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신라대학교
新羅大學校
Silla University
파일:신라대학교 로고.png
분류
설립
설립국가
설립일
1954년 11월 8일(+25518일, 69주년)
설립자
박영태
위치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대로700번길 140
상징물
교조
교목
소나무
교화
철쭉
총장
허남식
학교법인
일반재정지원대학(2021)
1. 개요2. 상세3. 역사4. 상징5. 교명6. 학부7. 캠퍼스8. 학생활동
8.1. 자치활동8.2. 학내언론8.3. 방송국
9. 국제 교류10.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신라대학교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사립 종합 대학이다.

2. 상세[편집]

학부는 여덟 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되고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교육대학원, 특수대학원(사회복지대학원, 산업융합대학원, 상담치료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법인 박영학원이 운영하며, 현재 총장은 허남식이다.
1954년 설립한 부산여자대숙을 모태로 하며 1964년에 개교한 2년제 부산여자초급대학을 시작으로 1970년 4년제 승격, 1992년 종합대학으로의 승격 이후 1997년 남녀공학으로 전환 및 신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여대숙은 한국전쟁으로 중구 광복동(신창동2가)에 위치하였으나, 이후 연제구 연산동(3만여평)으로 이전하여 운영되었고, 1994년에 사상구 괘법동으로(54만여평) 캠퍼스를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역사[편집]

신라대학교는 재단법인인 박영학원이 1954년 부산여자대숙을 설립한 데 이어 1964년에 부산여자초급대학을 설립하면서 부산지역 최초의 여성 고등교육기관[1]으로 시작하였다. 5년 후인 1969년에는 4년제 부산여자대학으로 승격하였고, 1992년에는 종합대학인 부산여자대학교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1997년에는 남녀공학으로 전환,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에서 사상구 괘법동으로 이전하면서 교명을 신라대학교로 변경하였다.

신라대학교는 일제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부산면포합자회사, 부산대동연료공업사, 부산정미제분 등의 기업을 운영하던 박영택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부산 지역 최초의 여성고등교육기관인 부산여자대숙을 시초로 한다.

4. 상징[편집]

학교 상징물로는 용마를 주로 활용한다. 학교 정문에 용마상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용마 문양이 학교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 용마는 전설 속에 나오는 상상의 말로 옛 신라인들이 상징으로 즐겨 사용하던 것을 차용한 것이다. 상징하는 동물은 독수리이다. 교색은 청색이며, 교색은 교표에 활용되고 커뮤니케이션 마크와 로고에는 주로 초록색을 활용하고 있다. 시내(사상역행)와 시외지역(울산, 창원행)의 무료 통학버스에도 커뮤니케이션 로고 전까지는 청색으로 도색되어 있다가 이후 초록색으로 변경되었다.

여자대학 시절 또 다른 이름으로는 수련(睡蓮)이 주로 활용된 바 있다. 수련은 연산캠퍼스 시절 교내에 수련이 가득한 연못이 있었던 것을 모티브로 한 것이며, 이에 따라 학내 구성원을 수련인으로 칭하거나 교지 이름을 수련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는 이후 백양캠퍼스로 이전한 뒤에도 한동안 활용되었다. 신라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된 뒤로는 신라인으로 활용하는 등 별칭 없이 교명인 신라를 그대로 활용한다.

로고는 최초 부산여자초급대학 시절 2차례 제정된 바 있으나,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고 이후 부산여자대학으로 개편된 뒤 다시 제정하여 널리 활용되었다. 미술학과 조무광 교수가 제작하여 1977년 3월 20일에 공포 되었으며, 대학 상징인 수련을 모티브로 대학교의 大자를 꽃잎과 조화롭게 변형하였고 꽃받침 부분은 부산의 ㅜ자와 Woman(여자)의 W를 형상화하여 제작하였다.

