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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창시자
예수
耶稣 | Jesus
파일:예수 사진.webp
본명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솔사다티
سید ابراهیم رئیس‌الساداتی
Sayyid Ebrahim Raisolsadati
출생
기원전 6년 또는 4년
헤로데 왕국 베들레헴
사망
서기 33년 4월 3일 금요일 오후 3시
로마 제국 유다이아 예루살렘
사인
십자가형에 따른 다량 출혈과 질식사
가족
아버지 : 요셉
어머니 : 마리아
종교
기독교(창시자)
1. 개요2. 상세3. 어원4. 생애
4.1. 사망4.2. 사망 이후
5. 예수의 권위
5.1. 유대교의 랍비5.2. 기독교의 신5.3. 서구권 달력의 기원5.4. 이슬람교의 예언자
6. 연구 및 관점
6.1. 기독교적 관점6.2. 유대교적 관점6.3. 이슬람교적 관점6.4. 힌두교적 관점

1. 개요[편집]

예수는 기원전 4년경 ~ 기원후 33년경 나사렛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는 서기 1세기 갈릴래아의 나자렛 출신 유대인 설교자이며 종교 지도자로서 기독교 창시자이며 신앙의 대상이다.

2. 상세[편집]

기독교인 대부분은 예수를 성육신한 성자인 동시에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라고 믿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대 역사학자들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한다.
하지만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복음서 이외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복음서의 역사적 신뢰성과 더불어 성경에 묘사된 예수가 역사적 예수를 적절히 반영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3. 어원[편집]

헬라어 이름인 예수스는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축약형인 예슈아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말이다. 여호수아의 어원은 접두어 여와 호세아를 덧붙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자렛 예수"로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부모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셉의 아들 예수"(루가 복음 2:21), 나사렛의 예수(요한 복음서 1:45) 또는 성모 마리아의 아들 예수(마르코 복음 6:3, 마태오 복음 13:55) 중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가므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아들 예수'은 정식 성명이다. 쿠란에 기록된 예수의 아랍어식 이름은 '이사 빈 요세프'이다.

예수에게 따라 붙는 그리스도라는 낱말은 "기름을 부은"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크리스토스는 흔히 '메시아'로 표기하는 "히브리어: מָשִׁיהַ 마쉬아흐"를 번역한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유대인의 종교적 예법에 따르면 드높은 사람, 다시 말해 왕이나 예언자, 사제,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메시아 예수라고 풀 수 있다. 성경과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그 뒤로 예수는 많은 추종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이적을 보이며, 로마 제국의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한 뒤 사흘 만에 부활한다.

4. 생애[편집]

'기원후'의 의미로 사용하는 'A.D.(Anno Domini)'는 예수 출생 이후 시대를 의미한다. 'B.C.'와 'A.D.' 구분은 6세기 경 신학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가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면서 사용한 방법이 이후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에 반영된 것으로, 이때에 계산한 예수 그리스도 탄생 연대 기준이 오늘날까지 쓰이지만, 예수가 태어난 해는 기원후 1년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전반적인 입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팔레스타인 북부에 위치한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시골 출신이었으므로 그 출생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오늘날 복음서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대체로 예수가 기원전 2년에서 4년 경에 태어났다고 추정한다.

마태오의 복음서 2장 1절부터 16절에는 예수가 태어난 해에 하늘에 '동방의 별'이 나타나고 헤로데 왕이 2세 미만의 갓난 사내아이들을 살해하도록 명을 내려 그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내용이, 루가의 복음서 2장 1절과 2절에는 아우구스투스가 호적을 명하여 요셉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을 찾는 내용이 실려 있다.

루가복음에 언급된 인구 조사는 기원전 4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견해와 기원후 6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상존한다. 누가는 루가의 복음서 2장 1절부터 7절에서 예수의 탄생 시점에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시리아 지방의 총독이 퀴리니우스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퀴리니우스는 1764년에 로마에서 발견된 비문에 기원전의 퀴리니우스 총독을 언급한 것을 근거로 볼 때 기원전 4년 경 총독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따라서 대체적으로 예수는 기원전 2년에서 4년 경에 출생한 것으로 간주된다.

