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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로동당 로고.png
조선로동당
다른 이름
북한노동당
약칭
WPK, 로동당, 당
표어
조선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조선로동당 만세!
설립
1945년 10월 10일 (78주년)
(조선공산당의 예비회의 개최일)[1]
종교
국가무신론
당직자
총비서
상무위원
김정은
최룡해
리병철
김덕훈
조용원
1. 개요2. 상세3. 역사4.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조선로동당 북한의 유일 집권 정당이다.

2. 상세[편집]

한자 표기는 "勞動黨"이지만, 영문 표기로는 Workers' Party of Korea, 즉 "조선로동자당"이다. 조선사회민주당 및 조선천도교청우당과 같은 당이 존재하지만 형식적인 야당이자 관제야당(우당)에 불과하다. 실제 정치권력은 조선로동당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사회주의헌법》 제11조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는 구절에 규정되어 있다.

조선로동당에서 표범하는 공식 이념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이며, 사상적으로는 반수정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보를 잇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이 정당을 민족주의, 전체주의 정당으로 해석하기도 한다.현재 조선로동당 총비서 김정은이 집권을 하게 되면서 여당을 유지한다. 극좌 정당으로써 독재를 하는 북한 일당제 정당이다. 주체사상을 표방한 정당이다

3. 역사[편집]

북한 학계는 조선로동당의 기원을 김일성이 세웠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에서 찾는다. 그 밖에도 타도제국주의동맹 외에 조선공산당의 북조선분국을 뿌리로 하는 계열도 있다. 이 계열이 조선로동당의 실질적 기원이 되었다.

1945년 9월 11일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서울에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는데, 이 사태를 지켜보던 소비에트 연방은 1국 1당주의라는 명분을 위해 같은 해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통해 친소파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설치했다. '분국'이라는 개념은 박헌영이 주도하는 서울의 조선공산당을 '중앙'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초기에는 김용범이 임시비서로 재직하다 김일성으로 교체되었다. 김일성은 1945년 9월 19일 원산시에 입항,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분국'의 명칭을 거부하고 위원장에 추대된다.

북조선분국은 1946년 6월 22일 분국 제7차회의에서 명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바꾸고, 서울을 연고로 한 조선공산당으로부터 독립한다. 이 과정에서 박헌영을 따르는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대도 있었으나,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한다. 이후 같은해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연안파가 세운 조선독립동맹 계열 중심의 조선신민당과 통합하고 '북조선로동당'을 발족, 북반부의 유일한 집권당이 된다.

1946년 11월 23일, 서울의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이 이루어져 남조선로동당이 결성되었으나 1949년 6월 24일 북로당에 흡수되고 6월 30일 "조선로동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위원장으로 김일성, 부위원장으로 박헌영, 허가이, 비서로 허가이, 리승엽, 김삼룡이 선출되었고, 중앙위원회의 정치위원회의 의장에는 김일성, 부의장에는 박헌영, 위원으로 김책, 박일우, 허가이, 리승엽, 김삼룡, 김두봉, 허헌이 선출되었다. 남북로동당의 합당 이후 서울에서 기반을 잃고 월북한 박헌영 등의 남로당계는 한국전쟁 이후에 숙청당한다.

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1] 다만 북조선분국 설치를 공식적으로 밝힌 날은 1945년 10월 13일 (78주년)이다.