 교훈은 진리에 순종하라이다. 상징 동물은 알바트로스이며, 교표는 방패의 모습을 본따서 제작했다.
3. 역사[편집]
1948년 한국가톨릭교회의 발의와 교황 비오 12세의 윤허로 대학 설립이 기획되어, 1960년 4월 18일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 소속의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와 예수회 미국 위스콘신 관구에 의해 6개학과 158명의 신입생으로 개교하였다. 1966년 경향교육상 수상을 통해 국내 최우수 모범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영문, 사학, 철학, 수학, 물리, 및 경제 6개 학과들을 설치하여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모델로 한 서강대학으로 개교 10년 후인 1970년 종합대학으로 전환하여 인가 된 서강대학교는 국내 최초 대학 공연장인 메리홀, 대한민국 최초로 완전 개가식 체제의 로욜라 도서관을 개관하였으며 지정좌석제, FA제도 등 학사관리와 자율전공제, 다전공제, 연계전공제도 등을 채택하여왔다. 2017년 기준으로 12개 대학원, 8개 학부에 학부생은 8,119명, 전임교원은 424명이다. 현재까지 약 7만여 동문을 배출한 서강대학교는 2014년~2017년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종합대학교 4년 연속 1위, 2010년 제 36회 국가품질경영대회 교육부문 대통령 표창, 2009년 및 2010년 조선 일보-영국 QS주관 아시아 대학 평가 졸업생 평판도 부문 국내 사립대학 1위, 2009년 일반 대학 교직 과정 평가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2017년 2월 제15대 총장으로 박종구 신부가 선임되었다. 2010년 11월 12~14일에는 서강대의 개교50주년을 맞이하여, 1983년부터의 자매결연 대학이자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인 일본 도쿄의 조치대학공동으로 제1회 서강-조치 한일 정기전을 서울 서강대 캠퍼스 전역에서 개최하였다. 축구, 테니스, 야구, 농구 등의 4종 경기와 응원전이 펼쳐졌으며 조치대에서는 약 140명의 학생 선수단 및 학교 관계자가 서강대를 방문하였다. 국내 최초로 진행된 대학 간 국제정기전으로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실시한다.
2017년 2월 제15대 총장으로 박종구 신부가 선임되었다. 2010년 11월 12~14일에는 서강대의 개교50주년을 맞이하여, 1983년부터의 자매결연 대학이자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인 일본 도쿄의 조치대학공동으로 제1회 서강-조치 한일 정기전을 서울 서강대 캠퍼스 전역에서 개최하였다. 축구, 테니스, 야구, 농구 등의 4종 경기와 응원전이 펼쳐졌으며 조치대에서는 약 140명의 학생 선수단 및 학교 관계자가 서강대를 방문하였다. 국내 최초로 진행된 대학 간 국제정기전으로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실시한다.
4. 대학 명칭[편집]
1960년 1월, 모교 이름이 ‘장안(長安) 대학교’로 잠정적으로 결정돼 대외적으로 쓰이고 있던 당시의 일이다. "학교 이름이 너무 평범하다"는 지적에 "학교 이름을 새로 정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장안(長安), 광화(光化), 성지(聖志), 성지(誠志), 명덕(明德), 명도(明道), 상지(上智), 진단(震旦), 진성(珍聖), 대건(大建), 명진(明珍), 경서(京西), 한성(漢城) 등 여러 후보 가운데 ‘서강(西江)’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당시 학교 이름을 정하는 데 관여했던 이들은 이해남 교수를 비롯한 예비 교직원들과 길로련, 게페르트, 김태관, 헙스트, 프라이스 신부 및 신학생 도일 등이었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은 ‘한강의 서쪽 줄기’라는 뜻을 가진 ‘서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서강’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면, 그 시절 학교 근처에서 팔던 지독한 새우젓 냄새가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길로련 신부님께서 완강히 ‘서강’을 고집하셨다. 학교 이름을 지을 때는 그 학교 주변의 명칭을 따서 짓는 게 가장 오래된 전통이라는 이유였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보세요.”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옥스퍼드란 ‘소 우리’를 뜻하는 겁니다. 오늘날 옥스퍼드는 전 세계적으로 학구적인 명망이 가장 높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강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한참 동안 계속된 학교 명칭에 대한 토론은 ‘서강’으로 결론났다. 새우젓 냄새도 날려버린 ‘서강’이었다.