'동방의 별'은 이후 '베들레헴의 별'로 알려졌다.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를 800년 주기로 목성과 토성이 분점에 대해 같은 위치에 놓이는 현상과 연관된 것으로 주장하였고, 이로부터 그 시기를 기원전 7년으로 추측하였다.

한편, 예수의 탄생설화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태오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유아 학살과 이집트 피난 전승은 유대 기독교인인 마태오와 마태오좌 교회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인물인 모세와 같은 권위를 가진 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고 보는 성서학자도 극소수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지는 루가의 복음서과 마태오의 복음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베들레헴이지만,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인 나자렛에서 성장하였다. 마르코의 복음서과 요한의 복음서에 언급된 바와 같이 당시 사람들에게 '나자렛 예수'로 불리었던 이유는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나자렛에 있을 때 임신했으며, 베들레헴에서 출생후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와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하고 생활했기 때문이다.

구유에서의 출생 이야기는 오로지 루가의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는데,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예수가 태어나게 된 이유를 루가는 인구조사 때문에 예수의 가족이 고향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마을을 떠나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방인 유다의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나자렛의 요셉과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다윗 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호구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마태오는 메시아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미가서와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며, 이후 예수의 가족은 헤로데스 1세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흔히 헤로데 대왕이라고 부르는 헤로데 1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그 곳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어떻게 베들레헴에 가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고, 마태오는 그것이 바로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추가 설명을 한 것이므로 모두 일치된 기록이라는 해석이 보편적이다.

4.1. 사망[편집]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예수를 위험 인물로 본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은 이스카리옷 유다와 결탁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예수는 가리옷 사람 유다가 자신을 유다의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겼다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한 내막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때 자신의 제자들 중 한 명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었다. 체포된 예수는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인 산헤드린 의회에서의 재판을 거쳐 본티오 빌라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서 루가 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여 풀어주고자 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압력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루가 23:14-25)

하지만, 빌라도의 총독으로서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예수를 그의 의지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례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의 십자가에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민족 지도자를 뜻하는 '유대인의 왕(INRI)'라는 죄패가 달렸으며 예수를 처형한 세력은 로마 제국의 공권력이었다. 더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환호를 받을 만큼 민중들에게 지지받는 명사였으므로 빌라도에게 그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루가는 교회가 로마 제국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지지했으나 마지 못해 십자가형에 처한 것처럼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 반면에 빌라도에 대한 마이어의 연구를 보면, 당시 본티오 빌라도의 보호자 즉 후원자는 세야누스 였는데, 그는 황제에 대한 반역 음모를 꾸미다가 A.D. 31년 권력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빌라도의 지위는 A.D. 33년 경에는 매우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 시기는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당시의 유대인을 분노케 함으로써 황제와의 관계가 더 이상 곤경에 빠지지 않길 원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서의 묘사가 가장 정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두 명의 강도들과 함께 잔인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며 구타와 조리돌림을 당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는 십자가 모양의 형틀이 아닌 가로대를 가리킨다. 처형장에 끌려가는 도중 예수가 모진 구타끝에 체력이 다하여 쓰러지자 퀴레네 출신의 시몬이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4.2. 사망 이후[편집]

기독교 경전인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12제자를 축복하고 많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다.

5. 예수의 권위[편집]

5.1. 유대교의 랍비[편집]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자신만의 공생애를 시작했다. 예수는 구전 복음을 전했으며 "랍비"라고 자주 불렸다. 예수는 신을 청종하는 방법에 대해 유대인들과 토론했고 비화를 가르쳤으며 지지자들을 모았다. 예수는 산헤드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로마 정부에 인도되어 유대인 군중이 거세게 압박하는 가운데 유대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명령으로 십자가형을 당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의 지지자들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믿었고 지지자들이 형성한 공동체는 초기 기독교가 되었다.

