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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생애4. 사망5.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원경선은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이자 농업 기업가이다.

2. 상세[편집]

원경선은 평생 농업에 헌신해 100세 농군으로 불린 인물로, 1970년대 중반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기농법[땅의 힘과 거름만 사용하는 친환경 농법]을 시작한 선구자이다.

3. 생애[편집]

원경선은 1914년 4월 17일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번동리 황촌에서 태어났다. 1930년 수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하여 인쇄소 ‘지원인서사’를 운영하였다. 1946년 5월에 귀국하였고, 6.25전쟁 후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1만 평의 땅을 개간해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한 공동체인 ‘풀무원농장’을 만들었다. 1976년 1월 풀무원농장에서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 농민 단체인 정농회를 설립하였다. 1976년 도시화가 진행되는 부천을 떠나 경기도 양주로 풀무원농장을 옮기고 유기 농업을 본격적으로 실행하였다. 많은 젊은이가 풀무원농장에 와서 유기 농업을 배운 후 전국 각지로 흩어져 유기 농업이 퍼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87년 풀무원 고문으로 취임하였다.

1961년부터 원경선은 ‘열린 교육’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을 맡았다. 당시 군사정권의 교육계와 마찰을 빚어 세 번이나 문을 닫을 뻔 했다. 하지만 매번 원경선은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이 된다.”며 버텼다.

1989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에 초석을 마련하고 빈곤 타파 운동을 벌이며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였다. 일찍부터 아프리카 기아 현장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고 그 참상을 국내에 알림으로써 우리 국민이 국제 기아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세계환경회의에 참석해 한국식 유기농 실천 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4. 사망[편집]

2013년 1월 8일 오전 1시 49분 경기도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향년 10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원경선의 묘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강화대로 879-16 강화 파라다이스 추모원에 있다.

5.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