5. 대학 주요 성과[편집]
- 대외평가
- 2009~2010, 2012, 2014~2017년 :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종합대학교 부문 1위 선정
- 2012~2017년 : 중소기업청 창업보육센터 평가 6년 연속 최우수
- 2010년 : 제36회 국가품질경영대회 교육부문 대통령표창
- 2010년 : 중앙일보 대학평가 이공계 교수 연구부문 전국 3위
- 2009년 : 전국 4년제 종합대학 정규직 취업률 1위
- 2009년 : 일반대학 교직과정 평가 최우수대학으로 선정
- 2008년 : 교육역량강화사업 수도권 대학 1위
- 국가사업 선정실적
-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 선정
- 국제협력선도대학 육성지원사업 선정
- 지식경제부 재정지원 「기술경영(MOT)전문대학원」 선정동아연구소, 인문한국지원사업(HK) 선정경영전문대학원 외, 두뇌한국21사업(BK21) 선정
- 경영전문대학원 외, 세계수준의연구중심대학육성사업(WCU) 선정
- 사회과학연구소와 기초과학연구소,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선정
- 양자시공간연구센터, 선도연구센터육성사업(SRC) 선정
- 다중현상CFD연구센터, 선도연구센터육성사업(ERC) 선정
- 컴퓨터공학과, 대학IT연구센터육성지원사업(ITRC) 선정
- 산학연 연구성과
- 인공광합성연구센터(KCAP) 유치
- 서강-하버드 질병 바이오 물리 연구센터 유치
- 스마트 핀테크 연구센터 설립블록체인 분야 대학ICT연구센터 선정
- C1가스리파이너리연구소 설립
- 과학기술교원 1인당 기술이전 수입 4년 연속 1위(2014~2017)
- 산학 공동 사업화 법인 설립(블루카이트, SG로보틱스 등)
6. 역대 총장[편집]
서강대학교 역대 총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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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학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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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캠퍼스[편집]
9. 부속 시설[편집]
- 로욜라 도서관 : 로욜라 도서관은 1960년 서강대학교의 개교와 더불어 본관(A관) 2층에서 출발했다. 그 후 1974년 2월 1,600여평의 4층 건물이 준공되어 예수회 창설자인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 성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로욜라 도서관으로 명명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완전 개가제 도서관으로 개관하였다. 총 3동의 건물이 연결된 구조이다. 2018년, 로욜라 도서관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프로젝트인 로욜라 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박물관 : 서강대학교 박물관은 1974년 2월 2일, 한국 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학문적 연구에 도움을 주는 데 그 목적을 두어 개관하였다. 손세기가 기증한 고서화 200점, 이문원이 기증한 민속품 539점, 최구가 기증한 고려자기 21점 등 총 1,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고, 현재 동문회관 내에 자리하고 있다.
- 곤자가 국제학사 : 곤자가 국제학사의 '곤자가'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에서 태어나 1585년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기숙사로 연면적 5,925m²에 지하 2층, 지상 12층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총 9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최신식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 메리홀(공연문화센터) : 1969년 7월 착공된 메리홀은 1970년 2월 23일 준공식을 가졌다. 총건평 579평으로 1, 2층은 극장을 겸한 강당으로 사용되었다. 2001년 시설 노후화에 의한 재건축 계획 수립, 2003년 9월 재건축 공사 착공, 2004년 5월 25일 재개관하였고, 2009년 5월에 소극장을 개관하고 로비를 확충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10. 학생활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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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강학파[편집]
서강학파는 로마 가톨릭교회 수도회인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들의 모임이다. 시장경제 기반의 성장성을 중요시 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 성장을 이끈 서강대 교수 출신 경제 관료를 지칭한다. 1세대는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ㆍ김만제 전 부총리다. 2세대는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이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성장주의자로 재벌 우선, 수출 지상주의, 선 성장ㆍ후 분배 등을 주장했다. 3세대에는 1세대들의 제자인 김광두, 김경환, 남성일 현 서강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4세대에는 최인, 조장옥 현 서강대 교수가 대표적이고, 5세대로는 허정, 전현배 서강대 교수 등이 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강학파는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도 이들 서강학파가 설계한 지나친 고속성장 중심의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인 서금회와 함께 한국의 경제를 좌우하는 막강한 사조직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 성장을 이끈 서강대 교수 출신 경제 관료를 지칭한다. 1세대는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ㆍ김만제 전 부총리다. 2세대는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이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성장주의자로 재벌 우선, 수출 지상주의, 선 성장ㆍ후 분배 등을 주장했다. 3세대에는 1세대들의 제자인 김광두, 김경환, 남성일 현 서강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4세대에는 최인, 조장옥 현 서강대 교수가 대표적이고, 5세대로는 허정, 전현배 서강대 교수 등이 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강학파는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도 이들 서강학파가 설계한 지나친 고속성장 중심의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인 서금회와 함께 한국의 경제를 좌우하는 막강한 사조직이다.
12. 대흥(서강대앞)역[편집]
대흥(서강대앞)역은 서울 지하철 6호선 625번.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로 지하85 (대흥동 128-1)에 위치해 있다.