5.2. 기독교의 신[편집]

기독교는 "예수는 성자이자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서 나왔고, 기적을 행하는 동시에 교회를 창립해 인간을 구원하며, 인간을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가 부활해서 천국으로 간 뒤 언젠가 재림할 것"을 교리로 삼고 있다.
니케아 신경은 예수가 살아있을 때나 죽은 이후에도 삶과 죽음을 판단한다고 믿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를 신이자 인간인 동시에 신의 아들인 존재로 믿고 삼위일체 중 제2위격인 성자로 보고 있다.

5.3. 서구권 달력의 기원[편집]

예수의 탄생일은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으나 에보디우스나 알렉산드로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기독교의 초기 주교들이 예수의 탄생일로 언급한 12월 25일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고 있으며, 예수의 희생은 성금요일로, 예수의 부활은 부활절로 기린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연호인 서력기원은 예수가 태어난 해로 추정되는 시점을 기원으로 하며,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은 기원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1962년 1월 1일부터 서력기원을 사용하고 있다.

5.4. 이슬람교의 예언자[편집]

예수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 속 예수는 이사 이븐 마리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신의 중요한 예언자이자 메시아로 여겨진다.
무슬림도 예수가 처녀로부터 태어났다고 보지만 신이나 신의 아들로 여기지는 않는다. 쿠란에서는 예수가 신성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을 기록했다.[32]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예수의 육체가 신에 의해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믿는다. 대조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믿음을 거부하며 메시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여기고, 그의 신성성이나 부활 또한 믿지 않는다.

6. 연구 및 관점[편집]

6.1. 기독교적 관점[편집]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외아들인 동시에, 피조되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며, 마리아에게 혈육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다.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칼케돈 신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인 동시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칼케돈 신경과 에페소 신경에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었다는 네스토리우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예수를 하느님이자 인간으로 고백한다. 결국 기독교의 관점에 따르면 예수는 신이면서 신의 아들이자 인간인 존재인 것이다.

6.2. 유대교적 관점[편집]

유대교적 관점에서는 신은 야훼 뿐이라는 유일신 교리에 따라서, 예수를 야훼의 외아들 또는 야훼로 보지 않으며 유대교는 예수를 사기꾼 또는 기독교의 창시자로 여긴다.

6.3. 이슬람교적 관점[편집]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유수아 또는 이사라고 하며, 예수를 하나님(알라) 또는 그의 독생자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고 부르며, 인류에게 내려진 하나님이 보낸 가장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성사로서 존경한다.

이슬람교도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라고 믿는 꾸란에는 예수가 신의 명령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예수는 그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허가"를 받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누구에게도 살해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린 적도 없었고 다만 천국으로 들려 올려졌다고 한다.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예수는 "심판의 날" 전에 다시 지상에 내려와서 정의를 회복하고 적그리스도를 물리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 40년을 지상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이슬람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한사람의 무슬림으로 여겨져왔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올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사람들에게 설교했다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신과의 협동"이라는 개념을 엄격히 금지하고 "유일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른바 독생자와 성육신의 기독교 교리를 거부하고, 예수가 다른 예언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신성하게 선택되었던 "사람"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꾸란에서는 처녀잉태를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꾸란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호칭하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구원할 자"라는 의미의 메시아와는 다르게 "신의 은총을 받은 자"의 의미이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때 강림하는 역할은 같다.

6.4. 힌두교적 관점[편집]

예수는 에아사라는 이름으로 힌두교 성전에 등장한다. 이 이름은 이슬람교에서의 예수의 이름 중 하나인 이사와 같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칼리 유가가 삼천 살이 되던 때에 후나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서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힌두교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에아사 마시하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힌두교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은 다양하다. 크리슈나 의식국제협회에서는 예수를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서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여긴다. 산트 마트는 예수를 사트구루로 여긴다. 라마크리슈나는 예수를 신이 육화된 것으로 여긴다.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예수를 찬미하고, 그를 힘의 원천과 완벽함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예수를 엘리사의 재육화이며, 엘리야의 재육화인 세례 요한의 학생이었다고 가르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를 그의 주된 스승 중 하나로 여겼으며 예수로부터 비폭력 저항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