이후 남녀공학인 신라대학교로 개편한 이후에는 로고를 새로이 변경하였는데, 천마도에서 나온 구름문양과 신라의 영문 이니셜인 S를 유려하게 조합하였으며 종합대학교라는 의미의 영문자 U를 결부시켰다. 또한 여자대학 시절부터 활용된 대학교의 大자를 포함하여 정통성을 계속적으로 유지하였다. 2000년대까지는 교표를 로고로 활용하였고, 최근에는 커뮤니케이션 마크를 새로 제작하여 로고로 활용하고 있다.

5. 교명[편집]

여자대학이었던 1998년 이전에는 부산지역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대학으로 부산여자초급대학, 부산여자대학, 부산여자대학교가 차례로 활용되었다. 이후 남녀공학으로 개편되면서 새로운 교명을 정해야 했는데, 교명선정위원회는 교명을 전국 공모하여 2,604건의 응모로 957종의 교명을 제안받았다. 제안받은 교명은 부일대학교(부산 제일의 의미로 159명 응모), 신라대학교(76명), 부영대학교(부산 번영의 의미로 59명 응모) 등이 있었으며 한국대학교, 부산제일대학교, 한민대학교, 낙동대학교, 우주대학교 등이 응모되기도 했다[2].

이들 교명 중 교명선정위원회는 진취성, 참신성, 친근감, 홍보성, 차별성 등에 중점을 두고 3차례의 회의를 거쳐 부영대학교, 동남대학교, 신라대학교, 부일대학교, 해동대학교 등 11점을 선정했다. 이후 해동대학교가 법인 이사회에서 선정되었으나, 다시 교명선정위원회는 해동대학교가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한다고 판단해 이사회에서는 신라대학교를 최종 선정하게 되었다.

신라대학교는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찬란한 문화와 함께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했던 나라였기에 신라에 지역적, 정신적으로 뿌리를 둔 대학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화랑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 양성으로 삼국을 통일했던 전통으로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의미를 통해 전통과 진취적인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명칭으로 적절하다고 판단 한 것이다.

한편 종합대학 이전에 쓰였던 부산여자대학이라는 명칭은 신라대학교로의 교명이 변경된 이후 부산여자전문대학(옛 부산여전)이 활용하였으며, 현재는 여자 종합대학 시절의 명칭인 부산여자대학교로 교명을 다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6. 학부[편집]

7. 캠퍼스[편집]

신라대학교의 캠퍼스는 본래 연제구 연산동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교정이 협소하고 도심지로 발달하여 더 이상의 확장이 불가능하여 1994년에 현재의 위치인 사상구 괘법동으로 이전해 왔다. 백양산에 위치한 현재의 캠퍼스는 54만평의 부지로, 약 27만평이 개발된 상태이다.

현재 신라대학교가 위치한 백양캠퍼스는 부산광역시의 서쪽인 사상구 백양산 자락에 위치하며, 괘법동 산1-1번지를 위주로 덕포동에도 일부 속하고 있다. 서면 도심지로부터 서쪽으로 약 9 km가량 지점, 구포역에서 남쪽으로 7 km 지점에 위치하며 부산역으로부터는 북서쪽으로 12 km가량 떨어져 있다.

중앙고속도로 종점인 삼락 나들목으로부터 7 km 지점에 위치하며, 남해고속도로 종점 사상 나들목으로부터는 6 km 지점에 위치한다. 또한 경부선 사상역 및 서부시외버스터미널, 도시철도 2호선과 김해경전철 사상역이 보행 왕래권에 위치하며, 김해국제공항으로부터는 10 km가량 떨어져 있어 김해경전철을 통해 학교 인근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사상역, 덕포역과는 5 ~ 10분 간격으로 무료 운행되는 통학버스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 통학버스는 캠퍼스 내부를 순환하여 운행한다. 또한 울산광역시, 양산시, 창원시, 김해시(장유)와는 역시 무료로 운행되는 시외 통학버스로 접근할 수 있다.