병기역명은 서강대앞으로 인근에 서강대학교가 있어서 붙여졌다. 나중에 용산선 서강역이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개통과 함께 서강대역으로 개칭되었지만 병기역명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경의·중앙선 서강대역은 정문, 대흥역은 남/후문과 가깝다.
아침 시간대에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줄을 서서 타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17,755명(2023년 기준)이다. 2003년까지 대흥역의 이용객 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미 2003년경부터 대흥역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이때부터 15년가량 적게는 16,400명(2007년), 많게는 18,500명(2014년)을 기록하면서 이 사이를 꾸준히 오간다. 주변이 전형적인 주거지라서 대부분의 이용객들은 근처에 사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은 대부분 서강대학교 학생들이다. 이 학교와 가장 가까운 역이었어서[5] 서강대를 통학하는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그러나 이곳의 상권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서강대생의 상당수는 여전히 예전부터 뚫려있던 2호선 신촌역을 이용하며, 2012년에 경의선 서강대역이 개통한 이후로는 서강대역을 이용하는 대학생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대학생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에 대흥역의 하루 방문객이 약 1,200여 명 감소하였는데, 서강대생이 수요에서 이탈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기역명은 서강대앞으로 인근에 서강대학교가 있어서 붙여졌다. 나중에 용산선 서강역이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개통과 함께 서강대역으로 개칭되었지만 병기역명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경의·중앙선 서강대역은 정문, 대흥역은 남/후문과 가깝다.
아침 시간대에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줄을 서서 타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17,755명(2023년 기준)이다. 2003년까지 대흥역의 이용객 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미 2003년경부터 대흥역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이때부터 15년가량 적게는 16,400명(2007년), 많게는 18,500명(2014년)을 기록하면서 이 사이를 꾸준히 오간다. 주변이 전형적인 주거지라서 대부분의 이용객들은 근처에 사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은 대부분 서강대학교 학생들이다. 이 학교와 가장 가까운 역이었어서[5] 서강대를 통학하는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그러나 이곳의 상권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서강대생의 상당수는 여전히 예전부터 뚫려있던 2호선 신촌역을 이용하며, 2012년에 경의선 서강대역이 개통한 이후로는 서강대역을 이용하는 대학생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대학생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에 대흥역의 하루 방문객이 약 1,200여 명 감소하였는데, 서강대생이 수요에서 이탈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흥역 역명판 |
13. 여담[편집]
- 서강대학교의 표어는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이다. 처음 만들 당시에는 "Be as proud of Sogang as Sogang is proud of you."였는데, 이후 우리말로 번역해 지금에 이르렀다. 표어를 만든 사람은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60학번인, 안우규 명예 교수. 1964년 1월호 첫 <서강옛집>에서 최초로 공개됐으며,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 학장이 같은 해 열린 제1회 졸업식 축사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빠르게 퍼졌다. 1964년부터 사용됐다는 점에서, 2000년대 가서야 표어를 확립하고 홍보하기 시작한 대부분의 대학들과 차별화된다.
- 서강대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SOFEX(서강 - 죠치 스포츠 교류전)을 통해 일본의 조치대학과의 정기전을 진행하고 있다. 조치대 역시 서강대처럼 예수회에서 설립, 운영하고 있는 가톨릭 미션스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성원은, 죠치대를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물 건너 친구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연고전과는 다른, '자매대학 사이의 교류'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강대생들은 타 학교와의 비교 자체에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다. 풍토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 상당히 많은 재외국민과 북한이탈주민이 재학하고 있다. 또한 서강대 부설 한국어 교육원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보니, 여기를 졸업한 후 곧바로 유입되는 외국인 학생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한국어 교육원은 여타 교육원들이 그렇듯 면접 정도만 보면 입학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한국어 습득이 상대적으로 쉬운 동아시아권 학생들이 주류. 그러다 보니 한국어로 능숙하게 대화하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더니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인 경우도 잦다.
- 비슷한 급간의 대학교에 비해 서강대의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특히 남부 지방에서 이런 이야기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개교 시기가 경쟁 대학에 비해 늦었던 데다가 타 대학에 비해 졸업생 수가 월등히 적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강대의 전체 학부생은 약 8,000여 명으로, 국내 주요 대학에 대비해 졸업생은 1/5~1/6 수준, 현재 학부생은 1/2~1/3 수준이다. 이는 서강대학교는 개교 초기부터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위시한 소수 정예 교육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중부권에선 상당히 잘 알려진 대학이었다. 애초에 '예수회가 한국 땅에 세운 대학교'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개교 당시부터 각계각층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서강고등학교'로 불리던 빡센 학풍도 상당히 유명했으며, 70~9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선 '독서록'이나 '지정좌석제' 같은 서강대학교만의 학사 제도가 꽤나 널리 알려졌었다.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전국적인 인지도도 경쟁 대학 못지 않게 올라갔다. 특히 서강대 출신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인 층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