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왕국 요르단 하심 왕국 المملكة الأردنية الهاشمية Hashemite Kingdom of Jordan | ||
국기 | 국장 | |
الله، الوطن، الملك 알라, 국가, 국왕 | ||
국가 정보 | ||
국가명 | 요르단 | |
수도 | 암만 | |
독립 | 1946년 5월 25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 |
언어 | 아랍어 | |
면적 | 89,342km² | |
인구 | 89,342km² | |
종교 | 이슬람교 91% 기독교 8% 드루즈교, 바하이 신앙 1% | |
상징 | ||
국가 | 요르단 왕실에 평화가 있기를 | |
국기 | ||
정치 | ||
정치체제 | ||
국왕 | 압둘라 2세 (1999년 2월 7일 ~ 현재) | |
총리 | 비셰르 알카사우네 | |
외교 | ||
가입 국제기구 |
1. 개요[편집]
요르단 하심 왕국은 서아시아에 위치한 입헌 군주국이다. 수도는 암만이며,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약 26km의 해안선이 홍해의 북쪽 아카바만에 접한다. 이 해안선을 끼고 있는 도시 아카바에는 요르단 유일의 항구가 있다.
2. 역사[편집]
요르단의 국토는, 약 50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약 1만 년 전(기원전 8천 년경)에는 인류 최고(最古)의 농업이 행해졌다. 서아시아 문명이 발달하자 교역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고, 기원전 13세기경부터는 이집트인이 정착하여 암만에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암몬인의 나라가 있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남부 페트라 유적을 남긴 나바테아 왕국이 발전하였으나, 1세기 ~ 2세기에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다.
7세기에는 이슬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아라비아와 이슬람교가 전파되어 아랍화·이슬람화되었으나, 다마스커스에 자리잡은 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여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 시리아 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어, 그 변경으로서 도시 문명도 차츰 쇠퇴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 당시 이 지방을 지배하였던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도망하여 온 체르케스인을 시리아의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살게 하여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9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
1921년 하심가 출신인 압둘라 1세를 영입하여 트란스요르단을 세웠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후세인 1세가 즉위한 이후에 지금의 국명으로 개칭되었다.
1950년에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영토에 추가하였으나,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겼다. 중동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인이 대거 유입되었다.
7세기에는 이슬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아라비아와 이슬람교가 전파되어 아랍화·이슬람화되었으나, 다마스커스에 자리잡은 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여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 시리아 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어, 그 변경으로서 도시 문명도 차츰 쇠퇴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 당시 이 지방을 지배하였던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도망하여 온 체르케스인을 시리아의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살게 하여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9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
1921년 하심가 출신인 압둘라 1세를 영입하여 트란스요르단을 세웠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후세인 1세가 즉위한 이후에 지금의 국명으로 개칭되었다.
1950년에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영토에 추가하였으나,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겼다. 중동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인이 대거 유입되었다.
3. 지리 및 기후[편집]
국토의 서단에 레바논, 안티레바논 두 산맥의 연장이 남북으로 달리고 그 사이 폭 10~20km의 대지구대(大地溝帶)가 있는데 이것이 갈릴리 호수, 사해(死海), 아카바만(灣) 등을 거쳐 아프리카에 이어진다. 지구대의 저변은 평탄하지 않아 헤르몬 산에서 발원한 요르단 강이 남쪽으로 흘러 사해에 들어간다. 사해 남쪽에서 지구대가 차츰 높아져 그 10km 남방에서 해면과 같은 고도가 된다. 지구대 동부의 요르단은 표고 500m, 1,000m의 완만한 고원상을 이룬 암석 사막지대이다.
지구대의 서쪽은 지중해성 기후로 하계에는 고온·건조하고, 동계에는 저온·다습하여 500mm 정도의 비가 내린다. 동부는 스텝 사막지대로 강우량이 200mm 미만이다.
지구대의 서쪽은 지중해성 기후로 하계에는 고온·건조하고, 동계에는 저온·다습하여 500mm 정도의 비가 내린다. 동부는 스텝 사막지대로 강우량이 200mm 미만이다.
4. 인문환경[편집]
주민은 대부분이 아랍인 회교도들로, 유대인과 영국인도 존재한다. 주민 중 70만 명이 팔레스타인 피난민으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관의 원조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1967년의 대이스라엘 전쟁의 결과 요르단강 서안에 거주하던 요르단인 중 많은 사람이 동안으로 이주했다. 사해 북단의 에리코에서는 기원전 5000년의 도시가 발굴되었고, 아카바만 부근의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페트라는 험준한 적색하암 협곡지대에 위치해 있다.
4.1. 언어[편집]
대부분 아랍어를 사용하며, 국가의 공용어이자, 도시에서는 영어도 통용되고 있다.
4.2. 산업[편집]
요르단강 지류에 댐이 건설되어 농업용 수자원이 확보되어 있다. 주산물은 밀과 보리이다. 경제규모가 영세하여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요르단 정부에서는 "IT가 요르단의 생존 방법"이라고 정하고 있다.
요르단 정부에서는 "IT가 요르단의 생존 방법"이라고 정하고 있다.
4.3. 종교[편집]
이슬람교가 90% 이상이며, 기독교와 유대교도 극소수 존재한다. 이 중 기독교는 침례교, 기독교연합교회, 요르단 성공회, 복음주의 자유교회 등이 있다. 다른 아랍나라 중 종교의 자유가 있는 편이다.
5. 공휴일[편집]
이슬람 휴일 및 명절, 5월 25일(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등이 있다. 주말도 포함된다.
6. 정치[편집]
제1차 세계대전시 후세인 왕의 아들 파이살이 아카바와 암만을 점령하여 세운 토후국 아미르는 1921년 영국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 후 팔레스티나 전쟁이 일어나 압둘라 왕은 1946년 팔레스티나 동부를 점령했다.1952년 국왕 후세인이 입헌군주제를 선포하고 친서방적인 외교노선을 폈다. 아랍제국 중 가장 친서방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 지지를 표명한 탓에 미국 등 서방측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999년 2월 후세인 국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군주의 권력은 강력하며 국민들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는 안정되고 있다.
군주의 권력은 강력하며 국민들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는 안정되고 있다.
7. 군사[편집]
요르단은 모병제를 실시한다. 정규군 10만 명과 예비군 3만 5천 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왕실 근위병도 보유하고 있다. 요르단의 군사력은 중동 내에서 이스라엘에 버금 가는 것으로 평가되는 숙련도를 보이며, 실제 중동 전쟁에서도 이스라엘군과 대등하게 싸운 것으로 평가된다.
8. 한국과의 관계[편집]
196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1974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으나, 2018년에 요르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관 설치가 없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끓었다.
한국은 1975년에 주요르단 한국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요르단은 2010년 10월 주한 요르단대사관 설치(이전까지는 주일 요르단 대사가 한국 대사를 겸임)하였다.
한국은 1975년에 주요르단 한국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요르단은 2010년 10월 주한 요르단대사관 설치(이전까지는 주일 요르단 대사가 한국 대사를 겸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