캠퍼스는 주로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나무, 아카시아, 오리나무 등이 주종이다. 또한 능선 사이의 계곡이 위치하는데, 이 계곡은 백양산 등산로로부터 내려와 글로벌타운, 사범관, 오리연못으로 이어진다. 사범관과 상경관은 이 계곡으로 분할되며 무지개다리로 연결된다. 당초 캠퍼스 부지는 동서방향으로 경사도가 20% 이상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며, 남북방향으로는 15% 이하의 완만한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2001년과 2004년에는 한국대학신문이 주최한 아름다운 대학캠퍼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백양캠퍼스는 원형을 기본으로 구상되었다. 1차로 조성된 미술관, 예음관, 자연관, 인문관, 사범관, 경상관은 중앙의 도서관과 소운동장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 · 외부에 순환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사범관과 경상관은 직선으로 건축되어 있지만, 미술관과 예음관, 자연관, 인문관은 이러한 원형배치를 위해 건물 형태도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순환도로와 순환도로를 잇는 도로는 각각 순환삼거리로 연결되어 공학관 로터리, 자연관 순환삼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체육관과 백양생활관, 글로벌타운은 이러한 외부순환도로 바깥쪽에 위치하는데, 1차 조성시기와는 별도로 조성되어 당초 계획된 녹지공간을 건물로 조성한 사례이다. 미술관 뒤쪽의 외부순환도로를 통해서는 신라중학교로 진출할 수 있다.

2차로 조성된 공학관, 화랑관, 마린바이오센터, 의생명관(3호관), 대운동장, X-게임장은 1차 조성된 캠퍼스의 동쪽에 위치하며 화랑관 앞 동산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조성되었다.

신라대학교 캠퍼스맵

8. 학생활동[편집]

8.1. 자치활동[편집]

신라대학교의 학생 자치활동은 부산여자초급대학 시기의 학생회 조직으로부터 시작된다. 초급대학 개교 직후인 1966년 5월 20일 학생회장 선거를 치렀으며,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총무부장, 운영부장, 지도부장, 체육부장, 출판부장과 학예부장의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현재는 전년도 11월에 선거를 치러 구성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자유, 복지혁명 등의 선거운동본부가 구성되어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부침이 이루어졌으며 2006년경 이후로는 비운동권 학생회가 주도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55대의 학생회가 구성되어 명맥을 잇고 있다.

8.2. 학내언론[편집]

