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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학위 시절2.3. 이후 시기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배우자 및 코바나컨텐츠의 대표이사.

2. 생애[편집]

2.1. 학창 시절[편집]

2.2. 학위 시절[편집]

  • 1992년 3월~1996년 2월,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 1995년 5월,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을 수상했다.
  • 1996년 3월~1999년 2월,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석사를 졸업했다.
  • 1998년 1학기, 광남중학교에 교육실습(2학점)을 다녀왔다.
  • 1999년 3월~2008년 2월,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디지털콘텐츠디자인학 박사를 졸업했다.
  • 2001년, 영락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미술강사를 했다.
  • 2001년 1학기, 2002년 1학기, 2003년 1학기~2004년 1학기, 한림성심대학교 컴퓨터응용학과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했다.
  • 2001년 7월 11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단성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 2003년 7월 9일~15일, 분당 삼성플라자(현 AK플라자 백화점 분당점)에서 전시를 했다.
  • 2004년 1학기~2006년 1학기, 서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 시간강사로 강의했다.
  • 2005년 3월~2007년 8월, 한국폴리텍Ⅰ대학 서울강서캠퍼스에 산학협력 겸임교원으로 재직했다.
  • 2006년 5월~11월, 서울대학교 문화콘텐츠 글로벌 리더 과정(GLA)을 이수했다.
  • 2007년 3월~2008년 2월, 수원여자대학교 광고영상과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 2007년 7월 25일, 문화예술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를 설립해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 2007년 8월, 11월, 두 편의 KCI등재 학술지 논문을 투고한다.

2.3. 이후 시기[편집]

  • 2008년, '김명신'에서 '김건희'로 개명했다.
  • 2010년 3월~2012년 2월,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EMBA) 경영학과 경영전문 석사를 취득했다.
  • 2010년 8월~2011년 3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을 수료했다.
  • 2010년 10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윤석열은 중수부수사과장이었다.
  • 2012년 3월 11일, 윤석열 당시 검사와 결혼했다. 당시 윤석열 검사는 만 51세, 김건희 대표는 만 39세였다. 결혼 과정은 세 가지 설로 나뉜 줄 알았으나 모두 맞는 이야기였다.
    • 2011년 5월 25일, 김건희의 어머니인 최은순 씨는 검찰조사 당시 "윤석열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선배이자 자신과 가깝게 교류하던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이 소개해줬다. 교제한 지는 2년 정도."라고 했다
    • 2018년 3월 17일, 김건희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나이 차도 있고 오래 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고 했다
    • 2021년 6월 17일, 천준(필명) 작가는 윤석열 평전 '별의 순간은 오는가 - 윤석열의 어제, 오늘과 내일'에서 "윤석열의 기나긴 싱글 생활을 안타깝게 여긴 한 외가 어른이 주선한 선 자리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고 했다
    • 2022년 1월 17일, 김건희 인터뷰 녹취록 논란으로 위 세 주장이 모두 맞음이 정리되었다. 공개된 2021년 7월 20일 대화에 따르면, 김건희는 결혼 주선을 무정스님이 서줬다고 했다. 또한 무정스님과 조남욱 회장이 친분이 있으므로 어머니 최은순의 주장도 맞다. 또한 무정스님은 윤석열이 김건희를 만나기 전부터 알던 인물이라 천준 작가의 주장도 맞다.

3. 여담[편집]

  • 2008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며 개명 전 이름은 김명신(金命新).
  • 2015년, 국민대 대학원에서 김건희의 강의를 들었던 A씨는 김건희의 수업에 대해 "전시회를 갈 때마다 (김건희) 교수님께서 사비(私費)로 입장료를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감 없이 말씀하는 분이라서 그런지, 배우는 입장에선 편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강의 평가도 꽤 괜찮았던 걸로 압니다. 쉬는 거 없이 성실하게 (강의를) 해주셨어요"라고 했다.
[1] 모친 최은순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땅을 정리하고,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 '프리즘모텔'을 세운다. (이는 이후 '뉴월드호텔'로 이름을 바꾼다. 그리고 이후 김건우가 이를 '온요양원'으로 용도 변경한다.) 지상 5층에 방이 48개고, 지하 1층은 단란주점이었다. 남양주종합촬영소와 근접하여 연예인도 숙박하는 등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최은순이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번다. 1980년대 말~2000년대, 최은순은 강원도 고성군구 미시령휴게소 사업도 벌인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의 오금스포츠플라자 (현 사랑하는교회 부지로 추정),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충청남도 아산신도시 등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