  • 신라대학보 : 신라대학보사가 발간하는 신라대학교의 학보는 1966년 10월 20일, 부산여대학보를 제호로 하여 4면 국한문혼용체로 발간한 이래 지속적으로 발간해 왔다. 초창기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나, 1981년 5월부터 격주간으로 변경되었으며, 1985년 6월부터는 4면에서 8면으로 증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8년 3월에는 논설위원 제도를 도입하였고, 당시까지 한자로 표기되었던 제호를 1969년 4월에 한글로 변경하였다. 또한 1974년에는 편집부가 편집국으로 승격되었고, 1988년 9월에는 세로쓰기였던 편집체제를 가로쓰기로 전환하였다. 이어서 1998년에는 제호를 신라대학보로 변경하였다. 창간 당시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언론 자율적 성격이 다소 부족한 학교 홍보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보의 내용도 교내 뉴스, 교수 및 학생 논단, 행사 특집, 학생 문예작품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투고하는 사람도 교수와 학생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교내를 벗어나 일반 사회나 정치 문제까지 기사로 등장하였고 외부 인사의 글도 학보의 일부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학보사는 매년 "전국 고등학생 문예작품 현상모집"을 실시중에 있는데, 최초 전국 여고생을 대상으로 하여 실시해 오다가 남녀공학으로 전환 후 고등학생 전체로 범위를 확대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학내 분위기에 맞추어 학우 대중에 가까이 다가가는 지면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이에 학내 복지, 진로, 대학 경쟁력 강화방안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또한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후에는 신라대학보로 제호를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99년에는 신라대학보가 교육부를 비판한 기사를 발행하려 하자 학보가 배부될 경우 교육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학보 7천여부의 배부를 중지시킨 일이 있었다. 이는 지방대학에 관한 교육정책과 학교측의 무대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학교측은 학보 배부중지 문제를 학내 여론화 할 경우 주간교수 등 5명의 사표를 받겠다고 한 뒤, 대자보를 붙인 1999년 5월 19일, 주간교수인 송 모 교수로부터 사표를 수리해 새 주간교수로 유 모 교수를 임명했다. 학보사는 "문제의 기사가 명지대, 중앙대 등 타 대학 신문에 실린 내용과 같은 맥락인데도 학교측이 배부를 거부한 것은 학생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 주장했으며, 학교측은 "3면 기사의 내용은 그렇다치더라도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발행인인 총장이 배부를 중지시킨 것"이라며, "편집국장과 해당 기자 등 2명은 문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학교측은 학보 배부중지 4일째인 1999년 5월 21일에 기사에 대한 아무 수정 없이 학보를 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학보 편집위원들의 뜻에 따라 총장이 결정한 사안으로, 7천부는 이상없이 배부되었다.
  • 신라 : 1966년 4월 최초로 발간된 신라대학교의 교지는 당시 학교에서 주로 활용되었던 수련을 제호로 하여 시작되었다. 연 1권 발간되었으나, 1993년부터는 두 권씩 발간되었다. 현재는 신라로 명칭을 변경하여 발간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초급대학 시절의 교지로, 학생논단과 실습보고, 교수논단, 시화, 수필, 창작소설 등이 주류로 논단 및 문예창작 발표지의 성격이 강하였다. 이후 1970년대에는 "민족과 역사의 증인으로서 진리와 자유를 지켜나가고 참된 대학문화의 재건이라는 절실한 사명 또한 수련의 광장에서 이룩되는 지적 활동으로부터 출발하여야겠습니다."라는 수련 8집(1973년)의 발간사와 같이 대학 문화의 재건과 지적 활동, 사회의 문제의식을 담고자 했다. 이후 1980년대에는 인간, 문화, 사회의 각 분야로 관심을 넓혀 수련 14집(1980년)에는 인간회복을, 17집(1982년)에는 인간의 탄생을 특집으로 다루고 18집(1983)에서는 인간을 특집으로, 부산문화 진단을 기획으로 다루었다. 또한 20집(1985)에서는 자유와 도시, 농촌을 특집으로 다루는 등 점차 관심이 사회 각 분야로 넓어짐을 알 수 있다. 또한 1985년 학생회의 부활, 1987년 민주화운동 등을 겪으면서 인간, 노동, 여성해방, 통일, 학내민주화 등의 이슈로 시각이 다양해지기도 했다.

8.3. 방송국[편집]

교내 교육방송국은 부산여자초급대학 신문방송학과가 개설된 1965년 2월 1일에 개국하였다. "뜨거움, 그리고 사랑"이라는 국훈 아래 실시되고 있으며, 호출부호는 SLUB(SilLa University Broadcast)로, 부산여자대학 시절 사용되었던 PWUB(Pusan Woman's University Broadcast)를 남녀공학 개편을 맞아 1998년 3월 2일에 변경한 것이다.

9. 국제 교류[편집]

1985년 5월 25일 중화민국에 있는 실천가정경제대학과의 자매결연을 시작으로 1987년 6월 23일에는 미국 린치버그대학과의 자매결연 등 많은 해외 학교와의 자매결연이나 학술교류가 이어져 왔다. 특히 2001년 이후 국제교류, 협력사업을 적극적으로 계획하여 2002년 9월에는 국제교류부(현재 국제교류팀)를 설치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해 왔다. 주로 해외 자매대학의 확대, 외국인 교수의 확충,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 다양한 국제교류 프로그램 개발 등으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10.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